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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부모의 지혜 나눔

천하의 말썽꾸러기, 착한어린이 된 사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9. 29. 07:00


 청개구리 문제아 정수이야기
 
 
다섯 살 정수는 늘 교실 밖을 맴도는 아이였습니다. 교실에서는 제약이 많았거든요. 수업시간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놀고 싶을 때 놀아야하고, 만지고 싶은 것은 만져야 직성이 풀리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고, 하기 싫은 것을 할 수도 없는, 고집이 강한 아이였던 거지요.
 
뿐만 아이었습니다. 놀이 시간에도 친구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가지고 싶으면 빼앗고, 때리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덩치도 큰데다 힘도 쌘 아이였기에 늘 친구들은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반 학부모님들께 항의 전화도 많이 받았기에 선생님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그러니 정수는 모두가 문제아로 지목하는 아이였습니다.
 
 

<사진은 내용과 무관합니다.>


선생님들이 늘 타이르고, 야단도 쳐보아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거든요. 대답은커녕 바닥에 들어 누워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고 자란다는데 정수는 칭찬을 하면 다시 반대로 행동해 버리는, 하지 말라하면 더 하는 그야말로 청개구리 중에 청개구리였습니다.
 
 

그 아이가 우리 반이 되었어요.

 
익명 높았던 그 정수가 여섯 살이 되면서 우리 반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때면 전 담임선생님께 그 아이나 부모에 대해 이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편인데요. 물론 선입견이 생겨 버릴까봐서인데, 워낙 유명했던 아이인지라 정수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요.
 
사실 학기 초 아이들 반 배정을 하면서 정수가 우리 반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저는 두마음이었습니다. ‘에이~’하는 약간은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문제아라고 생각되는 아이들을 만나보면 오히려 더 정이 갈 때가 많습니다. 이상하게 저는 말 안 듣는 개구쟁이들이 더 좋더라구요.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야 아이지요. 잘하면 어찌 아이라 하겠습니까? 그건 어른입니다. 착한아이보다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들이 더욱 건강한 아이들이다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 아이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성장의 과장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두마음이라 그랬죠? 굉장히 힘들긴 하거든요. 처음엔 정말 약간의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도 하고, 전 담임선생님께 상담도 많이 했었지요. 어쨌든 그렇게 정수를 만난 순간부터 그 아이와 저의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정수 VS 선생님 Ready Go!
 
 
역시나 정수였습니다. 정수는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은 보란 듯이 더욱 해댔습니다. 꼭 나를 놀리는 것 마냥 ‘선생님은 날 이길 수 없어!’하는 그런 눈빛이었지요. 정수와 저의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수업 중이면 어느새 교실 밖으로 나가 있고, 앉아 있으면 친구의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꼬집고, 친구가 싫다 그러면 할퀴었습니다.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나도록 말이지요. 야단을 치면 말 한마디 안하고 누워버리고, 때를 쓰니 저는 머리꼭대기까지 화가 나기 일쑤였습니다.
 
뿐만 아이었습니다. 다섯 살 동생들을 데리고 몰래 금지구역인 옥상으로 올라가 어디선가 돌멩이를 구해 유치원 옆집으로 던져 장독대를 깨는가 하면 야단 들었다고 계단이며 복도에 오줌을 눠버리곤 했습니다. 역시나 부모님들께 항의 전화가 오곤했지요.
 

난 이상한 아이야!

 

“김정수! 너가 계속 그렇게 하면 친구들이 싫어해! 그리고 선생님도 싫어!”
“난 이상한 애야! 모두들 날 싫어해!”
“아니야 정수야! 넌 이상한 애가 아냐! 너는 멋진 사람이야!”
“아니야! 선생님이 틀렸어! 난 이상한 애야!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아”
“아니야! 모두 널 사랑해! 선생님이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때만 싫은 거야!”
“선생님은 날 좋아하지 않아! 그럴 리 없어!” 
 
정수와 저의 대화입니다. 여섯살 아이입에서 어찌 저런말이 나온단 말입니까? “난 이상한 애야! 모두들 날 싫어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에 돌덩이가 떨어진 것 마냥 아팠습니다. ‘이 아이의 마음의 상처가 이정도구나’, ‘얼마나 그 동안 괴로웠을까’ 싶었지요.
 
정말 생각해보면 나도 이 아이를 좋아하려 하기보다 이상한 애로 보면서 문제행동을 바꾸려고 야단만 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들면서 꼭 내 마음을 들켜 버린 것 같았지요. 그래서 정수가 나를 야단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수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러니 자기는 이상한 애라 생각하면서 모두가 하지 말라는 싫어하는 행동을 하였던 거지요.
 
 

너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

 
정말 정수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정수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고요. 선생님이 도와주겠다 그랬지요. 근데 어찌 제힘으로만 되겠습니까? 정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겠지요.
 
우선 부모님께 말씀 드리니 역시나 친할머니께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시며 이상한 아이라고 말씀을 많이 하신다그러시더군요. 그것이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된 것 같다고 함께 말조심하면서 관심과 사랑을 많이 주기로 하고, 다른 선생님들께도 알렸습니다. 정수가 혹시나 교실밖에 있더라도 야단치지 말고, 다독여주고 칭찬을 많이 해달라구요.
 

사랑한다고 말도 많이 하고, 안아주기도 많이 했지요. 친구들이 들으라고 이름 부를 때도 “멋진 정수야~”라고 부르니 친구들도 정수를 “멋진 정수야”라고 불렀습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역시 우리정수는 멋져!”라면서요.
 
