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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대한민국 교육부 2009. 7. 22. 17:11

글 | 이경수(양곡고등학교 교사)


점심때 메일을 열었다. 꽤 많이 오긴 했는데, 한 통 빼고는 모두 스팸이다. 그 한 통은 김혜정이라는 여인이 보낸 “너 그렇게 살면 안되.”라는 제목의 메일이었다. 

김혜정? 김혜정?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제목은 또 뭔가. 맞춤법도 안 맞는, "너 그렇게 살면 안되."라니. 일단 열어봤다. 

허, 이런…. 돈 싸게 빌려준다는 스팸이다. 아, 혜정이 너마저도….

그런데, 제목을 읽으며 나도 몰래 움찔했다. 차 몰고 가다 경찰차 보이면 괜히 그러하듯이. 왜 그랬을까? 나는 왜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이 한마디에 주눅이 들고 말았을까…. 밤이 깊었다. 비는 그치고 고요가 내렸다. 남은 빗방울, 처마 끝에 매달렸다가 힘 다하여 떨어지는 소리, 들린다.

내 첫 직장 마산중앙고등학교. 교실 창가에 서면 저 아래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었다. 커다란 배가 멈춘 듯 움직이며 묵직한 고동소리 뿜으면, 저절로 가슴이 저렸다. 그곳에서 3년 만에 담임을 맡았다. ‘첫 직장’보다 ‘첫 담임’에 나는 더 설레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진짜 선생이 된 기분이었다. 내 아이들은 또 얼마나 예뻤던가.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담임 좀 안 하면 얼마나 좋을까, 1년만 빠져도 원이 없겠다, 노래를 하며 살았다. 그 노래가 효력을 발해서 작년, 재작년 연거푸 담임을 안 했다. 몸이 형편없이 약한 탓에 학교 측의 배려를 입은 것이다. 조금 허전하긴 했지만 좋았다. 조,종례 들어갈 일 없고, 생활기록부 입력 작업할 필요 없고, 아이들 때문에 속 썩을 일 없고, 정말 좋은 게 아주 많았다. 그렇게 만족했어야 했는데, 어느새 올해도 담임 빠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다시 일었다. 편안함에 맛이 들어버렸다.

내가 몸 편한 만큼 동료 가운데 누군가가 더 많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학교에서 담임 안 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부장교사 빼고, 원로교사 빼고, 담임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사정이 있는 한둘 빼고 나면, 정말 빠질 자리가 없다. 내가 담임직에서 제외됐을 때, 내 들어갈 자리를 메워준 분은 예순 되신 정 선생님이었다.

퇴직 얼마 남지 않았지만, 흔쾌히 어려움을 안아주셨다. 내가 놀고먹는 동안 ‘할아버지’ 선생님은 교실에서 살았다.

지금 나는 1학년 담임이다. 다시 ‘3년 만에’ 담임이 되었다. 각오는 했지만, 참 힘들다. 머리도 손끝도 모두 무뎌져서 일 처리가 자꾸 늦어진다. 두 달이 지났건만, 당최 여유를 찾을 수 없다. 차 한 잔 온전히 마실 시간도 없는 날이 많다. 아이들 다루기도 더 어렵다. 연일 쏟아져 들어오는 문서를 처리하면서 내가 애들 가르치는 교사가 맡는지, 회의가 일기도 한다.

좋아진 것도 있다. 내 아이들이 생긴 데서 오는 소속감이다. 내 등에 기댄 서른다섯 명 아이들을 통해 교사로서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몸이 고달픈 만큼 마음속 근심이 줄었다. 바빠서 근심을 ‘제작’할 시간을 빼앗긴 덕분이다. 몸 편하던 비담임 시절, 마음마저 편했던 것은 아니다.

이건 문제다. 미운 녀석이 몇 있다. 입학 첫날부터 무지하게 속을 썩이는 녀석들이다. 그 두어 아이가 나머지 삼십여 아이들보다 더 벅차다. 내가 한 발 더 가까이 가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예전의 나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사고뭉치는 또 그대로 사랑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른들도 잘못하며 사는데, 철없는 아이들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끝까지 품으려 했다.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변해버렸다.

處困如亨(처곤여형), 視醜如姸(시추여연)

요즘 내가 붙들고 있는 경구(警句)다. ‘곤경에 처해서도 형통한 듯이 하고, 추한 것 보기를 어여쁜 듯이 하라.’라는 뜻인데, 정민 선생이 쓴 『성대중 처세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처곤여형, 시추여연! 추한 것도 어여삐 보라 하는데, 말 안 듣는 녀석들 어여삐 보지 못하랴.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이 말 앞에서 교사로서 만큼은 당당하고 싶다.

다시 교무실이다. 잠시 고개 들어보니, 올해 부임한 스물 몇 살의 김 선생이 군기 바짝 든 표정으로 교감 선생님 앞에 서 있다. 모습이 귀엽다. 저 친구, 내가 처음 그랬듯, 훌륭한 교사의 길을 걷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할 게다. 아름다운 초심(初心)이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을 게다. 그 빛 오래도록 꺼지지 않기를, 빌어본다.

언제 기회가 되면 말해주고 싶다. 여보게, 내 가슴 속에도 아직은 초심이 살아있다네. 색 빠진 사진처럼, 낡은 손거울처럼. 교사로서 외로울 때, 힘들 때,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병으로 도질 때, 그럴 때 초심이라는 낡은 손거울을 꺼내 나를 비추어 본다네. 자네만큼은 안 되겠지만, 나도 열심히 선생 살이 해보고 싶네. 많이 도와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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