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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선생님의 카리스마가 무너져버린 사건

대한민국 교육부 2009. 9. 22. 11:23

박윤희 경북 원호초등학교 교사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온·오프라인이 연계된 학습이 도입되면서 학교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미니 홈페이지가 활성화될 즈음 나도 내 이름을 가진 ‘미니홈피’를 가지게 되었다. 

처음 홈페이지를 개설 할 때에는 단지 몇 개의 방으로 시작했을 뿐인데 지금은 육백여명의 제자와 학부모 회원들이 오십여 개의 방을 드나들며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기도 하면서 날마다 복닥거리고 있다.



해마다 담임을 발표하는 날이면 내가 맡은 학급의 이름을 따서 <2005년 3학년 3반 방>과 같은 학급방이 만들어졌다. 1년 동안 사이버 학습, 상담, 과제물 올리기, 음악 감상 등으로 활용하고 학년이 바뀌고 세월이 지나도 학급방은 그대로 계속해서 활용되고 있다. 

제자들은 자신이 쓴 일기며, 학습 광경들을 세월이 얼마쯤 지난 후에 들쳐보고 잊었던 추억의 장면을 떠올리고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담임인 나는 제자들의 근황과 자라는 과정을 지켜볼 볼 수 있어 사이버 상담을 통해 지금도 추수지도를 한다. 

특히 멀리 외국에 나가 있는 제자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아날로그시대의 멋을 간직하고 옛 친구와의 지나간 추억의 페이지들을 열어볼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마련해준 것에 감사의 뜻을 전해오기도 한다. 



어느 날, 제자들이 올린 글을 정리하고 있던 나는 한줄 메모방에서 몇 년 전 나의 카리스마를 무참히 무너뜨린 한 사건을 떠올리게 되었다. 

교직 경력에 비해 고학년 담임 경력이 그리 많지 않았던 내가 6학년을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성장속도가 빠른 아이들은 평균 몸무게가 5월 체격검사에서 벌써 나의 몸무게를 따라 잡았고, 여름방학을 지나고 개학식날 줄을 세웠을 때 아이들의 키는 한여름 수숫대가 자라듯 나의 키보다 웃자란 녀석들이 반수가 넘었을 정도였다. 체격 면에 있어서 나는 아이들에게 당연코 열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내 눈빛, 나의 작은 손짓 하나에도 흐트러짐 없이 잘 따라 주었다. 그런 모습에 동료교사들이 나를 카리스마 넘치는 교사로, 혹은 리더십 있는 교사로 인정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작지만 큰 교사가 되어 자부심을 가지고 학급 경영을 했다. 

아이들이 “선생님 머리아파요. 보건실 가고 싶어요.”라고 하면 “참아봐! 약을 자꾸 먹는 습관을 들이면 더 많이 아플 땐 어쩌려고?” 하면서 인내심을 강요했고, 뱃살빼기 작전, 극기 훈련이란 이름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낙동강이 가로지른 선산앞들과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학교 뒷산의 영봉정까지 오르게 했다. 뿐만 아니라, 맨발로 걷기까지도 요구했다. 

담임인 내가 먼저 시작하니 “앗 따가, 아이고 발바닥이야.” 라고 외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을 벗어들게 되었다. 담임이 보지 않는 곳에서 살짝살짝 신을 신고 걷기를 하다가도 저 멀리서 누군가 “선생님이다.” 라고 하고 소리치던지, 내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면 얼른 신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갈 정도로 나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일로 나의 카리스마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미술시간이었다. 어느 시간이든지 공구를 사용할 때는 시작 전에 사용방법에 대해 먼저 주의가 필요하지만 고무판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활동을 하는 시간이라 특별히 조각도 사용에 대해 주의를 주었다. 집중을 하지 않으면 손을 다치는 경우가 많아 조각도를 조심해서 사용하도록 몇 번의 주의와 다짐을 받았다. 교실은 사각사각 고무판 파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아이들은 다른 시간보다 더 집중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고, 나는 아이들의 작품 활동을 지켜보고 관찰 평가도 하고 조각도 잡는 방법이 틀린 아이들에게 바르게 사용하도록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작품이 거의 완성이 되어갈 무렵 갑자기 “피다 피! 보건실 보건실!”하고 교실이 떠나갈 정도의 외침이 있었다. 모두들 하던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손가락을 치켜들고 소리를 지르고 모두를 놀라게 한 사람은 평소에 아이들에게 바르게 하지 못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참을성이 없다고 야단을 치던 그 사람 바로 담임인 나였던 것이다. 

아프다고 소리치던 담임 곁으로 우르르 몰려든 아이들은 한마음이 되어 휴지를 찾아 내손에 묻은 피를 닦아 주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보건실로 달려가서 소독약과 밴드를 가져와서 치료를 해주었다. 그리고,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여느 아침처럼 교실 문을 여는 동시에 “좋은 아침~”하고 아침인사를 건네면 나보다 미리 온 녀석들이 우다다닥 걸상에 앉으면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해야 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상한 광경에 나는 교실 문을 열어놓고도 들어서지 못하고 입만 벌린 채 서 있었다. 

평소에는 나보다도 늦는 녀석들이 있어 빈자리가 많았는데 그 날만큼은 빈자리는 하나도 없고 밴드붙인 손가락들이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안녕하세요?”가 아닌 “보건실 밴드! 보건실 밴드!”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도 약간의 시간을 두고 정신을 가다듬고 전날 밴드 붙인 손을 내밀면서 “좋은 아침!” 하고 답례를 했다. 그리고, 교실은 웃음바다로 변해 버렸던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아이들은 조금 힘든 일을 시킨다거나 수업이 지루해질 즈음이면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손가락을 치켜들고 “보건실, 밴드! 보건실, 밴드!” 하고 장난기어린 얼굴로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면 나는 강행하려던 일을 일단 멈추어야 했으며, 그 때부터 나의 카리스마 넘치는 다부진 리더십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니, 그 무서운 얼굴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더 이상 무서운 모습을 하지 않아도 졸업하는 날까지 한마음으로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무엇이든지 최고의 학년답게 알아서 척척 해결되었던 것이다. 

“선생님, 손가락 다 나으셨나요?” 라는 한 줄 메모에 달려진 수많은 댓글을 읽으면서 나의 카리스마가 무너져버린 그 날을 떠올려 보았다. 시험기간이라 힘들다고 쪽지 글 보낸 녀석들에게 나의 카리스마를 속절없이 무너지게 한 그날의 웃음을 돌려주어 시험스트레스를 단 번에 날려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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