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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낮달 - 이문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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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낮달 - 이문제

대한민국 교육부 2009. 10. 5. 14:07

이문재

일터는 동쪽에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동트는 걸 보며 집을 나서고
노을을 향해 돌아와야 한다고 하셨다
언제나 앞이나 위에
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낮달이 떴다
늙은 아버지가 나를 낳으신 나이
나는 아직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동가숙 서가식 동문서답
그러나 낮달이 낮잠을 잘 리 없다
낮에도 하늘 가득 별이 떠 있는 것이다

낮에도 총총한 별을 생각하면
나를 관통하는 천지 사방의 별빛들을 떠올리면
내가 중심이다 너와 내가 우리가 
저마다 분명하고 힘차고 겸손한 중심이다
낮달을 보며 중얼거린다

이것을 누가 당신에게 읽어 줬으면 좋겠다
당신이 이것을 누구에겐가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도시에서 살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잊었다. 아니 빼앗겼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건물에서 눈을 떼고, 간판에서 눈을 떼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보면, 시선은 곧바로 무한 천공으로 달려 나간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든 천지간이다.

거친 비약인지 모르지만, 우리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우리가 우주적 감수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찍이 우리는 ‘관계의 주체’였다. 나는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나는 곧 너였고, 우리였고, 땅이었으며, 하늘이었고, 별이고, 우주였다. 도시에서 살면서 ‘관계’를 잃어버렸다. ‘나'는 허깨비였다. 나라는 잘난 허깨비가 우리의 모든 불행의 원천이었다.

아버지의 시대는 태양의 시대, 한낮의 시대, 일의 시대였다. 아버지의 시대에 ‘낮달’은 무용지물이었다. 낮달은 잉여였고, 결핍이었으며, 부재였다. 낮달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한낮, 대도시 한복판에서 내가, 우리가 저마다 우주의 주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인간,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낮달을 보라. 낮에도 하늘 가득 별이 떠 있는 것이다. 아, 우리는 얼마나 작은가. 그러나 작은 것과 없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아주 작고 희박하지만, 저마다 분명한 우주의 중심이다.
 
 

이문재
1959년 생. 1982년 '시운동'으로 등단.
시집 『마음의 오지』,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마음의 오지』등. 소월시문학상(2002), 노작문학상(2007) 등 수상.

 

 

이명현(IYA2009 한국조직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

도시의 건물 사이로, 푸른 하늘 속 수줍은 듯 모습을 드러내는 하얀 낮달을 보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낮반달일 때는 그 느낌이 더욱 새롭다. 낮에 달이 하얗게 보이는 까닭은 햇빛이 너무 밝아서 반사된 달빛이 다 드러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달빛도 더 노랗게 여물어간다. 별들도 햇빛에 숨죽이며 빛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낮에도 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달이 해를 가리는 일식이 일어나는 순간이 되면 이렇게 숨어있던 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천문대에 가보시라. 낮이라도 망원경을 돌려 별을 찾아보시라. 그들은 거기에 있다. 낮반달이 아쉽고 사랑스러운 건 아직 더 반사해야할 빛이 남아있고 또 아직 더 채워야할 빛이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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