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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를 소개합니다. 본문

교육부 국민서포터즈

광복절 특집,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를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교육부 2020. 8. 14. 09:00

8월 15일 바로 1945년,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광복절”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김구,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의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광복을 위해 헌신하고 투쟁하였는데요. 혹시 이분들 외에는 또 어떤 독립운동가가 떠오르시나요? 쉽게 떠오르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광복절을 맞이하여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독립 운동가를 한 분 한 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6명의 독립운동가"

 

1. 이화림

이화림은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3·1 운동, 22살에 학생운동을 한 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해로 떠났는데요.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이었습니다. 상해에 도착한 후, 김구가 만든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고, 여기서 우리가 아는 윤봉길 의사를 만나게 됩니다. 윤봉길 의사가 일왕의 생일날에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진 사건, 다들 알고 계시죠? 이화림은 윤봉길이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또한, 이화림은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에서 부녀대 부대장을 맡았으며, 직접 전투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남성 대원들의 식사 준비 제공까지 담당하는 등 자신의 청춘을 온전히 독립운동에 바쳤습니다.

 

2. 이회영

이회영의 집안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던 부자 집안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자신들의 전 재산을 모두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한 다음,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은 만주에 도착한 후 ‘신흥 무관 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회영은 ‘신민회’, ‘헤이그 특사’, ‘의열단’ 등 국외 항일운동의 전반에 관여하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습니다.

 

3. 김마리아

김마리아는 동경여자학원에 재학 중이던 시절, 여학생들을 모아 2·8 독립선언 당일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그 후, 그는 2·8 독립선언문을 복사하여 옷 안에 감추고 부산으로 건너왔고, 전국 각지를 돌며 많은 사람에게 독립운동에 함께 참여하자 외쳤습니다. 특히, 김마리아는 여성들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권하고 3·1운동 당일에도 많은 여성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뜻을 같이 했던 여성들과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창설하여 회장직을 맡아 여성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사실 김마리아는 일본 동경여자학원과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였기 때문에 충분히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독립운동에 매진했습니다.

 

4. 박자혜

조선총독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박자혜는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간호사의 독립 운동단체인 간우회를 만듭니다. 그는 간호사로서 조선인 부상자들을 치료함과 동시에 독립운동 관련 인쇄물을 제작하고 만세운동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도 적극적으로 이끌어나갔습니다.

 

박자혜는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인 신채호의 아내이기도 한데요, 박자혜는 신채호와 함께 국내외를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박자혜는 신채호가 감옥에서 계속 책을 쓸 수 있도록 필요한 자료들을 보내주는 등 7년 동안 옥바라지를 하면서 두 아들을 혼자 키워냈습니다. 그는 남편과 함께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여성이었습니다.

 

5. 한용운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한용운은 사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한용운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1운동에 적극참여하고 불교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권유했습니다.

 

한용운은 가장 대표적인 저항시인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데요, ‘님의 침묵’이라는 시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소망하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였으며, 환갑이 넘은 이후에도 창씨개명 반대운동을 주도하는 등 끝까지 일본의 식민통치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6. 조마리아

조마리아는 바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입니다. 안중근이 독립운동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볼 수 있는데요, 안중근이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도 그는 아들에게 “옳은 일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고 말합니다.

 

조마리아는 젊었을 때부터 독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조마리아는 은가락지 2쌍, 은노리개 2개, 은장도 1개 등 상당히 고귀한 물건들을 내놓으며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안중근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잘 곳을 제공하고 식사를 준비해주는 등 그들을 계속해서 뒷바라지했습니다.


지금까지 총 여섯 분의 독립운동가를 함께 만나보았는데요, 우리나라가 독립을 이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조국을 위해 투쟁하고 기꺼이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기사는 2020 교육부 국민서포터즈의 의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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