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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멧돼지와 인간의 생존을 건 영역다툼

대한민국 교육부 2009. 10. 24. 07:30
지난 19일 밤 11시 30분경 경북 구미시 옥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대피하는 난데없는 소동이 벌어졌다. 한밤중의 소동을 일으킨 범인은 바로 멧돼지였다. 가끔 멧돼지가 인가로 내려와 소동을 일으키는 일이 있지만, 그날 아파트 단지에 출몰한 멧돼지는 무려 9마리여서 화제가 되었다. 그 중 8마리는 30여 분 만에 산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1마리는 119구조대에 포획됨으로써 그날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10월 15일 울산고속도로에서는 갑자기 고속도로로 뛰어든 멧돼지를 승합차가 들이받은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합차는 크게 부서졌고 멧돼지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만했기에 망정이지 차들이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고속도로에서 멧돼지 같은 대형동물이 갑자기 뛰어들 경우 자칫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10월 10일에는 경북 상주의 야외수영장에 수컷 멧돼지 2마리가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결국 총으로 사살됐다. 이런 멧돼지의 습격으로 인한 공포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올 여름 극장가에서는 식인 멧돼지가 나오는 스릴러물이 개봉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는 돌연변이로 몸집이 1.5톤이나 되는 거대한 식인 멧돼지가 출현해 사람들을 연이어 살해하고 마을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지난 9월 19일 종로구 구기동 주택가에 나타난 몸무게 200㎏ 가량의 진회색 멧돼지. ⓒ연합뉴스


물론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큰 돌연변이 멧돼지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 또한 멧돼지란 동물은 그처럼 사나운 맹수가 아니라 천성이 온순하다. 몹시 예민하고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아 사람이 접근하기도 전에 먼저 등을 돌려 달아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화가 났거나 흥분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차가 요란스레 달리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 출현한 멧돼지는 그만큼 흥분해 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멧돼지를 만나면 놀라서 비명을 지르거나 등을 보이고 뛰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대신 멧돼지의 시선을 피해 천천히 안전한 장소로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깊은 산속의 활엽수가 우거진 곳에서 사는 멧돼지는 본래 초식성 동물이었지만, 곤충이나 어류 또는 토끼나 들쥐 등의 작은 짐승까지 먹어치우는 잡식성 동물이 되었다. 몇 년 전 경남 거제와 전남 완도에서는 염소를 죽여서 먹어치운 멧돼지가 각각 사살되기도 했다.

돼지를 일컫는 한자 중에서 ‘돈(豚)’은 집돼지를 가리키는 것이고, ‘저(猪)’는 멧돼지를 뜻한다. ‘저돌적(猪突的)’이라는 표현은 무조건 앞으로 돌진하기 좋아하는 멧돼지의 습성에서 나온 말이다. 


   단검처럼 날카로운 송곳니
 

이처럼 멧돼지는 일단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특히 부상을 입으면 숨을 거둘 때까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때문에 노련한 사냥꾼들은 멧돼지가 총을 맞고 쓰러져도 숨을 거둔 것이 확인될 때까지는 절대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다. 

게다가 멧돼지는 단검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이 송곳니는 질긴 나무뿌리를 자를 정도로 위협적인데, 싸울 때는 이것을 무기로 활용한다. 

또한 멧돼지는 사방 500m 이내에서 나는 냄새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만큼 후각이 매우 발달해 있다. 흔히 성묘 시즌 때 멧돼지에 의해 봉분이 파헤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묘지 주위에 뿌린 술 냄새를 맡고 멧돼지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멧돼지의 습격을 다룬 영화 '차우'의 한 장면. ⓒ㈜영화사 수작

갈수록 멧돼지의 도심 출현이 잦아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농작물 피해 예방을 위한 멧돼지의 적정 서식밀도는 ㎢당 1.1마리 정도이다. 그런데 200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멧돼지 서식밀도는 그보다 3배 이상 높은 3.8마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녹화로 주먹이인 도토리가 많아지고 대신 천적인 호랑이나 늑대 등의 맹수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도로 개설과 각종 개발로 인해 생태계를 잇는 길이 끊어지고 있다. 멧돼지들은 번식기인 겨울을 앞두고 수컷들끼리의 짝짓기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러니 영역 다툼에 밀려난 수컷들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헤매다 자연스레 인간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일부 농가에서는 전기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수확기 때는 텐트를 치고 밤을 새운다. 또 호랑이 울음을 녹음해 틀어놓거나 호랑이 똥을 구해다 뿌려놓는 곳도 있다고 한다. 다른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락없이 인간이 멧돼지와 영역 다툼을 하고 있는 꼴일 게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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