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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4.19, 그 날을 기억하며

대한민국 교육부 2015. 5. 7. 14:21

4.19, 그 날을 기억하며


▲수유역 벽면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수유역은 국립4.19민주묘지와 가까운 역입니다. 그래서인지 수유역에서는 국립4.19민주묘지를 알리는 사진 액자가 여러 개 걸려있어요. 지난 20일까지 특별사진전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 민주의 뿌리


'민주의 뿌리'라는 조각입니다. 2m에서 10m까지 다양한 높이의 기둥 9개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독재와 부정의 시대 상황을 뚫고 솟아난 기상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국립4.19민주묘지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보입니다. 이곳의 조각들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기둥 모양이 많아요.


▲정의의 불꽃 (출처: 국립 4.19 민주묘지 홈페이지)


상징문과 마주보고 있는 '정의의 불꽃'이라는 4·19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불꽃 형상으로 표현한 조각입니다. 이날 진행된 행사로 인해 가려져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각의 기념비적, 수직적 형태 안에 불꽃의 형상을 투각했습니다. 무궁화 꽃잎을 상징하는 3개의 반원형 형태가 그 수직적인 형태를 감싼 형상으로 구성돼 있으며, 기타 조형물과 연계하여 결실의 완성적 의미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날은 행사로 인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답니다. 정의의 불꽃 앞 참배 대기광장에서 참배로 쪽을 향해 상징문을 지나면 성역 공간입니다.


▲수호 예찬의 비


▲자유의 투사


참배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펼쳐진 잔디광장의 양쪽 끝에는 '수호 예찬의 비'와 '자유의 투사'라는 조각이 있습니다. ‘수호 예찬의 비’는4·19혁명을 소재로 발표된 시 중에서 많은 분들이 추천한 12수의 시를 새긴 것이고, ‘자유의 투사’는 궐기학생과 진압경찰의 대치 상황을 수평적 구도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상징문에서 본 참배로


국립 4·19민주묘지 중앙에 '4월학생혁명기념탑'이 우뚝 서 있습니다. 높이 21m의 화강석 탑주 7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1960년 4월 불의와 독재에 항쟁하다 희생된 4·19혁명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1962년 3월 23일 재건국민운동본부 안에 각계각층을 망라한 기념탑건립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962년 11월 21일에 기공하여 전국민의 성금과 국고 보조로 1963년 9월 20일 제막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가운데 있는 ‘군상환조’는 4·19혁명 당시 민중의 형상을 반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날의 현장을 지켜보며 후세에 이를 증거하는 묵시적 형상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군상환조’ 바로 아래에는 기념탑 비문이 있습니다.

'1960년 4월 19일 이 나라 젊은이들의 혈관 속에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부정과 불의에 항쟁한 수 만 명 학생 대열은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민주제단에 피를 뿌린 185위의 젊은 혼들은 거룩한 수호신이 되었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답니다.

 

중앙부에 있는 환조를 중심으로 좌우로 벽면조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총 200조각으로 이루어진 이 군상부조의 좌측 1·2부는 4·19혁명 당시 암울했던 시대 상황과 민중들의 자유에 대한 염원을 표현했고, 우측 3·4부는 혁명 이후의 승리, 자유와 평화 등을 표현한 것입니다. 

기념탑 좌우로 수호자상이 1개씩 위치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의 건장한 남·여 한 쌍으로 정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형상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1묘역 71번 김주열 묘


군상부조 뒤에는 585기를 안장할 수 있는 묘역이 위치해 있습니다. 4·19혁명 당시 사망자, 부상자로서 사망자, 4·19혁명 유공건국포장 수상자 등을 안장 대상으로 합니다. 현재 227기의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제1묘역에는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 실종되었다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어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김주열 열사의 자리도 있습니다.


▲유영봉안소


국립 4·19민주묘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유영봉안소에는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의 시민들,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국민학교 학생도 있습니다. 이렇게 목숨을 바쳐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공기만큼이나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4·19혁명 기념관


1층에는 4·19혁명의 배경과 그 내용을 영상 매체로 형상화하여 전시해두었습니다. 제 기억에 남은 것은 진영숙 학생의 사연이었습니다. 희생자 중 유일하게 유서를 남겼던 여학생이랍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어머님께 남긴 편지 전문이 적혀있었는데, 존경스러웠습니다. 중학교 2학년의 여학생까지도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것입니다.

 

2층에는 4·19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재평가에 대한 정보 검색, 유물 전시 코너 등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었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피 묻은 고려대학교 수건이었습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4월 18일에 연좌시위 후 해산하던 중 정치 깡패들의 기습으로 40여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당시 고려대학교에서는 신입생 환영회 기념품으로 수건을 나눠줬는데, 이를 머리에 두르고 시위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전국 학생 그림 그리기 & 글짓기 대회 접수처


4·19 혁명 국민문화제 2015 행사 중 하나인 전국 학생 그림 그리기 & 글짓기 대회가 있었어요. 그림 그리기는 초등학생, 글짓기는 중학생 대상으로 열렸답니다. 이 날의 행사를 시작으로 18일의  4·19 혁명 국민문화제 전야제, 19일의 제55주년 4·19 혁명 기념식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어요.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55년 전, 자유를 외친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출처] 4.19, 그 날을 기억하며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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