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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서민문화 ■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조선 사회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신분제가 흔들리고, 서민들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양반들의 것으로만 생각되던 문화를 서민들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조선 후기 서민문화가 발달하게 된 이유와 서민이 사랑했던 즐길 거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까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부 세력의 침입을 겪으며 조선 조정의 살림은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땅은 황폐해지고, 세금이 잘 걷히지 않으면서 나라를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정은 나라의 재정을 든든히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돈을 받고 관리직을 팔거나, 천민이 양민이 될 수 있는 면천첩을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분제도를 통해 양반 중심 사회를 굳건히 했던 조선의 조정은 스스..
임진왜란과 조선통신사 ■ 7년간의 전쟁 - 임진왜란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일본은 우리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1592년에 시작되어 7년 간 계속된 전쟁이었던 임진왜란에서도 일본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1592년(임진년) 일본은 거대한 군을 이끌고 부산을 침략하였습니다. 20여 일 남짓한 시간에 거칠 것 없는 모습으로 조선을 공격하여 한양 도성까지 쳐들어왔고,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는 궁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20여 일만에 조선의 도읍이었던 한양까지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임진왜란 당시 시대적 상황(출처: 에듀넷) 당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지러웠던 일본을 통일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던 때였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했던..
6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매년 6월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나라 사랑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런 기회에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을 직접 찾아보는 것이 진정한 나라 사랑의 길인 것 같아 길을 떠나 보았습니다. 오늘은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에 있는 이순신 영상관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1592년 임진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되어 7년에 걸친 전쟁은 16세기 동북아시아 최대의 국제전쟁으로 결국은 조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는 조선 조정과 관군의 줄기찬 전쟁수행,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의병의 조직적인 활동이 이끌어낸 값진 승리라 할 수 있는데요, 특히 이순신 장군은 병력과 무기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임진년 5월을 시작으로 총 23회에 걸쳐 출격하여 단 한 번도 패하지 ..
광복 65주년, 광화문이 새로 열리는 광복절. 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카메라를 들고 광화문으로 나갔다. 아니 광화문이 나를 부르는 거 같았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에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고 집에 있고 싶었다. 움직이기만 해도 땀이 쏟아나는 정말 무더운 날씨, 그럼에도 나를 부르는 광화문의 외침.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화문의 부름에 이끌려 나간 것은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길을 오며 가며 멀리서 바라다봤던 광화문이지만 그날의 광화문은 특별한 문이었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닌 국운 상승의 기운이 한반도를 휘감게 하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원래의 모습이 아닌 비뚤어진 자세로 다른 곳을 응시했던 광화문이 다시 제 자리를 잡으면서 바쁜 일상을 사는 우리들의 비뚤어진 마음도 원래의 자..
2009/12/10 - 거북선의 잔해를 발견할 수 없는 까닭(1) 에서 계속되는 글입니다. 세 번째는 거북선이 과연 세계 최초의 철갑선일까 하는 문제이다. 일전에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TV 광고가 화제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지난 1986년 정주영 회장이 중앙대학교에서 행한 특강 장면을 편집한 이 광고는 현대 조선소 건립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과 5만분의 1짜리 지도를 보여주고는, ‘내가 여기에 조선소를 지을 테니 일단 선박 주문부터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말은 정주영 회장이 그리스 선박왕인 리바노스 회장을 만나 조선소를 건립하기도 전에 유조선을 수주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리바노스를 정 회장에게 소개시켜 준 사람은 ‘A&P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