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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사학과 출신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성공하기까지

대한민국 교육부 2011. 7. 8. 07:00



대전시 블로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노미경(당시(주)KoRea A.I이사)는 블로그를 방금 만든 상태였다. 대전시 블로거들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몇 번 만나고 우리는 블로그안에서 친구가 됐다.
 
그녀가 대전의 성모병원을 리모델링 한 것을 듣고 난 후 시어머니께서 성모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모시고 병원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새로 리모델링 한 성모병원의 손잡이까지 유심히 보게 됐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일에 대단함과 놀라움을 느꼈다.

* 리모델링한 대전 성모병원


어느날 노미경 대표는 대전 본사로 우리를 초청했다. 더 발전을 하기 위해서 서울 논현동에 새사무실을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본사를 구경하고 가까운 곳에서 송별 뒷풀이를 하였다. 그자리에서 내가 병원리모델링을 하게 된 과정을 물었다. 뜻밖에 그녀는 숙명여대 사학과 출신이었다. 대학원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2012년 모교인 숙명여대에서 박사 과정에 진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학재학 중에 5살 연상의 남편의 적극적인 구애로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한 그녀는 2녀 1남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큰딸이 어느새 18살,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남편이 결혼 전부터 시작한 익스프레스 사업을 결혼 이후 바로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이사를 하는 집들에 간단한 도배와 바닥재를 바꾸어 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남다른 회사 운영으로 사업이 잘되자 (주)한진에서 익스프레스 사업을 인수하게 되었다. 이 후 본격적으로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과 건축업을 시작 하였다. 그러던 차에, 자녀가 다니던 성모초등학교를 설계 시공하면서 바로 옆 대전성모병원 리모델링을 맡게 된 계기가 (주)KoRea A.I 의 병원 리모델링 시초가 되었다. 
 

*숙명여대 설미반 동아리시절 때의 모습


노미경대표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에 두각을 나타냈다. 모든 미술대회의 상을 휩쓸었으나 중2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서울 강남에서 경북 점촌으로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됐다. 교육열이 강했던 어머니는 외삼촌이 있는 대전으로 노미경대표를 유학을 보냈다. 여중,여고에 다니는 6년 간 학급반장을 했을정도로 남다른 리더쉽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숙명여대 사학과에 진학한 후 교내 미술동아리 설미반'에 가입해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설미반은 일년에 1~2번 전시회를 할 정도로 활동이 외부에도 소문이난 학교의 대표적인 동아리였다.
 
다음은 (주)We are KAI 노미경대표)를 서울 논현동 사옥에서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이다.

*(주)We are KAI, 노미경대표(여/42세)

 
Q1.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이름, 나이, 가족, 회사,학력등입니다.

노미경: 1970년생으로 남편(47세/ 박경훈/(주)KoRea A.I 대표이사 )과 일남 이녀(수주/18세, 아들 현서/11세, 소형/8세)의 세 아이, 그렇게 5식구이고 숙명여대 사학과를 1993년에 졸업하고 결혼 이후 동대학 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하여 인테리어 디자인 석사학위를 1999년에 받았습니다. 내년 2012년에 다시 박사과정을 공부할 예정입니다.
 

* 남편 박경훈 대표이사의 대학원졸업논문


남편인 주)KoRea A.I 박경훈 대표 이사 도 건축석사를 마쳤다. 부부가 남편은 건축을 설계하고 아내는 실내 디자인을 하는 동업자이며 평생의 반려자이기도 하다. 
 
 
Q2. 우수블로거로 블로그를 통해서 이미 이름(블로그명: 시크릿의 스페이스홀릭)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지금의 병원리모델링에 선두주자가 되신 경위를 말씀해 주세요.
 
노미경: 결혼하고 바로 남편과 함께 시작한 디자인 회사는 경험 없이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에 고객들이 좋게 봤습니다. 그분들이 입소문을 내 주셔서 끊이지 않게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작은 공사라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더니 점점 입소문이 좋게 났습니다. 그러던 중 고가도로 밑 작은 땅을 경매로 구입하여 지금의 사옥을 남편과 함께 설계 시공하게 되었습니다. 70평이 채 안 되는 작은 땅에 집과 사무소 그리고 매장을 겸비한 6층 규모의 복합건물을 지어 대전시 건축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 대전시 건축상을 수상한 (주)KoRea A.I 대전 본사


큰 아이 초등학교 재학 중인 성모초등 학교를 설계 및 시공을 하게 되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학교의 공사를 진행하던 중 근처에 있던 대전성모병원에 첫 발을 딛고 임종실 공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 병원 리모델링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 리모델링한 대전 성모초등학교

 
30년 이상 낙후된 병원을 장기간의 시간에 걸쳐, 그러나 파트별 단기간으로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려운 공사를 감행했습니다. 다른 병원과는 차별화된 컨셉으로 마치 내 집과 같은 따뜻한 감성이 흐르는 병원으로 리모델링된 대전성모병원은 전국으로 입소문이 나게 되었어요. 
 
