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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책을 사랑한 여중생, 국문학도를 놀래킨 사연

대한민국 교육부 2011. 4. 22. 10:13


나른한 오후, 회사 컴퓨터 앞에서 꾸벅꾸벅 졸며 업무관련 기사를 수집하던 중, 잠이 확 달아나게 만드는 타이틀을 보았다.

'유아기 다독, 아이 뇌 망치는 지름길'
 
국문학을 복수전공하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이 독서의 중요성이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히는 것이 뇌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니. 나는 지금 이 문장을 쓰고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내가 지금 쓴 부분의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함께 생각해보자.
 
책을 많이 읽히는 것이....
읽히는 것....
읽는 것이 아닌 읽히는 것!
 
그렇다. 저 자극적인 타이틀을 가진 기사를 상세히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지나친 독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자발적이지 않은, 부모의 욕심에서 독서가 시작되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과학기술부 블로그를 찾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과 교사를 위하여 한 학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독서를 즐기는 학생이다. 그게 전부다. 혹시나 그 독서를 통해 논술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거나, 국어과목을 전교1등하는 아이를 기대한다면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 다른 기사들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선일여중 3학년 김도희양을 만나게 된 것은 내가 공부를 도와주던 학생의 책상위에 놓인 학교 문집에서였다.
 

봄이야기
 
산 아래 이끼를 휘감아 도는 이끼꽃
별 아래 들꽃을 되휘어 도는 별꽃
 
옅푸른 치맛단을 손으로 쥐고
징검다리 위를 건너
당신의 손을 잡고 밝게 미소 짓고.
 
찔레 잎사귀를 뜯어
작은 차 위에 내려놓고
은방울꽃 꽃망울을 잘라
갈빛 바구니를 장식하고
 
작은 연인의 어깨 위에 기대어
함께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슴 벅차는 순간을 그리며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담았다.
 
당신과 나는 하늘을 돌아 마음에 별을 심었고,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서로를 향한 말에 별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들에 누워 낮달이 내려앉는 숲을 바라보았다.  
 
대학교 4년 내내 남이 쓴 시를 읽어보기만 했지 제대로 창작 한 편 해본적 없는 내가 이 시를 읽고 대단한 평을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놀라웠다. 대학에서 교육학과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과로 교생실습을 다녀왔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쳐 보았다. 주로 고등학생들을 많이 가르쳤는데도 불구하고 중학생인 이 아이만큼의 어휘력을 가지고, 감성을 말로 풀어낼 줄 아는 아이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읽고, ‘이 아이는 대체 누구니?’라고 물었더니 과외받는 학생이 마침 자기네 반 친구라고 했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기로 정평이 난 아이란다. 봄이 찾아오던 3월 초 동네 피자가게에서 그렇게 도희와 만나게 되었다.
 
도희에게 ‘독서’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가 마주할 수 없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돛이라고 했다. 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라고 한다. 입학식 즈음에 사촌언니가 추천해 준 해리포터 1권을 읽으며 책읽기가 재미있어졌단다. 도희는 책을 읽으면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다 느낄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책 읽기를 계속해나간다고 했다.
 
 
Q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니?(새로운 책을 알게되는 경로나, 선택하는 기준)

요즘은 교보문고 사이트나 리브로 사이트를 들어가서 관심있는 주제어를 쳐서 검색해요. 책소개나 서평을 다 읽다보니 마음에 드는 책을 찾으려면 두 세 시간은 훌쩍 넘더라구요. 일단 주제가 평범하지 않고, 상업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책을 위주로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인기를 끌기 위해서 쓴 책은 그 주제나 내용이 너무 티가 나거든요.

 
Q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니?

대체로 환타지 문학이나 인문학을 좋아해요. 하지만 고대사도 굉장히 많이 읽는 편이에요. 항해, 향신료 관련 서적들에도 관심이 많아요.

  
Q '책'이 위로, 학습, 조언이 되기도 하는데, 도희에게 책이 이런 기능을 한 적이 있니?