처음엔 자기도 적응이 안 되는지 “아니야! 안 멋져!”라고 말하더라구요. 그럴 때면 저도 지지 않고 “아니야 멋져!”라고 말하며 실랑이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잘못한 행동을 할 때도 칭찬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방법을 바꿨지요. 친구를 때릴 때리는 거와 같은 잘못한 행동을 할 때면 꽉 안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정수를 정말 사랑해, 그래서 못난이가 되는 걸 볼 수 없어! 멋진 사람이 될 때까지 꽉 안아 줄거야!”라면서요. 발버둥을 쳐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강제적일 수도 있지만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것 같았지요. 다만 내가 자신을 싫어한다라는 느낌이 들게 야단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선생님은 날 멋진 사람으로 만들 수 없어!” 라고 외치던 정수는 어떤 때는 제가 칭찬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청개구리 같은 행동을 보란 듯이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려는 듯이 말입니다. 교실에 있는 장난감을 일부러 망가트리기도 하면서요. 그럴 때는 또 적절히 모르는 척도 했지요.
 
정수에게 꼭 지켜야 하는 약속과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을 일러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수업시간에는 교실 밖을 나가면 안 되지만 교실에서는 마음대로 해도 좋다와 같은 약속인데요. 처음엔 많이 도망가서 잡으러(?) 다니곤 했지만 나중엔 지키더라구요. 그럴 때면 또 칭찬을 마구해주니 이제는 수업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해나갔습니다.
 
 

이상한 아이 NO! 개성이 강한 아이

 
정수는 일부러 더 문제행동을 하였을 뿐 이상한 아이가 아니였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인지 모릅니다. 다만 호기심이 많아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해결해야 했을 뿐이었지요. 선생님이 답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답을 찾고 해결 나가려 했던 겁니다.
 
또 싫고 좋음에 굉장히 솔직한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이 좋아할 것 같아서 하기 싫어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 굉장히 솔직한 아이였던 겁니다.
 
‘어? 저거 흥미로운데!’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을 목격하면 꼭 해보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한번은 반일반 수업이 끝나고 청소를 하는데 정수가 교실에 놀러 온 겁니다. 선생님이 뭐하는지 보러 말이지요. 정수는 종일반이라 집에 바로 안가거든요. 또 몰래 종일반 교실을 나왔던 거긴 하지만요.
 
어쨌든 일명 통돌이 걸레였는데(다 아시죠? 그 페달 밟으면 돌아가는 ) 제가 하는 걸 유심히 보더라구요. 청소하다 학부모님께 전화가 와서 통화하고 와봤더니 교실이 물바다가 되어 있는 겁니다. 그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흐르며 서로를 쳐다보는데 “선생님 도와줄려고 그랬어? 정수야 고마워” 그랬지요. 그 뒤로 몇 번이나 도와준답시고 교실을 물바다로 만들기는 했지만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야단만 듣던 정수가 선생님들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 잘한다고 하는 것은 더 잘하려하고, 선생님들을 도와주고, 친구들도 도와주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서로 싸우면 “선생님 친구랑은 싸우면 안되잖아요~”합니다. 그럴때면 얼마나 우스운지 모릅니다.
 
이제는 선생님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걸압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다 생각이 든 걸까요? 유치원에 올 때면 선생님들께 “나왔어~”라며 알리고,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도 들려주고, 또 새롭게 알게 된 정보에 대해서도 말해주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가끔 다툼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그렇지 않습니다. 정수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로 변했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는 없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문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부모가 잘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프로그램이 있지요. 짧은 시간에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게 하기 때문에 약간은 강압적인 부분이 있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늘 아이뿐만 아닌 부모님의 문제행동을 변화시켜 주어 좋습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아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부모가 문제인 경우가 다반사거든요.
 
아이들은 모두 다릅니다. 틀린 것이 아닌 다름입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어른들의 요구와 틀에 맞춰 아이들을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런 시각으로 인해 그 아이의 진가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의 가능성은 엄청나게 큰 법입니다. 예측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즉, 어린이를 잴 수 있는 잣대는 없습니다. 한 시간에 한 장의 그림만 그려야 한다는 것은 교사가 만든 틀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린이가 그 틀에서 빠져나갈 정도로 큰 힘을 보일 때에는 교사가 그 틀의 제한을 없애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에게 나쁜 본보기가 된다”고 하는 것 역시 교사의 편협한 생각입니다. 마흔 명의 아이를 맡았다면, 교사는 그 아이들에게 맞는 마흔 가지의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마흔 명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하나의 답만을 가르친다면 그것은 교육도 뭣도 아닙니다.
-하이타니겐지로의 ‘아이들에게 배운 것’중에서- 
 

 

“선생님 저기봐요”
“어? 구름? 와~ 이쁘다~”
“뭉게뭉게구름이예요. 구름은 좋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모양으로 마음대로 변해요”
“정말? 구름은 진짜 좋겠다 그치?”
“네! 선생님은 구름이 무슨 모양이 됐으면 좋겠어요?”
“음...나는~ 하트구름~”
“나는요~ 티라노사우르스로구름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하면서요(공룡소리 흉내)”


이렇게 사랑스러운 표현을 하는 정수입니다. 얼마나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인지요. 정수를 만나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정수로 인해 깨달은 것도 배운 것도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의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는 없습니다. 다만 환경이 사랑스러운 아이로 크게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을 뿐이지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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