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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예보의 역사
과거에는 동물들의 움직임 또는 피부로 느끼는 기온의 변화로 인한 행동들로부터 내일의 일기를 예측했습니다. 그럼 어떠한 예가 또 있는지 알아봅시다.
‘개미가 개미 집을 막으면 비가 올 징조 ’ 개미는 날씨 변화에 대단히 민감한 곤충으로 특히 습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미가 구멍을 막는다는 것은 곧 비가 올 징조가 있다는 것이랍니다.
‘제비가 지면 가까이 날면 비가 온다’ 모기나 잠자리 등 곤충들은 습기가 많아지면 날개가 무거워져서 낮게 날게 됩니다. 이러한 곤충들을 잡아 먹는 제비들도 낮게 날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평소보다 새들이 낮게 난다 싶으면 비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제비집이 떨어지면 화재가 나기 쉽다’는 속담도 제비의 날씨 예지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비는 새끼를 치기 위하여 진흙과 검불로 집을 짓는데, 때로는 건들지도 않았는데 이 제비집이 떨어질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습기가 적고 날씨가 건조하기 때문인데 날씨가 건조하면 불이 나기 쉬우므로 주의하라는 속담입니다.
개구리도 비를 예보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구리가 크게 울면 비가 온다는 것인데, 비가 오기 전에는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일기 상태는 개구리가 호흡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개구리는 비가 오기 전에는 평소보다 더 크게 울어 호흡량을 늘린다고 하네요.
꿀벌도 일기의 변화에 민감한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가을철에 꿀벌이 집의 출입구를 조그만 구멍만 남기고 막아 버리면 그 해 겨울은 추위가 극심할 것으로, 출입구를 그대로 두면 추위가 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옛날 사람들은 구름이나 동물들의 움직임 또는 피부로 느끼는 기온의 변화 등으로 내일의 일기를 점쳤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온도계와 습도계 등을 사용하여 일기의 변화를 예측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넓은 지역의 기상 관측 결과를 모으지는 못했습니다.
▲동물들의 날씨 예지력(개미가 개미 집을 막으면 비가 올 징조)(출처: 에듀넷)
그럼,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여 주는 일기도는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요? 매일매일의 일기도를 만드는 작업은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최초의 일기도는 19세기 초, 독일의 물리학자 브란데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당시에는 전신(電信)이 발달되지 않아 만들어진 일기도는 25년 이상 지난 1783년 3월 6일의 것이었습니다. 1840년대에 접어들자 전신의 도움으로 매일의 일기도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신에 의해서 처음으로 각 지방의 일기 실황이 수집되어 이것이 신문에 실리게 된 것은 1848년의 일이었습니다. 이것을 시도한 것은 영국의 데일리 뉴스지였으나 관측 결과를 일람표로 만들어 게재했을 뿐, 일기도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해에 이르러 미국의 물리학자 헨리가 각 전신국의 협력을 얻어 기상 자료를 수집하였고, 1858년 세계 최초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만든 일기도에 의한 일기 예보를 발표하였습니다.
일기 예보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최초의 기상국을 만든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프랑스입니다. 이런 계기가 된 것은 1854년 11월 14일 크림반도를 휩쓴 큰 폭풍이었습니다. 이 폭풍에 의해서 크림 전쟁에 참가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연합이 크림 반도에서 큰 피해를 입고 프랑스 군함 앙리호는 침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결과,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피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의뢰를 받아 이 일에 착수한 것은 파리 천문 대장인 르베리에였는데, 르베리에는 조수 리아스와 함께 유럽의 각 관측소로부터 약 250통의 기상 기록을 모아 조사해 본 결과 그 폭풍이 에스파냐 부근으로부터 지중해를 거쳐 흑해로 진행해 온 것임을 알아 낼 수 있었습니다.
르베리에의 분석 결과는 1855년 1월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표되었으며, 루이 나폴레옹의 인정을 받아 폭풍 경보를 내기 위한 광대한 기상 관측망을 만드는 계획이 급속히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1858년에는 프랑스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부터도 기상 전보를 입수할 수 있게 되었고, 이 자료에 의해서 1863년 세계 최초의 일일 일기도가 실린 신문이 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차례로 일기도가 간행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일기도는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현재까지 발견된 일기도 중 가장 오래된 일기도는 1905년 11월 1일자로 만들어진 일기도입니다. 1905년 11월1일 부산의 오전 6시 현재 기온은 11.2도, 최저 기온은 9.6도이고 구름이 전혀 없는 맑은 날씨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기도는 러ㆍ일 전쟁 때 폭풍 경보 등 일기 상황을 일본군에 알리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등압선과 등고선을 분석한 '천기도', 기온 및 기압의 8시간 및 24시간 변화량을 분석한 '변화도'(사진), 관측치를 적은 '기상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기도(출처: 국가기록원)
우리나라 기상 관측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미 기원 전 53년 신라에서는 회오리 바람의 일종인 '용오름' 현상을 관측한 기록이 있으며 고구려의 경우도 5세기 초엽인 414년 눈이 쌓인 양을 측정한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이와 같은 기상 기록 424건, 천문 기록 218건, 지진 기록 88건이, <삼국유사>에는 기상·천문·지진 기록이 각각 8건, 5건, 2건 수록되어 있습니다. 신라 선덕여왕은 천문기상 관측소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첨성대를 세웠고 세종대왕 시대에 이미 세계 최초의 측우기가 서양보다 200여 년 앞서 발명되었지요.
▲첨성대(출처: 에듀넷)
우리나라 기상 관측의 역사는 이처럼 유구하지만 기상청은 우리나라에서 과학적 방식의 근대 기상 관측이 시작된 때를 대한제국 시절인 1904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1904년 3월 25일 전남 목포에 처음으로 측후소가 설치돼 기온·강수량·날씨 등을 정기적으로 관측한 데 이어, 부산·인천·원산 등지에도 잇따라 측후소가 세워져 전국적인 관측망이 갖춰지면서 근대적인 기상 관측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지요. 이들 측후소에서는 국제적 규범에 따라 기압·기온 같은 각 기상 요소에 대한 관측·예보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손으로 그린 초보 수준의 일기도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기상청의 전신(前身)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미 군정청 문교부 산하에 설치된 관상국입니다. 현재 기상청은 서울 본청 외에 대전·광주·부산 등 5개 지방 기상청과 기상대·관측소 등을 둔 큰 기구로 성장했습니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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