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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공식 블로그
23명의 조카를 돌본 시고모님의 자식농사 성공기 본문
서울에 살고 계셔서 그분을 우리는 서울고모님(86세)라고 부른다. 이 분의 삶을 보며 나는 선한 끝은 있다 는 말과 착하게 산 사람은 자식들이 잘 된다는 것을 보고 살았다.
서울고모님은 친정, 시집 조카들이 서울에 오면 모두 데리고 있었다. 6개월 이상 데리고 산 사람들이 23명이나 된다. 남편도 그중에 한 명이다. 큰 시누이 형님과 둘째 아주버님도 모두 일 년 이상 서울 고모님 집에서 살았다. 하숙비는 시할아버지가 보내 준 쌀 한 두 가마가 전부였다.
* 아버님 미수연에 참석한 시고모님들 오른 쪽에서 두번째가 서울고모님(86세)이시다.
예전엔 교사의 봉급이 아주 박했다. 내가 근무하던 1970년대 말에야 보너스도 본봉의 400%가 됐었다. 남편의 형제는 5남2녀이다. 남편만 서울로 대학에 진학을 했다.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대전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남편과 중매로 만나서 결혼을 하고 제일 먼저 찾아 뵌 곳은 서울고모님 댁이었다. 남편이 그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모님은 화장품 외판원을 하셨고 고모부는 육체 노동을 하셨다.
70년대 말에는 판자 동네에 살고 계셨다. 당신의 자녀가 3남1녀이고 방은 세 개 뿐이었다. 그런 집에 남편이 대학원을 다니며 얹혀 살고 있었다.
고모님 자제분은 3남1녀인데 당시에는 모두 고졸이었다.
충청도 시골집을 떠나서 취직을 하겠다고 서울에 온 조카들이 찾아 가는 곳은 서울 고모님댁이었다. 데리고 있지 않으면 나쁜길로 빠질까 봐 취직도 시켜주고 데리고 있게 됐다고 하셨다.
말이 쉽지 6개월이상 살다 간 조카들이 23명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보통일이 아니다. 하루 이틀 자고 간 사람들은 세지도 않았다고 하셨다. 살림도 넉넉하지 않으니 소박한 반찬 그대로 함께 먹으며 데리고 살았다.
그 조카들이 모두 잘 돼서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라서 그냥 반찬 한두 가지로 밥을 먹거나 수제비나 칼국수를 해먹으며 함께 살았다고 한다. 산동네 초라한 집에 살면서 그렇게 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첩첩산중에 있는 덕산 시골 본가 의 모습
남편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고모님댁에서 1년을 살았다. 나와 결혼을 하고 서울고모님집에서 나왔다.
시어머니도 퇴행성 관절염으로 평생 편찮으시고 친정어머니는 결혼 전에 돌아 가셔서 우리 부부는 참 쓸쓸한 때가 많았다.
큰 아들을 낳을 때도 서울고모님과 큰 시누이 형님이 양 쪽에서 나를 잡고 계셨다. 3일간 진통을 하고 출산을 한 지독한 난산이었다. 남편은 병원 복도에서 울고 있고 서울 고모님도 시누이 형님도 우셨다고 한다.
남편은 8살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외롭게 지냈는데 장모도 없는 집에 장가를 와서 사위 대접도 한번도 못받았다.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시고모님들이 끝없는 사랑으로 돌봐주신다. 60세인 나에게 지금까지 홍성고모님(75세)과 막내 고모님(70세)은 김장과 김치를 담아 주시고 있다. 서울고모님 뿐만 아이고 모든 시고모님이 다 그렇게 남을 배려하고 마음이 따뜻하시다.
1) 서울고모님의 장남 (62세,장석웅)
큰 아주버님은 남편보다 한 살 위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OOOO 공사에 취업을 했다.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도 나왔다. 그사이에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했다.
몇년 전에 퇴직후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 서울 고모님의 장남인 큰아주버님 가족들,동서형님은 나보다 한 살 아래인데 결혼 후 죽 공부해서 대학원까지 졸업했다.대기업에 다니는 손자와 공무원인 손주 며느리.
2) 차남 (60세,장석종)
서울고모님의 차남인 서방님은 사교육 학원을 운영하다 학생들의 눈이 너무 나쁜 것을 발견하고 "시력회복기"연구에 들어갔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시력회복기를 발명해서 sbs생방송 창업 아이템 프로"아이디어 하우머치"에 출품해서 4,200만원에 낙찰 됐다.
그후 대한민국 발명대전 동상(2009년 10월5일)
대만 국제발명대전 시력회복운동기 발명 금상수상(2010년 10월2일)
홍콩과 광저우 전저전시회에 출품했다. 지금은 시력회복기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 서울고모님과 차남인 시동생
* 대만 국제 발명대제전에 참가한 모습
*금상 수상과 발명한 시력회복기
3) 3남 (56세, 장 원)
세째 서방님은 그냥 평범한 사업가이다. 자기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 가는 평범한 서울시민이다. 서울 고모님 손녀딸 결혼식에서 만났는데 사람들이 많아서 그만 사진을 못찍었다.
4) 막내딸(53세,장정희)
서울고모님의 막내딸인 정희 아가씨는 고모님의 심성을 그대로 닮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개인 회계사무실에 취업을 했다. 너무 성실하고 착한 인성을 보고 사장님 부인이 자기 동생을 소개시켜 주었다.
* 왼쪽부터 정희아가씨, 시아버님, 서울고모님, 큰서방님
정희 아가씨의 남편은 결혼 초에는 고등학교 체육교사였다. 결혼 후 석사, 박사를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받고 지방 국립 대학교 교수가 됐다. 지금은 체육대학장이다. 아가씨는 남편이 근무하는 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한 만학도였고 졸업도 했다.
서울에 사시는 시고모님은 살던 집을 팔고 강동구에 땅을 사서 빌라를 지어서 큰아들과 살고 있다. 다른 층은 월세를 주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다.
평생을 자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시며 살고 있는 서울고모님은 86세 인데도 노인회관에 다니신다. 배드민턴과 에어로빅 선수로 나가셔서 상도 많이 받으셨다.
손뜨게를 배우셔서 자손들의 옷도 짜주신다. 지난 번 아버님 미수연에는 소품을 뜨셔서 한 보따리 가지고 시골집에 오셨다. 덧버선과 목도리, 설거지용 수세미를 조카 며느리들에게 다 나누어 주셨다.
* 서울고모님이 내게 떠주신 덧버선과 수세미,목도리는 미국에서 온 동서에게 주었다.
* 인생의 인과응보의 법칙은 정확하게 돌아 가고 있다.
나는 결혼한지 34년이 됐다. 시집에는 시고모님이 5분이다. 한 분은 갑상선암으로 돌아 가셨다. 시고모님들 모두가 다 베풀고 사시는 분들이다. 시골집의 터가 명당이라고 풍수지리를 잘 알고 있는 아버님의 친구가 말했다고 한다. 그넉넉하고 편안한 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내셔서 그런지 시집식구들의 인성은 자주 감탄을 할 정도이다.
내가 34년간 지켜본 시고모님들의 생활과 따뜻한 인성은 모두 자녀들에게 돌아 간 것 같다. 모두 자식들이 잘 됐다.
시집이 대가족이라서 여러 가족들의 생활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 간혹 자기 핵가족만을 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식들이 잘 풀리지가 않았다. 너무 돈과 명예만 믿고 없는 사람을 엎수이 여기고 교제가 없으면 자식들에게도 인척들과의 관계를 끓어 놓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리 똑똑해도 혼자 살 수 없고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될 수도 있다는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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