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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을 건설한 정도전
■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
조선을 건국한 사람이 이성계라는 것은 많이 알고들 있습니다. 그럼 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의 건국 및 한양을 설계한 정도전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가요? 이성계, 정도전의 이야기를 하려면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번성하던 고려는 몽골의 침입 이후 몽골이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원나라는 고려 안팎의 정치와 생활, 심지어 임금을 세우는 것까지도 간섭을 했습니다. 고려 내부에서는 신하들이 원나라를 섬겨야한다는 편과 그 반대의 편으로 나뉘었습니다. 고려 말 임금의 자리에 오른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폈지만 무신정변과 몽골의 침입을 겪으면서 왕권은 크게 약해 있었고, 원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권력을 누리던 귀족들은 공민왕의 정책을 반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민왕의 정책은 실패로 끝났고, 공민왕의 죽음 이후 귀족들은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횡포를 부렸습니다.
고려는 계속되는 주변국의 침입으로 백성의 생활이 어려워졌고, 여기저기에서는 나라를 개혁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유교를 공부하였던 사람 중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들은 유교의 원리에 따라 고려를 개혁해야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과 더불어 지방에 바탕을 두면서 세력을 모아 장수나 관리로 힘을 키워왔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지방 세력들은 다른 민족의 침입을 막거나 백성을 다스리면서 백성의 믿음을 얻은 사람들로 고려 정치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이들 역시 고려를 개혁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지방 세력들 중에 정도전과 이성계도 있었습니다.
▲이성계(출처: 위키백과) ▲정도전(출처: 문화재청)
나라 안팎으로 혼란했던 고려는 결국 이성계에 의해 무너지면서 새로운 왕조시대가 열렸고, 왕의 자리에 오른 이성계는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새로운 나라의 이름을 조선이라 칭하게 됩니다. 또한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경을 벗어나 새로운 도읍이 필요했던 이성계는 조선이라는 새 시대를 열어갈 도읍으로 한양을 정했습니다.
삼국시대와 신라, 고려 시대 동안 군사적, 외교적 요충지였던 한양이 조선의 새 도읍으로 정해지자 정도전은 한양을 유교의 원리가 녹아있는 도시로 건설하고자 하였습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유교를 깊이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유교의 원리와 정신에 크게 영향을 받은 정도전은 조선의 제도와 정책을 만들 때에도 유교의 원리를 따르려 하였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과 임금의 위패를 모신 사당의 위치를 정하고, 임금이 머무르는 궁의 모습을 설계하는 것에도 정도전의 생각이 들어갔습니다. 또한 유학의 경전에서 한 구절을 가져와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지었으며, 궁의 각 건물의 이름을 손수 지었습니다. 조선 팔도와 다른 나라의 사람까지 오고가는 성곽의 4대문의 이름도 정도전이 지은 것인데, 동쪽의 문 ‘흥인지문(동대문)’, 남쪽의 문 ‘숭례문(남대문)’, 북쪽의 ‘숙청문’, 서쪽의 ‘돈의문’은 유학의 덕목인 ‘인, 의, 예, 지, 신’을 따랐습니다.
■ 600년의 기틀을 세운 한양 도성 만들기
나라를 건국하면 수도를 어디로 정할지 무척 고민이 될 것인데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조선이라는 새 시대를 열어갈 도읍으로 한양을 정했습니다. 이러한 한양이 한 나라의 도읍으로서 모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궁과 문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읍을 지킬 수 있는 성과 관청, 백성이 살 곳 등도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이성계와 정도전은 조선이 크게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양의 모습을 하나씩 만들어 갔으며, 한양은 점점 한 나라의 도읍으로서 손색이 없는 모습을 갖추고 600년 동안 조선의 역사와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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