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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이전에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13. 07:00


2월 14일.. 내일은 발렌타인데이입니다.
며칠 전부터 백화점과 제과점에는 초콜릿 판매에 열을 올리고, 발렌타인데이를 노린 온갖 상술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발렌타인데이는 서기 3세기 로마의 크리스트교 순교자인 성 발렌타인의 순교기념 축제일인데요, 물론 그 분이 순교하신 숭고한 뜻을 기리는 것을 문제삼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날 갑자기 왜 저 먼나라의 축제일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날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 날이 가지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의미를 놓친 채 외국의 축제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1. 우리의 역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일본의 독도 소유권 주장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등 요즘 주변 국가에서 우리나라 역사의 근본을 흔들어 놓으려는 노골적인 시도에 불쾌함을 넘어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질텐데 그저 상대방 나라 대사를 불러들여 항의를 하거나 규탄대회를 여는 식의 대응으로는 해결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더욱 강화된 역사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확히 알아야 상대방의 억지 주장에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으로 우리의 것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재 추진 중인 고등학교 '한국사' 필수 과목화나 쉽고 재미있는 방식의 역사 수업모델 및 교과서 개선 등 역사교육 강화 방안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우리 역사를 소홀히 하거나 아예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발렌타인데이가 그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발렌타인데이라고 들떠있는 그 날에, 우리나라의 독립순국선열인 안중근 의사께서 1910년 2월 14일 중국 여순의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2.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다

 
안중근 의사께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일본에 의해 사형을 당하셨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거사 이후에 어떤 과정을 거쳐 순국하셨는지, 그리고 그 분이 어떤 뜻을 펼치고자 거사를 치르셨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12월 중국 여순에 있는 옛 일본관동법원(旅順日本關東法院舊址)에 다녀왔습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은 이 법원은 1945년 해방 후 잠시 대련(大連)시에서 이용하다 1953년부터 병원으로 사용되었는데요, 신축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철거 위기에 몰렸으나 고마운 분들의 노력으로 중국의 문화재 지정을 받아 원형복원 후 현재는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법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왼쪽은 '죄수' 계단, 오른쪽은 방청객이 올라가는 계단이라고 써있었습니다.

 
 
안의사께서 여섯번이나 재판을 받았던 법정입니다.
비교적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에게 영화를 상영해주기도 하고 가끔은 세미나도 이곳에서 연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나는 개인의 사사로움으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라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를 교란한 자이므로 총살하였으니 나를 살인자가 아닌 전쟁포로로 처분해달라'고 요구하셨으며, 이토 히로부미의 15개 죄상을 하나하나 당당하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법정에서 말한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 죄목'>
 
   첫번째, 한국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두번째, 한국황제(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세번째, 5조약(을사조약)과 7조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네번째,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요.
   다섯번째,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여섯번째,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마음대로 빼앗은 죄요.
   일곱번째, 제일은행권 지폐를 발행, 마음대로 사용한 죄요.
   여덟번째,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아홉번째, 교육을 방해하고 신문 읽는 걸 금지시킨 죄요.
   열번째, 한국인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열한번째,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요.
   열두번째,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열세번째,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쉬지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
   열네번째,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요.
   열다섯번째, 일본 현 천황의 아버지 고메이 선제를 죽인 죄이다.

 
 
하지만 일본이 안의사의 의견을 귀담아 들었을리가 없죠. 판사, 검사, 변호사, 통역관, 방청인 모두 일본인으로 가득찬 법정에서 그들 뜻에 따라 형식적인 재판이 열렸으니 결과는 보나마나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1910년 2월 14일 6번에 걸친 재판이 종결되는 날, 안중근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안중근 의사 재판 광경을 찍은 사진들)



3. 1910년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되다

 
사형이 선고된 후 안중근 의사는 여순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안의사는 이후 항소도 포기한 채 이곳에서 자서전인 [안응칠역사]와 거사의 이유를 담은 [동양평화론]의 저술에만 심혈을 쏟았습니다.
 
일본인들에 의해 부당하게 진행된 재판에서 구차하게 이유를 밝혀 목숨을 구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기에 안의사는 항소를 포기하고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며 후세에 거사의 진정한 이유를 남기려고 하였습니다. [동양평화론]을 끝낼 때까지 만이라도 사형 집행을 연기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1910년 3월 26일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수감생활을 했던 여순감옥 감방. 간수부장 당직실 옆에 있는 이 감방에 단독으로 구금되었다.)


 
부슬비가 내리던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의사의 사형이 집행되었던 여순감옥 사형장입니다. 어머니께서 직접 지어주신 하얀 수의를 입고 죽음을 맞이하셨으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아무 것도 남길 유언은 없으나 다만 내가 한 일(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동양평화를 위해 한 것이므로 한일 양국인이 서로 일치협력해서 동양평화의 유지를 도모할 것을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었던 여순감옥 사형장)


 
그 분의 삶에 대해 하나의 기사 속에 담을 수는 없겠지만, 또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한분한분 기리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일년에 특별한 날 며칠은 숭고한 희생과 깊은 뜻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4.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발렌타인데이도 있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날이 안중근 의사께서 일본의 일방적인 재판 아래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받으셨던 날이었음을 기억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치신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즐거운 발렌타인데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께서 동포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을 읽으며 우리가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합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 풍찬 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이 곳에서 죽느니
우리 2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산업을 진흥하여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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