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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를 만나다.

대한민국 교육부 2016. 5. 12. 09:35

대한민국 역사를 만나다.





​지난 2월 9일 ‘대한민국의 탄생’ 이라는 특별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고, 수요일 및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였습니다. 전시 구성은 1부 ‘한국의 해방’와 2부 ‘대한민국의 수립’에 대한 내용으로 해방의 기쁨으로부터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까지 벌어진 역사의 사실을 사진을 통해 되새기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전시의 구성은 크게 2부로 전시했는데, 1부는 한국의 해방을 주제로 식민지였던 조선독립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역사의 내용은 일본 통치자들로부터 해방의 기쁨을 느끼고, 해외에 거주했었던 정치 지도자들이  고국으로 귀국한기쁨도 잠시, 38선이라는 경계가 생기면서 한반도에 분열과 갈등은 시작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2부에서는 이후 북한과 남한의 갈등이 시작되면서 북한에서는 단독정권 수립과 남한에서는 우파, 좌파, 중도파 등 정치적 세력간의 투쟁으로 점점 벌어져 갔습니다. 

결국 유엔은 남함만의 총선거를 결정하여 제헌국회가 만들어지고, 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사유재산권을 보호함을 명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습니다. 이 때는 대한민국의 기초가 확립되는 시기로 근대 국가 토대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보여집니다.  이때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로서  힘들었지만 소박한 추억이 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그때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후 1960년대부터 80년대로 접어 들면서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헌신과 열정을 담고 있습니다. 인상 깊었던 자동차는 ‘포니’라는 현대에서 나온 대한민국 1호였습니다. 지금 현대에서 보는 디자인 시각에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디자인과 색상을 보면서 놀라웠습니다. 

80년대 이후로는 대한민국이 선진화되면서 세계로의 도약에 발돋음 하는 시기였습니다. 국내 최초 개발 휴대전화, 서울 88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호돌이, 세계최초 개발 반도체 등 최근 드라마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이야기와 소품들을 보면서 반갑기도 했고,  그 시대에 살지는 않았지만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포스터, 레코드판, 사진들, 훈장, 편지, 졸업증서와 성적표, 만화 책방 등의 사실 그대로 연출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그 시대에 살았던 새대가   아님에도 그 시대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새마을 운동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경제 성장은 함께 하면 된다는 가능성을 증명해 준 결과였습니다. 그 계획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


모든 사회의 경제적인 악순환을 과감히 시정하고 자주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기반을 추구했으며 구체적으로는 「전력.석탄.정유 등 에너지 산업의 개발」,「농업생산의 증대」,「에너지 산업 등 기간산업의 확충과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강화」,「유휴자본의 활용」,「수출 증대를 도모하는 국제수지의 개선, 기술의 진흥」을 계획하였다. 이 계획 실시 5년동안 GNP의 연평균 성장률은 8.3%. 계획 착수 연도인 1962년의 3.1%에 비교하면 실로 놀라운 고도성장이었다. 국민 1인당 GNP는 계획 실시 한 해 전인 1961년 고작 4천만 달러였으나 여섯 배의 경이적 신장을 기록했다. 이 무렵의 구호가 「증산.수출.건설」이었다


제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1967~1971)


공업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농업의 근대화에 주안점을 둔 기간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식량의 자급자족」,「철강.기계.화학공업에 중점을 둔 공업화」,「수출증진과 수입대체에 의한 국제수지 개선」,「고용증대와 인구증가의 억제 」,「국민소득의 향상」,「기술수준과 생산의 향상」이 목표였다. 이 기간에는 연 평균 19.5%의 성장을 기록하여 국민 1인당 GNP는 1971년 2백66달러에 달하여 1966년 GNP의 두 배를 넘었다. 그리고 수출은 1971년에 11억3천만 달러가 되어 당초 계획의 두 배를 넘겼으며 현대.선경.삼성 등의 재벌 대기업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의 구호 역시 「근검.절약.저축」이었다.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