대형병원들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종합병원 리모델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그동안 병원도 침체되고 적자운영으로 힘든 경영란을 극복하게 된 큰 동기가 됐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편리하고 아늑하게 디자인 된 병원 리모델링



Q3. 사업 때문에 대전과 서울에 회사가 두 곳에 있어서 주말 부부인데 어려운 점과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부부가 같은 일선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장점과 단점이 다 있습니다. 디자인이란 시각은 아무리 부부일지라도 서로의 개인적 취향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지요. 

 

* 2003년 우수건축상을 받은 전원주택: 남편이 건축하고 아내가 실내 디자인 한 작품이다.


*(주)KoRea A.I는 개인주택건축, 아파트 병원리모델링 ,실내 디자인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있다.


부부가 서로 일할 때엔 가깝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강요할 수 있어 때론 발전 없는 일을 할 수 있어요. 현재 시스템은 건축설계와 시공을 대전 본사에서 추진하고 실내디자인은 서울 사무소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빠르고 감각적인 유행과 정보에 민감한 부분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장점들을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디자인과 건축은 상호 공존되고 때론 충돌하는 부분을 적당히 조절할 수 있어 좋은 점입니다.
 

* 서울의 자택이 있는 반포 자이 아파트안의 유치원 리모델링한 모습



Q4. 2녀 1남의 주부로서 어머니와 CEO를 잘 병행 하시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노미경: 아직 제 아이들이 크는 과정이고 저 역시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 채 그저 지금 순간 판단으로 제가 해야 하는 것,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들을 먼저 하고 있을 뿐이지요. 아이의 알림장을 날마다 체크하고 글씨를 바르게 쓰는가, 숙제 준비물을 잘 챙겼는가 정도밖에는 해 줄 수 없는 엄마입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저와 한 식구이기 때문에 그들도 저와 같이 함께 밥을 먹고 지내는 식구의 개념으로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하길 원하는 것이지요. 현장이 멀리 있다 보니 날마다 볼 수 없기에 제가 현장으로 가서 자주 체크하고 그들을 독려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함께 더불어 일에 대해 그 순간 최선을 다하자고 하는 것이구요.

 

* 논현동 서울사옥 내부 사무실


Q5. 노미경사장님의 인생관과 회사 경영철학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남편과 사업을 지금껏 한 사무실에서 15년 이상 함께 해 왔습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를 믿어주신 고객들의 도움으로 일 많은 회사로 이름나 있어서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사업 초창기에 사실 부부라고 말하지 않고 일을 할 정도로 작은 사무소에서 사장과 실장이 같이 거들며 일하는 모습이 누추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고객은 늦은 밤까지 현장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신발을 사서 신으라고 주셨던 돈을 기억합니다. 그 때 고객은 지금도 고객이시고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언제나 불러주시는 평생 저희 회사의 고객이신거지요. 마찬가지로 한 번 맺었던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 있도록 그들이 저희 회사를 성원해 주시고 믿어주셨던 부분을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회사를 거대한 규모와 외형을 키워나가는 것 보다는 일하는 직원들과 고객들이 다같이 즐겁고 서로의 인연에 대해 오래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같이 즐겨가는 것이 제 인생관이자 회사를 꾸려나가는 앞으로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Q6.큰 따님이 카나다에 유학을 가 있는데 조기 유학을 가게 된 동기와 큰 아이에 대한 앞으로의 바람은 무엇입니까?

노미경: 큰 딸은 지금 18세이고 중학교 1학년에 캐나다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저는 아픔이 아픕니다. 큰 아이에 대한 제 욕심으로 많은 부분을 그 아이에게 잘못했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 큰딸 수주(18세)양이 초등학교 졸업식날


결혼하고 바로 가진 아이였기에 그 당시 사업을 일으키려고 아이는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께 맡겨두고, 오로지 늦은 밤까지 일에 몰두헸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대학원 진학으로 공부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당시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고 한창 사업이 일어설 시기였으니 언제나 아이는 뒷전이었습니다. 단지 좋은 학원에 보냈고 학업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아이에게 들인 비용만 생각하면서 나무라기도 했었습니다.
 

