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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들의 의식주

대한민국 교육부 2015. 7. 16. 14:08


상민들의 의식주




■ 조선 시대의 평민

조선 시대 상민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계층이었습니다. 신분과 경제적인 제약 때문에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소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럼 조선 시대 상민의 의식주 생활 문화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생활모습을 엿보도록 하지요.


평민이란 왕족이나 귀족의 지배를 받던 일반 계층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배를 받는 계층이지만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경제권 등을 가지고 있어 천민과는 구별됩니다.


▲조선시대 상민의 삶(출처: 에듀넷)


조선시대의 신분은 크게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양인이 양반, 중인, 상민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평민은 양인 중에서 상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평민과 상민이란 말을 구별 없이 쓰기도 하는데 조선 시대의 경우에는 두 말이 서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민은 대부분 농민이었습니다. 상업을 낮게 여기고, 농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에 따라 많은 평민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상민은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양반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 세금을 내고, 전쟁이나 성문의 건설 같은 일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층이었습니다. 상민은 크게는 양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관직에 나갈 수 있었지만 세금 등을 내기 위해 일해야 했기 때문에 글공부를 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상민들은 농사 등을 지으며 자신들만의 소박한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 상민들도 비단옷을 입었나?

우리 민족을 일컬어 흔히 '백의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흰색 옷을 즐겨 입었기 때문인데요. 사실 흰색 옷은 삼베나 무명에 아무런 색을 입히지 않은 상태의 옷인데 고려시대 목화가 보급되면서 목화로 만든 무명옷을 조선 시대 상민들이 많이 입게 된 것입니다.


▲상민의 복장(출처: 에듀넷)


또한 농사를 짓는 등의 일을 했던 상민들은 양반의 옷에 비해 단순했는데, 남자는 저고리에 바지, 여자는 저고리에 치마가 기본적인 옷차림이었습니다. 상민은 목화로 실을 만들어 천을 짜고 스스로 옷을 지어 입었는데, 바느질 솜씨가 좋으면 양반의 주문을 받아 옷을 만들어 주고 돈을 벌기도 하였습니다. 상민이 사용하는 장신구나 신발도 양반의 것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결혼한 여자가 머리를 올려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녀의 경우 양반은 비싼 옥 등으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으나 상민은 놋이나 나무로 만든 비녀를 사용하였습니다. 신발도 양반이 가죽이나 비단으로 장식한 신발을 신었다면 상민은 볏짚을 꼬아 만든 짚신을 주로 신었습니다.



■ 상민의 밥상에는 어떤 음식들이 올라왔을까?

식생활에 있어서도 상민은 양반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상민의 주식은 양반과 마찬가지로 '밥'이었지만 양반이 주로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면 상민은 보리나 다른 잡곡을 섞어 밥을 지었습니다. 보리나 잡곡이 쌀에 비하여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민의 음식은 비싸게 사야하는 재료보다는 자연에서 그대로 얻을 수 있는 채소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겨울을 제외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자연 곳곳에서 자라는 나물을 캐고, 열매를 따서 반찬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자신의 집 안이나 근처에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무 등을 직접 길러 먹기도 하였습니다.


▲상민의 상차림(출처: 에듀넷)


또한 상민의 반찬은 가짓수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된장이나 간장에 국과 김치, 나물 한 종류 등으로 매우 소박하였습니다. 생선의 경우 해안가 지방에서는 음식의 재료로 흔히 쓰였지만 보관법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선을 소금에 절여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하였고 절인 생선을 쪄서 먹었습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역시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던 상민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꿩이나 토끼 등을 잡아먹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상민들은 주로 채식 생활을 했고 그 때문에 건강한 식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상민들은 어떤 집에서 생활 했을까?

상민들은 집을 지을 때에도 주변에서 흔히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였습니다. 각 지방의 자연환경에 따라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 달랐는데, 논농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볏짚을 많이 사용하고, 나무가 많이 있는 곳에서는 나무를, 돌이 많은 곳에서는 돌을 가지고 집을 지었습니다. 논을 잘 볼 수 없는 산간 지역에서는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얹어 굴피집을 만들었고, 바람이 심한 제주도에서는 주변에 많은 돌을 사용하여 담을 쌓고, 지붕 위를 끈으로 엮어 맨 끝에 돌을 묶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집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집의 지붕을 올릴 때에는 볏짚, 밀, 갈대 등이 쓰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것은 볏짚이었습니다. 쌀을 재배하여 쌀알을 털어낸 볏짚은 잘 말리면 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볏짚을 꼬아 바구니나 짚신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기도 하고, 집을 지을 때 서까래 위에 얹어 지붕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볏짚은 가벼울 뿐만 아니라 열을 잘 차단하여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습니다. 하지만 식물이기 때문에 빨리 썩어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 만에 오래된 볏짚 지붕을 새로운 볏짚으로 갈아야했습니다.


▲조선시대 민가(출처: 에듀넷)


소박했던 상민의 집을 초가삼간이라고 하는데 창고나 외양간, 부엌, 방으로 이루어지거나 부엌, 방 또는 부엌, 마루, 방으로 이루어진 작은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민은 이웃과 공동체의 삶을 살기도 하였습니다. 사는 곳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고, 같은 성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사는 경우도 많아 대를 이어 이웃과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동네 모든 집이 하나의 우물을 사용하거나 빨래터를 만들어 같이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공동체를 이루며 살면서 즐거운 일, 슬픈 일을 같이 하였기 때문에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습니다.



[자료출처 :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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