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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우리 생활

대한민국 교육부 2016. 1. 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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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우기

일년 강수량의 절반이 여름에 편중되어 있는 한반도 자연 조건 속에서 강수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진 것이 측우기입니다. 가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창안된 측우기,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작은 그릇 속에 과연 어떤 정신과 과학 기술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 보물 561호 금영 측우기 

측우기는 조선 세종 23년(1441)에 만들어진 후 여러 차례 다시 만들어졌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헌종 3년(1837)에 만들어진 금영 측우기가 유일합니다. 금영 측우기(錦營 測雨器)는 현재 존재하는 유일한 조선 시대의 측우기로, 공주 감영에 보관되어 있다가 일본인에 의해 발견되어 일본 기상청에 옮겨졌으나, 1971년에 우리나라로 반환되었습니다. 보물 제56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기상청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 보물 561호 금영 측우기(출처: 에듀넷)



■ 측우기의 구성과 원리 

측우기는 3단 구조로 분리해 만든 후 하나의 원통으로 연결해 사용하였습니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던 것일까요? 측우기의 3단 구조는 비가 조금 내려 맨 아랫부분에 고였을 때 윗부분을 들어내고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분리하여 만든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고 합니다.


또, 사진에서 본 것처럼 측우기는 원통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측우기가 원통 모양인 이유

• 하늘에서 비가 떨어질 때 측우기 모서리에 각이 져 있으면, 물이 튀어 정확하게 양을 측정할 수 없었기 때문

• 같은 둘레라도 원형으로 된 그릇이 물을 더 많이 담을 수 있기 때문


측우기는 빗물을 받는 그릇인 ‘측우기’와 측우기를 세워 두는 ‘측우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든 측우기는 높이 41cm, 지름이 약 16cm인 원통형이었지만 그 통을 채울 만큼 비가 많이 오는 일이 없어서 높이 약 30cm, 지름 약 14cm 정도로 줄여서 다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측우기 밑에 있는 사각 기둥 모양의 측우대는 측우기가 땅에서 어느 정도 위로 떨어져 있도록 해서 빗물이 튀어 들어가지 않게 해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 측우기의 구조(출처: 에듀넷)



■ 과학적으로 설계된 측우기 

측우기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농기구를 이용해 비가 온 정도를 가늠했습니다. 문헌을 통해 메마른 땅에 빗물이 스며든 깊이를 호미가 들어간 정도, 쟁기가 들어간 정도로 보고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온 후 젖은 흙의 깊이를 측정하는 것은 토양의 종류와 성질, 건조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서는 정확한 강우량을 측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측우기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1441년 세종의 명을 받은 세자(문종)의

아이디어에 의해 측우기가 탄생

VS

유럽의 경우 1639년 갈릴레이의 친구이자

제자인 이탈리아 수학자 ‘카스텔리’가

최초로 우량기를 만들어 강우량 측정

15세기 조선의 측우기는 유럽보다 약 200여 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획기적인 발명품!


빗물의 양을 재는 그릇. 측우기. 그렇다면 조선 시대 측우기는 어떻게 활용되었을까요? 당시 비의 양의 측정은 오늘날 기상청에 해당하는 서운관에서 맡았습니다. 서운관에서 한 일에 대해 알아봅시다.


오늘날의 기상청, 서운관에서 한 일

• 비의 양의 측정(세종실록에 측정 방법까지 규정되어 있음)

• 강우량은 비가 그쳤을 때 측정함

• 측정할 때 자는 주척(길이 약 21.3cm)을 사용함

• 비가 내리기 시작한 일시와 갠 일시를 기록

• 수심은 척, 촌, 푼까지 기록한다고 기록되어 있음 - 이는 지금의 단위로 보면 약 2mm 단위까지 측정하는 것으로 매우 세밀한 측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처음 측우기가 제작된 지 570년이 지난 현재 빗물의 양을 재는 방법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조선의 측우기가 현재 세계기상기구(WMO)에서 규정한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빗물만 받을 수 있는 인공적 환경 조성을 위해 받침대인 측우대를 사용했던 점도 현재 세계 각국 우량계의 지상 고도가 75cm에서 150cm라는 것과 비교하면 조선 시대 측우기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는지 알 수 있겠지요?



■ 세계 최초로 강우량을 측정한 나라, 조선

▲ 조선은 측우기를 설치한 세계 유일의 나라(출처: 에듀넷)


이렇게 세계 최초로 시행된 조선의 측우 사업은 단지 측우기라는 한 발명품의 소산이 아니라 측우 제도라는 국가적인 차원의 종합적이고도 과학적인 시스템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정량적인 관측 자료들은 조선의 국정 운영에 다양하게 활용되기도 하였습니다. 21세기 국제 표준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15세기 조선의 측우기, 이는 우리 인류가 경험한 가장 오래된 우량 계측기이자 세계 기상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과학적 성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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