* 사랑스런 두딸의 모습

 
캐나다에 계신 사촌 이모님은 절실한 크리스찬이시고 딸만 둘인 가정으로 아이들을 소박하고 검소하게 키우시는 분십니다. 큰 아이 수주(18세)가 어릴 적부터 그 언니들과 함께 지내려는 마음을 보여서 유학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수주는 그 곳에서 나중 엄마와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면서 실내디자인과를 지망하려고 그 계통의 공부를 하고 있어요. 피아노를 특기로 계속 치고 있어서 캐나다에 피아노 등급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수준급입니다. 동생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안 혼자 줄곧 자라온 수주. 언젠가 방학 때 제게 와서 말했던 말“ 엄마 나 어릴 때 늘 혼자였고 외로왔어” 라고 늘 제 기억에 남는 말입니다. 수주는 커가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지금은 친구 같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맏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7. 디자인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서울로 사무소를 내니 스펙 좋은 사람들이 많이 면접을 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지원자 중엔 지금까지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않고 부모님께 의지하거나 너무 개인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성향은 이 사회 전체적인 부분에서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조직에 가더라도 처음 자신을 낮추고 그룹의 일원이 되기까지 기본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고 좋은 드로잉 기술을 습득하더라고 더 중요한 것은 많은 독서와 경험을 통해 창의적 안목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어머니를 모시고 찍은 가족사진 (2007년도)


Q8.인생에서 제일 힘들었을 때가 언제입니까?
노미경: 현재 건축사업의 모토가 되었고 우리 회사의 첫 포트폴리오가 된 시집의 집을 지을 시기였습니다.

* *충남 금산에 지은 시집의 주택


여유자금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의 수입으로, 지금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집이네요. 방 3개 거실 주방 화장실 1개를 가진 25평형 전형적인 농가형 주택이었지만 당시 모험이었고 초라한 시골집에서 춥게 살고 계시는 부모님의 집을 고쳐드리면서 단 한 번도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었던 저희 부부가 직접 기초부터 시멘트를 나르고 벽돌을 쌓았던 땀이 서려있던 집이기도 합니다.
 
레미콘을 치고 철근을 사는 돈이 없어 자나 깨나 꿈 속에서도 일 톤의 철근 값이 어디에서 나올 까 하며 손 붙잡고 기도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니 지금은 미소 짓게 되는군요, 저희는 절실했었지만, 어른들은 저희가 무리하게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만류하셨고 주변 친척들도 아직 어린 철없는 부부가 일낸다면서 아무도 고운 시선으로 봐주지 않던 시기였기도 합니다.


Q9. 중, 고등학교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얼마 전 모교인 유성여고에 가서 특강을 했어요. 후배들에게 집에 계신 부모님 마음을 볼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길 부탁 했습니다 모든 가정이 잘 살고 못사는 것과 관계 없이 부모의 마음은 자식에게 잘 해주고 싶다고요. 해주고 싶어도 그걸 채워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딸이 되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이들이라면 공부보다 더 중요한 근본이 채워지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타인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목도 높아질 꺼라 생각합니다.

* 2011년 5월 '자랑스런 선배'로 모교를 방문해서 특강을 하는 모습


Q10. 노미경 사장님이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노미경: 단연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해가 바뀌면 제 방의 도배를 해주셨는데 도배지를 저보고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런 교육이 제 미적 감각을 더 크게 한 것 같습니다.

* 여동생 식구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외식중인 노미경대표가족


어머니(71세/박경주)는 제가 어릴 적 수유동에 살 때에 재래식 주방을 입식으로 고치기도 하고 직접 저와 함께 방산시장에 가서 도배지와 커텐지를 구매하여 집을 꾸미시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그렇게 고쳐놓았던 집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셔서 그 덕분에 여러번 집을 이사하여 또 고치기도 하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머니는 강하셨고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셨을 때에도 절대 저희들에게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내색하시지 않으셨어요. 점촌에서 식당을 인수하셔서 힘들게 운영하시면서 아버지가 하시던 가장의 일을 모두 도맡아 주셨던 강하지만 온유하신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70세가 넘으셨지만 제가 일 때문에 바빠 아이들에 대한 뒷바라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시고 저를 도와주시고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 늘 공부를 하십니다. 어른이 본을 보여야 한다면서 한자 공부를 하셔서 한자 3급을 따셨습니다. 사실 이런 어머니가 안계셨다면 저는 바깥에서 험하고 힘든 일에 몰두 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제가 이만큼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11.자녀 교육에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노미경: 일하는 여성이 어머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지요. 그냥 있는 대로 아이들도 맞춰 갈 수 밖에 없네요.