중화학공업의 건설」,「농어촌의 근대화」, 「수출증대에 의한 국제수지의 개선」을 목표로 삼았다. 이 기간중에는 1973년 석유 파동으로 세계적 불황이 불어닥쳤다. 모든 선진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나 한국은 1974년에 8.7%,1975년에 8.3%,1976년 에 15.2%의 성장을 기록하여 국민 1인당 GNP는 1976년에 6백98달러로 1971년의 2.6배가 되 었다. 수출은 1976년에 78억 달러로 계획 당시의 2.2배가 되었다. 이때부터 밖으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려지게 되었고 안으로는 「하면 된다」는 일종의 민족신앙이 자리잡게 되었다.


제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


경제의 자립화와 산업 구조의 중화학 공업화가 주안점이었다. 그런데 계획의 중반에 박정희 대통령이 쓰러지고 제2차 석유파동(1980~1981년)과 정치혼란 등으로 80년에는 6.2%란 사상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4차 경제개발기간 통산의 성장률은 7%를 기록하여 일본의 4.7% 성장을 능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였다


제 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7~1991)


국제 수지가 흑자로 전환되었다. 안정·· 능률·· 균형을 이념으로 삼아 비교우위 산업을 육성하여 물가를 10% 이내로 안정시키는 한편, 민간창의(民間創意) 노력을 적극 유도하여 국민의 기본수요에 대해서는 공공의 적극 개입을 꾀하였다


제 6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92~1997)


제 24회 서울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고, 서울 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하였다.경제사회의 제도발전, 산업구조 개선과 기술입국의 실현, 형평제고와 사회안정기반의 구축, 지역사회의 균형발전 등에 기본목표를 두었다.


제 7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97-2002)


지금은 제7차 5개년계획이 시작되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의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사건이다. 1970년 4월 22일한해대책을 숙의하기 위하여 소집된 지방장관회의에서 대통령 박정희는 수재민 복구대책과 아울러 넓은 의미의 농촌재건운동에 착수하기 위하여 근면··자조··자립정신을 바탕으로 한 마을가꾸기 사업을 제창하고 이것을 새마을가꾸기운동이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시작되었다.

1971년 전국 3만 3,267개 행정리동(行政里洞)에 시멘트 335포대씩 균일적으로 무상지원하여 각 마을마다 하고 싶은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결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는데, 첫째는 정부가 무상공급한 시멘트로 부락민들이 자체 노력과 자체 자금을 투입하여 마을이 필요로 하는 숙원사업을 해낸 경우이고, 둘째는 시멘트의 무상공급을 받았지만 뚜렷한 사업을 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정부는 반응이 있는 1만 6600개 부락에 대하여 또다시 시멘트 500포대와 철근 1t씩을 무상공급하면서 자발적인 협동노력을 장려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경쟁적··선별적 방식으로 점화된 새마을사업은 정부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이것이 단순한 농촌개발사업이 아니라 공장··도시··직장 등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화운동으로 확대··발전하였습니다.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새마을운동(두산백과)]

바쁘게 살아 가는 피곤하고 지쳐가는 삶속에서 근면·자조·자립정신은 본받고 장려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은 한국 근, 현대사를 쉽게 이해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어린이 프로그램부터시작하여 다양한 체험 공간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기증에도 참여 할 수 있어 국민의 참여도 독려합니다.  개항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자랑스런 조상들의 노력과 결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최초의 태극기를 보면서 우리 역사의 자취와 애국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공간을 지속적으로 보전하고 관리하여 후세에 전승하는 것이 우리 새내기 세대의  미래의 역할이라고 생각 되는 의미 있는 관람이었습니다.



▲대한민국탄생전시관입구, 사진촬영 김다빈


 

▲대한민국탄생전시관내부, 사진촬영 김다빈




▲1876~1945 태극기, 사진촬영 김다빈



 

 ▲대한민국성장을 가져온새마을 운동 사진촬영 김다빈



 

▲1950흥남전시 사진촬영 김다빈



 글, 사진= 교육부 블로그 김다빈기자 deanna12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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