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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쁜 기억, "지울 수 있다."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과거의 나쁜 기억, "지울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부 2009. 9. 16. 09:48

영화 이터널 선샤인(2004)은 특정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재미있는 설정을 했다.


인간의 사고능력은 기억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과거에 겪었던 두려움이나 공포와 같은 나쁜 기억은 계속 뇌리에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머리 속에 저장된 과거의 악몽을 지우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 가능하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의 특정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억제하면 나쁜 기억이 오랜 기억으로 뇌에 저장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다.



“흥분전달물질 도파민을 억제하면 가능” 

미국의 온라인 의학뉴스 전문지 헬스데이(Health Day)는 최근 “Dopamine Lets Bad Experiences Linger”라는 기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핵심은 뇌 속의 도파민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 신경전달물질로 뇌신경 세포의 흥분전달 역할을 하는 도파민을 억제하면 과거의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약물을 통해 도파민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서 뇌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 역할을 한다. 동식물에 존재하는 아미노산의 하나로, 기분이 좋거나 고통스러운 자극에 반응하는 물질이다. “사랑은 도파민이 한다”라는 말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헬스데이에 따르면, 로마교황청이 설립한 브라질 가톨릭대학(Pontifical Catholic University)의 마르틴 카마로타(Martin Cammarota) 박사는 도파민이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약물로 도파민 활동을 억제하면 아주 나쁜 기억들이 저장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을 밝혀냈다.

카마로타 박사는 쥐 실험을 통해, 커다란 충격을 주는 외상성 사건이 있은 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다음 도파민수용체 억제제를 투여하면 그 사건에 대한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고착(formation)’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고착화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그의 연구팀은 일단의 쥐를 대상으로 억제성 회피과제(inhibitory avoidance task)를 통해 실험을 실시했다. 억제성 회피과제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면 다음 번에는 동일한 행동을 기피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연구팀은 쥐들의 발에 주기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하면서 이를 기억하는지 여부를 살폈다. 만약 이 기억이 뇌의 하드드라이브에 기록돼 ‘고착’되면 쥐들은 전기가 통하는 표면에 발을 갖다 대기를 주저하게 될 것이다.

전기충격 후 12시간이 지난 다음 쥐들의 시상하부(자율신경과 내분비 기능 담당)에 도파민수용체 억제제를 주입하자, 쥐들은 전기충격을 기억을 잊고 주저 없이 전기판에 발을 갖다 댔다. 그러나 전기충격 직후나 9시간 경과했을 때와 12시간 이후에 주입한 경우는 이러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고통스러운 충격 후 12시간이 경과했을 때 도파민이 대량 분비되면서 충격에 대한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고, 이 시점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으면 충격은 잊혀지게 된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장기기억 형성에 관한 연구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이 실험결과는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만약 이 방법을 사람에게도 쓸 수 있다면 학습 촉진에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 같은 정신질환의 치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뇌수술을 통해 나쁜 기억을 지울 수도 
 

▲ 과거에 겪은 충격적인 기억은 평생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최근 약물과 수술을 통해 나쁜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뇌 수술을 통해 나쁜 기억을 지워 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증명됐다. 나쁜 기억을 갖고 있는 뇌 속 연결 부위를 잘라 버리면 기억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은 “사람에게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위스 바젤의 프리드리히 미셔 연구소(Friedrich Mischer Institute) 소속 시릴 헤리 박사는 쥐에게 특정 소리를 들려주면서 그때마다 충격을 줬다. 그 소리만 들으면 충격을 경험하는 나쁜 기억을 심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연구진은 나쁜 기억이 형성된 쥐의 뇌에서 기억 담당 뉴런을 보호하는 ‘그물’ 부분을 잘라냈다. 

그러자 쥐들은 특정 소리를 들어도 공포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28일 뒤에는 소리와 충격의 관계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뇌의 ‘그물’ 부분은 어린 쥐에는 없으며 성인 쥐에만 있다. 



“병적인 두려움을 없애는 약 개발 가능해”

헤리 박사는 “쥐의 기억이 뇌 속에서 형성되고 머무는 작용을 알고 특정 기억을 없애 버리는 방법을 알게 되면, 사람 뇌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미국 워싱턴대학 마크 맥다니엘(Mark McDaniel) 교수는 “사람과 쥐는 기억 저장 방식이 다를 수 있다”며 “더구나 이번 실험은 특정 자극을 주어 기억시키는 조건반사 기억을 지운 것이라서 다른 기억에서도 이런 삭제 효과가 발생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 사우스플로리다 대학의 폴 샌버그(Paul Sanberg) 교수는 “기억의 분자 메커니즘을 밝혀낸다면 이번 연구 같은 방식으로 병적인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약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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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편집위원 | hgkim5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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