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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부터 울릉도 검찰일기까지, 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는? 본문

학습자료/역사

삼국사기부터 울릉도 검찰일기까지, 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는?

대한민국 교육부 2015. 7. 6. 10:39


삼국사기부터 울릉도 

검찰일기까지, 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는?




■ 삼국사기


 

▲삼국사기(1145)(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삼국사기』권4의 지증왕 13년조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 지금의 강릉지역)의 군주인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을 복속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동국문헌비고』에서는 여지지(輿地志)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하여 우산국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한 6세기부터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고려사


 

▲고려사(1451)(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우산국은 고려가 세워진 이후에도 고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우산국은 930년(태조 13) 이래 고려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고, 이에 고려는 이들에게 관직을 주거나, 농기기구와 종자 등을 하사하였습니다. 또한 안무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했습니다.


 시 기

 내 용

 930년(태조 13)

 우산국에서 고려에 토산물을 바치고, 고려는 이들에게 관직을 주었다.

 1018년(현종 9)

 우산국이 여진족의 침입을 받아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자 농기구와 종자 등을 우산국에 하사하였다,

 1032년(덕종 1)

 우릉도(울릉도) 성주가 고려에 아들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1157년(의종 11)

 강릉 지역의 관리 김유립을 파견하여 울릉도에 사람이 살 수 있는지를 살피게 하였다.

 1246년(고종 33)

 왜인들의 침입이 그치지 않자 울릉도에 안무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하게 하였다.



■ 세종실록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1454)(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세종의 명으로 맹사성, 권진, 윤회 등이 완성한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를 수정, 보완하여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을 편찬할 때 부록으로 편입한 것이 바로 이 세종실록 지리지 입니다. 모두 8책으로 전국 328개의 군현(郡縣)에 관한 인문지리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세종실록』 권153의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독도)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산도(독도)와 무릉도(울릉도)가 별개의 섬이고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으면 보이는 유일한 섬이 독도라는 것을 감안할 때 우산도가 곧 독도이며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조선의 영토임을 증명하게 됩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1531)(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1531년(중종 26)에 이행, 윤은보, 신공제(申公濟, 1469~1536년) 등이 왕명을 받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을 증보하여 편찬한 관찬지리지 입니다. 이 책의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독도)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의 내용을 계승하여 우산도(독도)와 울릉도가 동해에 위치하고 있음을 밝히고 독도가 울진현에 속한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팔도총도」에도 우산도와 울릉도를 두 개의 섬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 만기요람


 

▲만기요람(1808)(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만기요람』은 서영보, 심상규 등이 왕명을 받들어 국왕이 정사에 참고할 수 있도록 재정과 군정에 관한 내용을 모아 1808년(순조 8)에 편찬한 것입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에 이르는 조선왕조의 재정과 군정에 관한 내용이 ‘재용편(財用篇)」 6권과 「군정편(軍政篇)」 5권에 실려 있습니다. 이 책에는 우산국에 울릉도와 우산도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우산도가 당시 일본인들이 말하는 송도(松島), 즉 독도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 울릉도 검찰일기


▲울릉도 검찰일기(1882)(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1881년 울릉도를 조사하러 갔던 울릉도 수토관이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불법으로 입도하여 나무를 베고 배를 만든다고 보고했습니다. 1882년 4월 고종은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하고 울릉도 사정을 파악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규원 검찰사는 100명이 넘는 대규모 울릉도 조사단을 이끌고 울릉도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어딘지, 일본인들의 불법 입도가 어떠한 상황인지를 조사하기 시작하였고 이규원은 그 검찰 과정을 『울릉도 검찰일기』 에 남겼습니다. 검찰사 이규원의 보고는 울릉도를 다시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규원의 보고를 받은 고종은 울릉도 개척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1883년부터는 주민들이 정식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료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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