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병원이 원래 같은 것이었다고?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올림픽은 그 자체가 세계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인데, 이번 평창 올림픽은 현재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 사안 가운데 하나인 북핵 위기의 와중에 열려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습니다. 때마침 평창 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싶을 만큼 올해 초까지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심각했습니다. 올림픽 시기에 남북 교류가 재개되었다고 해도 평화 정착까지 갈 길은 멀지만, 적어도 평창 올림픽이 긴장과 대립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올림피아드와 신성한 여행자들

  평창 올림픽이 그랬듯 올림픽이 열리면 땅과 바다와 하늘의 길도 열립니다. 꽉 막혀 있던 남북 간에도 그 길들이 다 열렸고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여행자들이 평창을 찾았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순례자들처럼 올림픽 개최국을 찾는 것은 올림픽의 기원인 고대 올림피아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림피아드가 열리던 고대 그리스는 수많은 폴리스로 나뉜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그 세계에서도 현대 세계처럼 폴리스들 사이에 숱한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올림피아드는 폴리스들이 그러한 분쟁과 전쟁을 잠시 멈추고 평화를 기원하는 제전이었습니다.

  올림피아드가 열리면 아테네, 스파르타를 비롯한 폴리스들에서 경기에 참여할 선수들뿐 아니라 참배의 목적으로 제전을 찾는 여행자들이 생겨납니다. 지금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 이 같은 여행자들은 주로 걸어서 먼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자비를 들여서 먼 거리를 평화적 목적으로 이동하는 여행자는 숭고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주민들은 그러한 여행자들을 신성한 사람으로 여기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신성한 여행자들은 신성하게 대해야 했습니다.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하고 장거리 이동에 지쳐 병에 걸린 여행자에게는 정성 어린 의료 서비스를 베풀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여행자들을 정성껏 대접하는 일은 올림피아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피아드 말고도 여러 폴리스에서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며 벌이는 교류 경기 대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대회의 선수와 방문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신전을 순례하는 여행자에게 환대의 원칙이 적용되었습니다.
 
  이처럼 고대 세계에서 최고의 미덕 중 하나로 꼽히던 여행자 환대의 관습은 고대 로마에서 ‘호스피탈리타스(hospitalitas)’라고 불렸습니다. 이 말의 어근인 호스페스(hospes)는 손님과 접대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방인이나 적을 뜻하는 호스티스(hostis)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영어 ‘호스타일(hostile; 적대적인)’의 어원입니다. 언어의 형성 과정이란 본래 복잡한 것이지만, 적을 포함한 낯선 자라도 나를 찾은 여행자라면 환대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호스피탈리타스 정신이 깃든 고려 역원제

  오늘날 우리는 호텔과 병원을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기관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가리키는 영어 호텔(hotel)과 병원(hospital)은 둘 다 라틴어 호스피탈리타스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신성한 여행자들에게는 숙박을 제공하고 그들이 아플 때는 정성껏 치료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내 고장을 지나거나 방문하는 손님에게 정성껏 숙식과 의료를 제공하는 정신은 서양에만 있었던 전통이 아닙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그러한 관습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려 시대의 여행자들이 쉬어 가던 원이 있습니다. 역원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고려의 교통 체계에서 원은 주로 불교 사원에서 운영하는 여행 서비스 센터였습니다. 먼 길을 가는 여행자들은 원에 머물며 숙식을 제공받았습니다. 여행 중 병에 걸린 사람이나 행려병자들은 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정신에서 고대 로마의 호스피탈리타스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요즘 들어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나 도시들은 이를 경제 부흥의 기회로 삼으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표출하곤 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좀 더 멋진 올림픽을 선보이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경제적 이익 추구 때문에 모든 여행자들을 신성시하고 그들을 환대해 마지않았던 호스피탈리타스 정신을 잠시라도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한 번 되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글_ 강 응 천 역사저술가(문사철 대표)
출처_행복한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