큰 슬럼프가 온 적이 있었어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무기력해지고 자꾸 모든 게 귀찮았었죠. 그런데 [전갈의 아이]를 읽고서 꽤 오랫동안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서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원래대로 돌아왔죠. 저에게 책은, 굳이 말하자면 계몽을 해줘요. 하지만 책이 일깨워주는 건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에요. 그 책 자체로써 저에게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가져다주죠.

 
Q 학습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책이 있었니?

시중에 나온 학습 만화나 학습 도서들은 굉장히 많은 데, 도움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수학 귀신]과 [수학의 눈을 찾아라] 는 정말로 제가 수학을 좋아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어요. 전 수학을 굉장히 어려워했거든요.



Q TV, 인터넷을 얼마나 해? 그것이 실제로 독서에 방해가 되니, 아니면 도움이 되니?

인터넷은 잘 모르겠지만 TV는 정말 방해가 돼요. 어렸을 때 TV를 다 보고나면 항상 이유없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느낌을 받아서 지금은 잘 보지 않아요. 일주일에 1시간 정도? 인터넷은 꽤 자주 하는 편이에요. 인터넷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많고, 제 스스로 글을 쓸 수도 있거든요.

 
Q 독서한 것을 어떤 식으로 정리해? 기록을 하니?

좋아하는 책은 따로 공책에 기록을 해요. 그리고 좋아하는 구절은 직접 손으로 베껴서 모아둬요. 기억에 깊이 남는 부분은 여러 가지 도구를 이용해서 스케치 해두거나 조각하기도 하구요. 요즘은 독서록에 꼼꼼하게 모든 내용을 적는 것 같아요.

 
Q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이 뭐야?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요. 홀든 코울필드에 저 자신을 투영하고 있었어요. 제가 항상 느끼던 것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홀든도 똑같이 겪고 있었거든요. 이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뻐요.

 
Q 중학교 1학년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햇빛 사냥]을 추천하고 싶어요. 모두가 알고 있는 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후속작인데, 소년이 된 제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Q 도서반 활동을 한다고 들었는데 활동이 독서에 도움이 되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완전히 없지는 않아요. 책을 정리하고 목록표를 작성하다보면 좋은 책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거든요. [역사와 배], [대항해시대] 도 그렇게 발견한 책이었어요.

 
Q 앞으로 어떤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니?

앞으로는 외교학과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요. 외국의 문화, 그리고 그들의 삶을 배워나가기도 하는 것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언어를 배우는 게 즐거워요. 외국어는 한국어와는 또 다른 매력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도희양은 학교를 착실히 다니며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하며 살고 있다. 신문지면상에 나올만큼 대단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거나, 전교권에 들만큼 최상위권의 성적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국어선생님께서 인정하실정도로 도희의 독서력은 대단했다. 엄마의 등쌀에 밀려 대학추천도서 목록 1부터 100까지 읽고 기계적으로 독후감을 쓰는 태도와는 분명 구분된다. 도희는 책을 통해 위로를 얻고, 정보를 얻으며 또다른 지적 모험을 위한 호기심을 자극받기도 한다. '이런 책 읽어봤니?' 라고 물었을 때 그 책에 관한 설명 뿐 아니라 연관된 다른 책들에 관해서도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놀라웠다.
 
대학생인 내가 저 정도로 독서에 빠져본 적이 있던가?
 
먹고노는 대학생이라해도 나름대로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독서 그 자체가 즐거웠던 적은 많지 않았다. 전공관련 서적이 아니면 아예 읽지를 않았고, 혹시나 독서를 한다해도 대중적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 몇 권이 전부였다. 아마 많은 대학생들 - 독서를 즐기지 못하고, 청소년기 내내 교과서 외엔 활자를 읽으려하지 않았던- 또한 나와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를 하며, 이 작고 평범한 소녀의 독서사랑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당장 나부터 이 학생에게 큰 도전을 받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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