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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신기전'의 저력, 한국형 우주로켓으로 가자

대한민국 교육부 2010. 6. 8. 14:22
‘신기전’에서 ‘KSR-III’ 나로호까지

조선시대 로켓형 화기인 신기전(神機箭)은 한국의 우주개발 잠재력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귀신같은 기계화살이라는 의미의 신기전은 그러나 더 이상 발전을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신기전이 반란에 사용될 것을 우려한 세조(1417~1468)가 명을 내려 신기전의 개발·생산을 전면 금지시켰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신기전을 운영하고, 개발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 조선왕조가 신기전 사용을 포기했다는 설도 있다. 

이후 한국에서 다시 로켓 실험이 시도된 것은 1958년이었다. 로켓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국방과학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은 1959년 인천 고잔동 해안에서 1단, 2단, 3단 로켓을 성공리에 발사했다. 그러나 1961년 국방과학기술연구소가 폐쇄되면서 로켓 개발도 중지된다.

로켓 실험을 이어간 것은 정부기관이 아니라 민간 대학이었다. 1960년 11월19일 인하공과대학(현재 인하대학교) 학생회 공작부 산하 로켓반에서는 실험용 로켓인 ‘IITO-1A’, ‘IITO-2A’를 제작, 발사에 성공한다. 


   인하대 로켓실험서 고도 50km 진입
 

이후 학생회 산하 로켓반은 우주과학연구회로 이름을 바꾸고 1962년 9월과 10월, ‘IITRA-1’, ‘IITRA-2’를 각각 발사한다. 지난 2008년 연재된 인하대학신문은 연구회가 이 실험에서 로켓을 지상 20km 지점까지 쏘아 올린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자신을 얻은 연구회는 1963년 ‘IITRA-3’을 발사해 성공을 거둔다. 1964년 12월에는 개교 10주년 기념으로 3단 추진 로켓 ‘IITA-7CR’을 발사해 3단 분리 및 50km 고도진입에 성공한다. 그러나 악화된 풍속으로 실험용 쥐가 내장된 캡슐은 회수하지 못했다.

▲ 우주로켓 나로호 2차발사를 이틀 앞둔 7일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궤도차량에 탑재된 나로호(KSLV-1)가 발사체종합조립동에서 발사대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본격적인 로켓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90년 한국한공우주연구소(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탄생하면서부터다. 첫 번째 작품이 과학관측로켓 1호(kSR-I). 1993년 6월 연구원은 고체로켓인 ‘KSR-I’ 발사에 성공한다. 

‘KSR-I’은 1993년 6월과 9월 두 차례 발사됐다. 6월에 발사된 로켓은 고도 39km, 낙하거리 77km를 비행했다. 9월에 2차로 발사된 로켓은 1호보다 더 높아진 고도 49km, 낙하거리 101km를 비행할 수 있었다. 

‘KSR-I’의 성공은 항우연으로 하여금 고체연료 로켓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한다. 이후 곧 2단 고체연료 로켓인 과학로켓 2호(KSR-II) 개발에 착수했다. 이 로켓에는 쏘아올린 뒤 예정된 낙하지점에 정확히 떨어지도록 하는 유도제어기술과 높은 고도에서 1단과 2단을 분리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1998년 7월에 있었던 ‘KSR-II’의 1, 2차 발사 성공은 한국의 발사체 기술력을 우주개발 본 괘도에 올려놓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는 없었다. 100kg급 소형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려면 170t 급의 추진력이 필요하지만, ‘KSR-I’과 ‘KSR-II’의 추진력은 8.8t, 그리고 30.4t에 불과했다. 

더 어려운 것은 고체 연료 로켓으로는 무거운 위성을 탑재할 수 있는 힘을 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또한 한·미 미사일 협정은 고체연료 로켓을 만드는 일에 크고 작은 제약을 가하고 있었다. 