* 자녀들의 어렸을 때 모습


아이들이 부모님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서로 싹트는 마음이 애틋해지고 아이들이 부모에게 잘하려는 마음을 통해 효를 알고 사랑을 베푸는 마음을 배우는 넓은 아량을 가진 아이로 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노미경대표와 세 자녀의 요즈음 모습


사실 큰 아이를 키울 때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좋은 학원에 보내고 좋은 옷을 사주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저의 지난날을 후회합니다. 지금껏 아이들을 키워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어르신들게 잘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저 역시 부모님께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잘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쉽지만은 않네요. 일의 특성상 야근이 많고 또 사무소의 대표인 이상 저녁 모임 등으로 늦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이들을 전 적으로 친정어머니께 의지하고 있어요. 자녀들이 저보다는 친정어머니와 생활하고 있는 시간이 전적으로 많아 심지어 막내딸은 할머니 딸이라고 합니다.
 
 
Q12.자녀들이 어떤 사람으로 크기를 바라나요?

 노미경: 첫째는 윗분들을 잘 공경하고,둘째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고 수렴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넷째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자라 현명한 리더가 되었으면 합니다.

* 청주 성모병원 공사현장


* 리모델링 한 청주성모병원 내부



Q13.10년 후에 노미경 사장님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노미경: 90년 후반 때에 10년 뒤에 모습을 그리면서 여전히 일에 매진하고 있을 제 모습만 그려본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되고 있네요. 그렇다면 10년 뒤 모습을 잘 생각해 놓아야 하는데 두 아이들이 아직 어리니 여전히 그 때에도 일하고 있을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보다는 시간에 촌각은 다투며 살진 않을 것 같습니다.

* 처음에는 이랬던 병원현장이


* 이렇게 편리하고 아늑하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회사의 손길이 닿아 달라진 병원들이 적어도 20군데 이상은 생겨서 지금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따뜻함이 전해지길 바라고 지금 함께 고생하는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 다니는 것 자체가 든든하고 자부심이란 느낌을 가지고 있길 기대해 봅니다.

* 수원성빈센트 병원지하 1층 응급실


남편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와 제 회사 모두 그동안 많은 노하우가 쌓이고 실력도 내실도 차근차근 쌓아가서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비출 수 있는 환한 회사가 되길 노력해 보겠습니다.


Q14 저서와 리모델링 한 병원을 말씀해 주세요.
노미경: 대전성모병원의 작업공정과 현장의 에피소드를 담은 [종합병원리모델링 .2007, 북하우스] 인데 이 책은 현장 실무에서 일하시는 관련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보시기에도 좋도록 썼습니다.감성을 담은 인테리어 진행과정이라 쉬운 내용이지만 책의 제목이 너무 딱딱하여 손해를 본 책입니다.

* 노미경대표의 저서 병원리모델링

 
지금 저술중인 두 번째 책이 올해 안에 꼭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전성모병원 이외 전체 리모델링을 마친 수원성빈센트병원, 전체 설계와 디자인을 한 부천 성가병원, 새로운 외래병동을 증축한 청주성모병원, 작년 응급실공사를 인연으로 지속적인 리모델링공사에 들어간 천안순천향병원, 대구파티마병원 ,등이 그동안 진행했고 진행중인 프로젝트입니다.
 
 
Q15 무척바쁜 일상을 보내시는데 블로그 관리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미경: 블로그는 제가 바쁘고 힘든 일을 하지만 보람있는 일에 대한 기록의 장입니다. 제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분들과의 진솔한 만남의 장소입니다. 일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블로그를 했기에 이런 인터뷰도 할 기회도 왔네요.
 

노미경 대표의 블로그
 '시크릿의 스페이스홀릭' 바로가기 http://blog.daum.net/shalrud2 
 
노미경대표와 인터뷰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질문은 메일을 주고 받았다. 남보다 빨리 결혼을 했지만 부지런하게 창의로운 일을 부부가 함께 해왔다. 오늘의 (주)KoRea A.I 와 (주)We are KAI 는 노미경대표의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과 건축을 전공한 남편 박경훈 대표이사와 함께 이룬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잘하던 미술이 대학을 졸업하고 생업이 된 경우이나 대학에서 전공한 사학이 디자인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시작은 소박했으나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탄탄하게 성공한 사례라고 생각됐다.
 
맏딸 수주 (修主 : 잘 다듬어진 우두머리란 뜻)의 이름이 건축을 하는 부모의 복을 늘 부르는 이름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맏딸은 역시 복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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