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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루지, 선수에겐 질주본능 아닌 생존문제

대한민국 교육부 2010. 2. 19. 16:19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막식 직전, 불의의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루지야의 루지선수인 ‘노다르 쿠마리타시빌리’ 가 훈련 중 전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 봅슬레이의 평균 하강 속도는 130km가 넘는다.

노다르 선수는 현지시간 13일 캐나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에서 최종 마무리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기록점검을 위해 막판 스퍼트를 하던 노다르 선수의 속도는 시속 148km에 달했는데 그가 16번 커브를 돌던 순간, 원심력을 이기지 못해 썰매 바깥으로 튀어나왔고 반대편 벽의 쇠기둥에 강하게 충돌했다. 

사고가 발생한 휘슬러 슬라이딩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코스로 정평이 나있는 경기장.
 
이에 대해 지난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최 측이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코스의 스피드를 높이도록 설계했다”“사고의 위험으로 인해 전문가들이 코스를 수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보도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밴쿠버 조직위의 레니 스미스-발레이드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루지는 아주 빠른 스피드 스포츠여서 잘못된 판단이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만 지난 2년간 경기장에서 테스트로 인한 중대한 사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고로 루지를 비롯한 모든 동계올림픽 종목의 위험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며 빙판에서의 마찰력과 공기의 저항이 관건인 겨울스포츠의 특성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빙판 질주의 비밀은 압력과 마찰
 

스포츠 경기는 순간에 승부가 엇갈린다. 특히 기록경기가 많은 동계올림픽은 그런 점에서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은백색 설원을 달려 내려가는 스키, 새처럼 부양하는 점프, 빙판트랙을 총알처럼 질주하는 봅슬레이 경기 등은 모든 인간의 질주 본능을 일으켜 기록에 생명을 걸게 하는 겨울스포츠다. 

▲ 루지 경기는 공기저항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드러누운 자세로 탄다.

스케이트, 썰매, 스키 등의 기구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겨울스포츠가 스피드를 이용하는데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복빙(復氷)현상이란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물은 1기압일 때, 100도에서 끓어 수증기가 된다. 또 0도에서 얼어 얼음이 된다. 그러나 압력이 커지면 끓는 온도와 어는 온도가 달라진다. 압력이 커지면 끓는 점은 높아지고, 어는 점은 낮아져 영하 5도에서도 물은 얼지 않고,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얼음에 압력을 가하면 힘이 작용한 부위는 일시적으로 녹는다. 이어 압력을 제거하면 다시 얼음으로 되돌아간다. 이렇듯 압력에 의해 얼음의 녹는 점이 낮아져서 쉽게 녹고, 압력이 사라지면 원래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 복빙 현상이다. 

다시 말해 썰매나 스케이트 날에 체중이 실리면 큰 압력으로 얼음을 누르게 되고, 이때 얼음의 녹는 점이 낮아져 얼음은 물로 변한다. 이 때 발생한 물은 스케이트 날과 얼음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되고 빠른 속력의 바탕이 된다.

마찰열도 한 몫 한다. 두 물체가 서로 맞닿을 때 생기는 마찰열은 썰매와 접촉한 부위의 얼음을 녹인다. 순간적으로 얼음 입자가 물로 변하면서 강력한 윤활 작용을 하게 되는 것.

이를 위해 썰매는 나무로 만든다. 금속으로 만든 썰매와 나무로 만든 것을 비교했을 때 나무로 만든 목재 썰매가 빠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금속의 경우, 열전도율이 높아 마찰열을 제대로 눈에 전달하지 못하는 반면, 나무 재질은 열전도율이 낮아 눈을 잘 녹일 수 있어 윤활작용이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빠른 스피드를 원리로 하는 썰매 경기의 경우, 승부의 관건은 바로 공기저항이 된다. 빠른 스피드에서 공기저항은 최대의 걸림돌이다. 이를 위해 선수들은 균형을 잡은 상태에서 공기저항을 이기기 위해 최대한 낮은 자세로 경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자세다.   


   승부의 관건은 커브구간에 있다
 

1924년 동계 올림픽에서 남자 4인 경기로 첫 선을 보인 ‘봅슬레이(Bobsleigh)’는 특수 고안된 원통형 썰매를 탄 채, 좁고 구불구불하며 경사진 얼음 트랙을 중력에 의해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가는데 걸린 시간을 비교하는 경기이다. 

경기 중 선수들이 트랙을 하강하는 속도는 140~150km에 이른다. 2009년 2월 라트비아 팀이 기록한 시속 152.68km가 현재 공식적인 최고 평균 속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 사촌 격인 ‘루지(Luge)’ 경기는 1964년 제 9회 동계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또 루지와 비슷한 ‘스켈레톤(Skeleton)’ 경기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봅슬레이, 루지, 스켈레톤은 경기 방식이 다를 뿐 모두 트랙을 질주하는 점에서 똑같다. 봅슬레이는 선수 2명 또는 4명이 썰매를 타고, 루지는 누워서, 스켈레톤은 엎드려서 썰매를 탄다. 이들 모두 공기 마찰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일단 출발하면 우승을 위해 가속 이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가속보다 트랙에 있다. 1902년에 최초의 봅슬레이 전용 트랙이 스위스 ‘장크트모리츠(Sankt Moritz)’에 만들어졌다. 그 트랙은 일직선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곡선 주로가 있는 구불구불한 형태로 발전했다. 나무로 만들어졌던 트랙도 유선형의 섬유 유리와 금속 재질로 바뀌어 하강속도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트랙에 곡선구간이 생겨나면서 썰매 경기는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변모했고,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관중들은 은백색의 길고 좁은 트랙을 인간탄환처럼 질주하며 커브를 도는 선수들의 아슬아슬한 묘기에 감탄했다. 

▲ 커브가 많은 루지 경기는 항상 원심력에 의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루지 경기장은 인공으로 만들어지는 인공트랙과 자연 경사면을 이용한 자연트랙이 있지만 올림픽에선 인공트랙만을 채택하고 있는데 특히, 경사진 코스에 커브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루지 선수들은 스피드를 줄이지 않은 채, 원심력을 극복하면서 커브를 잘 활주하느냐가 승부의 최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를 깔고 머리부터 내려오는 스켈레톤보다 다리부터 내려오는 루지 경기가 더 위험하다. 그 이유는 루지의 경우 핸들이나 브레이크가 없으며 특히 드러누운 자세에서 커브 구간을 만나면 컨트롤이 힘들기 때문이다.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대회에서 영국의 루지 선수가 대회를 앞두고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루지 경기를 비롯한 봅슬레이 경기를 두고 안전 문제가 거론됐다. 

이번에 사망 사고가 난 휘슬러 트랙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선수들의 사고가 빈발했으며,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따낸 ‘아민 조글러’ 선수를 포함, 많은 선수들이 훈련 중 코스이탈과 충돌사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km 이상의 속도를 줄이지 않고 커브를 도는 루지 경기는 원심력에 의한 이탈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관중들에겐 질주의 쾌감을 선사하지만 정작 선수들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경기다. 질주는 선수들에겐 본능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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