   항우연, 1997년 말 액체로켓 개발에 착수
 

액체연료 로켓은 고체연료 로켓보다 추진력이 월등히 뛰어난데다 발사 후에 점화와 소화를 반복하면서 위성과 같은 탑재물을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액체연료 로켓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1997년 말부터 액체연료 로켓 개발에 착수한 항우연은 2002년 11월 과학로켓 3호(KSR-III)를 발사한다. ‘KSR-III'은 국내 최초의 액체연료 로켓으로 추력이 12.5t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로켓의 적용된 기술은 향후 나로호(KSLV-I) 개발의 뿌리가 됐다.

나로호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를 발사하면서부터다. ‘대포동 1호’ 발사 소식을 접한 정부는 곧 ‘KSLV-1’ 개발을 앞당기는 한편 2010년 1t 급 위성 탑재가 가능한 우주발사체(KSLV-II)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2001년 한국의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 가입과 2004년 한·러 우주기술협력협정 체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개발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러시아 후루니테프사의 대추력 발사체와 기술을 도입해 1단을 만들고, 여기에 국내에서 개발한 2단을 얹는 방식이었다.

당시 미국이 대형 발사체 기술이전을 극력 회피했기 때문에 러시아로부터 기술을 도입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였다. 이 때문에 2005년 발사계획이 2007년으로 연기됐지만 첨단기술이 들어간 대추력 발사체와 관련 기술을 적은 비용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돋보이는 성과였다.

그러나 기술도입을 통한 우주발사체 개발에 각종 제약과 보이지 않는 규제들이 개입된다는 것이 곧 입증됐다. 2004년부터 양국 기술자들이 시스템 공동설계가 시작됐으나 한·러 우주기술보호협정(TSA) 체결이 늦어지면서 상세설계가 지연됐다. 미국의 개입과 함께 경제사정이 좋아진 러시아의 소극적 태도가 그 원인이었다.

결국 2006년에 가서야 TSA가 체결됐고, 발사계획은 2008년으로 연기됐다. 같은 해 발생한 쓰촨성 지진은 중국산 부품 수입을 지연시키면서 2008년으로 계획됐던 발사계획을 2009년으로 연기시켰다. 이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항우연은 2009년 초까지 정확한 발사시점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로호 페어링 문제 철저히 차단
 

▲ 온 국민의 관심이 나로호 2차 발사에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과천 과학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2010 나로호 발사 성공기원 항공우주과학체험 한마당.

그리고 우여곡절을 거친 후 2009년 8월26일 오후 5시 나로우주센터에서 ‘KSLV-1'이 불을 뿜었다. 이륙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발사 장면을 지켜보던 온 국민으로부터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동안 성공을 앞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얼마 후 프레스 룸을 통해 “발사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인공위성이 목표궤도를 타고 가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위성을 감싸고 있던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은 결과였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고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페이링을 분리를 위해 설치한 화약이 폭발하지 않았으며, 화약이 터지지않은 이유는 전기 배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로호 개발 관계자들은 2차 발사를 준비하면서 로켓 상단 페어링 분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차 발사 이후 페어링 전체 시스템 실험을 24회 실시했으며, 작은 부품 시험까지 실시한 것을 합치면 총 400회의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항우연은 7일 발표를 통해 발사대에 장착했으며, 모의연습(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허설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오전 11부터 6시간 동안 1단을 대상으로, 오후 1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 4시간 동안 상단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리허설이 끝난 오후 5시30분부터는 리허설 결과에 대한 분석작업을 가졌다.

관계자들은 나로호 2차 발사가 1차 발사와 거의 같은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페어링 분리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면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우주발사체 개발경쟁은 미국과 구 소련 간에 자존심 경쟁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최근 추세를 보면 미국과 러시아가 주춤한 반면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 간의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 역시 국가 경쟁력에 비추어 아시아 우주개발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만큼 나로호 2차 발사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우주발사체 기술은 우주기술의 핵심적 기술이다. 나로호 2차 발사의 성공은 곧 한국형 로켓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는 대한민국 우주 기술의 도약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글 | 이강봉 편집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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