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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조선 최고의 국립교육기관, 성균관!

대한민국 교육부 2020. 8. 10. 18:00

"조선시대에도 대학이 있었다?

과거, 조선시대 인재들이 배우고 성장했던 공간

국립교육기관 성균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총4가지의 교육기관을 거치게 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국민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교육을, ·고등학교는 초등 교육을 이수한 사람이 배우는 기초 위에,중견 국민으로서의 품성과 자질, 이해 등을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대학교에서는 자신의 전공에 맞는 여러 학문분야를 공부하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교육체제 및 시설은 현대사회뿐만 아니라 과거, 조선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신분과 직업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들이 교육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사설 초등교육기관인 서당과 국립고등교육기관인 사학(서울), 관립고등교육기관인 향교(지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대학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이 존재했는데요. 바로 성균관입니다.

성균관은 실제로 갑오개혁 전까지 조선 내 최고의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의 대학, 성균관은 어떤 내용을 공부하고, 그곳을 다니는 유생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요? 지금의 대학생들과 많이 달랐을까요? 지금부터 조선의 공식적인 교육기관, 성균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균관이란?

성균관은 지금의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합친 조선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이자 최고학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균관이라는 단어에는'인재로서 아직 성취하지 못한 것을 이루고, 풍속으로서 가지런하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균관 유생은 개국 초에는150명이었으나 세종 때200명으로 증원되었습니다. 지금의 대학과는 다르게 소수정예로 운영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성균관의 역사

흔히 성균관이라고 하면 조선시대에만 존재하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입니다성균관은 고려 충선왕 시절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국학을 성균관으로 개칭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공민왕 때 잠시 국자감으로 불리다, 다시 성균관이라는 명칭으로 공식적으로 개칭하고 이는 조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조선의 태조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뒤, 13987월 지금의 명륜동에 위치한 성균관이 준공하게 됩니다.

 

왜 성균관을 만들었을까?

이와 같은 교육기관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국가에서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성균관 유생들에게는 국비를 들여 음식과 학용품,기숙사비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지원하였습니다.

 

또한,성균관은 단순한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선현에 대한 제사를 위한 공간적 기능의 역할도 수행하였기 때문에 주로 양반의 자제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양반사대부 집안이라 하더라도 모두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꽤나 까다로운 조건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  ( 출처 :  한국관광공사 )

 

 

공자와 선현에 대한 위패가 있고 ,  제사를 올리던 대성전  ( 출처 :  성균관 유교문화 활성화 사업단 )

 

성균관 유생의 생활

흔히 대학생활이라고 하면 캠퍼스의 낭만과 연애 등을 상상하곤 합니다.하지만 성균관의 경우에는 상당히 빡센 생활을 하여야만 했습니다.날이 밝기도 전에 북이 한번 울리면 기상,날이 밝아 북을 두 번 울리면 의관을 갖추고 독서를 해야 했습니다.북이 세 번 올리면 식당에서 나란히 정렬해 마주 보고 읍을 한 뒤 식사를 했습니다.

 

밥 먹기 싫어도 무조건 먹었어야 했는데요.식당에 배치된 출석부에 아침과 저녁 두 번 서명하면1점을 얻게 되고, 300점을 얻어야지만 관시에 응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명륜당에 나와 앉아 사서오경,근사록,성리대전,통감,좌전,경국대전,동국정운 등의 공부를 하게 됩니다.시험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매달 초··말에 시험이 있고,예조의 당상관이 한 달에 한 번 사서삼경을 돌아가며 외우도록 하였습니다.이러한 시험결과는 기록되어 연말에 우수자에게 상을 주거나 문과 초시에 가산점을 주었습니다.공부가 끝나면 성균관 유생들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로 돌아가게 됩니다.

 

성균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 출처 :  성균관 유교문화 활성화 사업단 )

성균관 기숙사는 유생들의 자치회인 재회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지금으로 따지면 학생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재회에서는 기숙사의 관리뿐만 아니라 나라의 중대사에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하였으며,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단시위나 수업거부 등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나긴 역사를 가진 성균관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비록 해당 시대에는 지금처럼 모든 국민들에게 공평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지는 않았지만,옛 선현들도'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교육기관을 통해 인재를 길러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4차산업혁명 등 다변화되는 미래가 도래하고 있는 만큼,

교육기관과 교육시스템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양질의 교육 및 교육정책을 통해

미래사회를 이끌어가고 선도할 수 있는 인재가 많이 탄생하기를 기대합니다."

 

※위 기사는 2020 교육부 국민서포터즈의 의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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