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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과학

기체연구에 혼신을 다한 과학자들

대한민국 교육부 2015. 6. 19. 10:20


기체연구에 혼신을 

다한 과학자들 

 


■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

로버트 보일은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과학자입니다. 보일은 잉글랜드의 이튼 칼리지에서 3년을 보낸 후 2년간 가정교사와 함께 여행을 하며 지냈는데, 1641년 피렌체에서 겨울을 보내면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위대한 천문학자의 패러독스』라는 책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1644년 잉글랜드로 돌아올 때는 과학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 후에 과학적 재능을 보이면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보일은 영국왕립협회의 전신인 ‘보이지 않는 대학교’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보일은 1659년 공기 펌프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공기와 관련된 실험을 진행하였고, 1662년에 보일의 법칙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때, 로버트 훅(Robert Hooke)은 로버트 보일의 제자로 로버트 보일이 보일의 법칙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로버트 훅은 장비를 제작하는 데에 재능을 보였고, 훅과 보일이 함께 만든 공기 펌프로 인해 보일의 법칙이 탄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일은 『의심 많은 화학자(The Sceptical Chymist)』라는 책에서 “아무도 믿지 마라, 나도 믿지 마라, 대가가 해 놓은 것이라고 함부로 믿지 마라, 네가 검증하고 확인한 것만 믿어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로버트 보일(오른쪽)과 훅, 그리고 보일의 법칙을 탄생시킨 공기 펌프(출처: 에듀넷)



■ 에듬 마리오트(Edme Mariotte, 1620~1684)

마리오트는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생 마르탱수본의 부수도원장이었으며, 1666년에 파리에 세워진 과학 아카데미의 창립 회원이기도 한 프랑스의 물리학자입니다. 마리오트는 로버트 보일과는 별개로 기체의 부피가 압력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1676년에 발표한 『공기의 성질에 관한 논고(Discours de la nature de l'air)』라는 책에서 설명하였습니다. 마리오트는 보일의 법칙과 같은 내용을 설명한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온도가 일정할 때만 기체의 부피와 압력 사이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책에서 마리오트는 기압계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마리오트는 식물생리학을 연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식물의 수액의 압력을 관찰하고 이를 동물의 혈압과 비교하기도 하였고, 식물들이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쳐 물질을 합성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식물이 물질을 합성하는 과정에 대한 마리오트의 주장은 그가 죽은 후에 옳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 루이14세와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 중 마리오트의 모습(원 안)과 그의 저서(출처: 에듀넷)



■샤를(Jacques Alexandre Cesar Charles, 1746~1823)과 게이뤼삭(Louis Joseph Gay-Lussac, 1778~1850)

샤를과 게이뤼삭은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로, 샤를은 샤를의 법칙에 대한 이론을 제시하고 게이뤼삭은 그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게이뤼삭은 사실상 샤를의 법칙을 대신 발견해 주고 나서 샤를의 미발표한 논문을 인용하면서 이 법칙을 샤를의 공으로 돌렸습니다. 샤를의 미 발표 논문에서는 기체가 부피가 온도에 비례한다는 것만을 설명하고 있지만, 게이뤼삭의 논문에서는 오늘날 샤를의 법칙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공식까지 제시되어 있습니다. 게이뤼삭이 처음 샤를의 법칙을 발표한 것은 1802년이고 샤를의 미발표 논문은 1787년경에 작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샤를은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입니다. 샤를은 열기구에 대해서도 연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를 만들어 하늘을 날았다는 소식을 들은 샤를은 수소 기체를 이용하여 열기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비단을 이용하여 지름이 4m인 공을 만들고 공을 수소 기체로 가득 채웠습니다. 샤를이 광장에서 기구를 띄우려고 할 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군인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도 하였습니다. 기구를 수소 기체로 가득 채운 후, 기체를 묶은 밧줄을 끊자 기구는 하늘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샤를이 기구를 날리는 날에 비가 오고 있었는데, 기구가 올라가는 모습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비에 젖는 것에 상관없이 기구만을 열심히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기구는 2분 만에 1000m를 올라갔고, 그 후로도 계속 상승했다고 합니다.


샤를은 25일 정도 기구가 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약 40분 만에 파리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시골 마을에 떨어졌습니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기압이 낮기 때문에 열기구의 공이 터져버린 것입니다. 샤를의 기구가 떨어진 마을에서는 괴물이 나타났다며 소동이 일어났는데, 기구 속에 들어 있는 샤를의 메모를 보고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 샤를의 열기구(출처: 에듀넷)


샤를은 프랑스 대혁명 때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하였습니다. 왕의 배려로 왕궁 안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샤를은 대혁명이 일어나 시민들이 왕궁을 습격할 때에도 왕궁에 있었다고 합니다. 왕궁으로 들어온 시민들이 샤를을 죽이려고 할 때 샤를은 자신이 예전에 수소 기구를 띄웠던 사람이며, 자신이 기구를 띄워 올려 파리의 시민들을 기쁘게 했음을 이야기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샤를은 프랑스 대혁명이 끝난 후 30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게이뤼삭은 프랑스의 과학자로 ‘기체 반응의 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체 반응의 법칙’은 기체들이 반응하여 새로운 기체를 만들 때, 기체들 사이에 일정한 부피비가 존재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법칙입니다. 게이뤼삭은 1804년 기구를 타고 7천 미터 이상 올라가 지구 대기 성분을 조사하여 산소와 수소가 1:2의 비율로 화합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것은 기체 반응의 법칙을 알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샤를과 게이퀴삭(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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