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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만나는 선비의 향기

대한민국 교육부 2015. 8. 4. 10:01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만나는 선비의 향기




지난 6월 4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간송문화전 4부 매난국죽: 선비의 향기>가 열리고 있습니다. 문화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전시에서는 사군자로 불리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매화는 이른 봄 추위를 무릅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도 은은한 향기로 주위를 맑게 합니다. 국화는 늦가을 모진 서리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고,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습니다. 이런 특징들이 군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 '사군자'라고 부르며 문학과 예술의 소재로 애용되어 왔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부터 그리기 시작해 조선 중기에 완성돼 근대까지 이어졌어요.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쪽 공간에는 간송 전형필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전시회를 통해 많은 국보나 보물들을 볼 수 있는 건 그가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들의 가치에 맞는 가격을 치러 모은 덕분이에요.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켜낸 일화가 유명하죠. 간송 전형필은 이용준으로부터 훈민정음 해례본을 살 때, 처음에 1000원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1000원이면 서울 중심가의 가장 좋은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간송은 해례본의 가격으로 10000원을 치르고, 거래를 주선한 김태준에게 1000원을 주었다고 합니다.


문화재 수집·보존가로 유명했지만, 간송은 그림이나 글씨에도 능했답니다. 그가 옮겨 그린 그림들은 원본보다 더 세련되거나 원본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비슷합니다. 나라를 매우 사랑했던 인물로 광복 이후 보성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을 항상 3월1일에 거행하고 독립선언서를 반드시 낭독하도록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그가 직접 손으로 필사한 독립선언문을 볼 수 있답니다.


▲탄은 이정의 <순죽>, 그의 시첩 <삼청첩>에 들어있는 그림이다.(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


전시장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은 탄은 이정의 시화첩 <삼청첩>입니다. 이 작품은 탄은이 임진왜란 때 오른팔을 잃을 뻔한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그의 인생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일세지보’라며 조선 중기 문화·예술의 결정판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지요. 석봉 한호가 제첨을 쓰고, 간이 최립이 서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답니다. 병자호란 때 화마로 표지와 서문이 소실되는 바람에 복원된 지금의 제첨은 동춘 송준길의 글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쓰보이코우소라는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 일본으로 유출되기 직전에 간송이 되찾아왔다고 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최고의 묵죽화가로 유명했던 만큼 대나무를 그린 그림이 많답니다. 대나무 그림이 12점, 매화와 난초가 각각 4점이 그려져 있고, 이정의 자작시 21수가 들어있었다고 해요. 전란을 당한 안타까움, 우국의 심경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읊은 시들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온전한 것은 3~4수뿐이라고 해요. 삼청첩은 먹으로 까맣게 물들인 비단인 흑견에 아교에 금박 가루를 갠 물감인 금니로 그림을 그렸어요. 왕실에서나 쓸 수 있는 귀한 재료였는데, 그가 세종대왕의 고손이고, 대나무 그림으로는 당대 최고로 꼽혔기에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흑견금니가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이것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최소한의 연습만으로 작품을 완성해야 했는데, <삼청첩>을 보면 탄은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차동훈의 <풍죽예찬>(출처: 에듀넷)


<풍죽>은 다른 작품들과는 또 다른 공간에 있답니다. <풍죽>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는 양 벽에는 미디어아트 작가 차동훈의 <풍죽예찬>이라는 작품을 볼 수 있답니다. 차 작가는 대나무가 군자의 상징인 이유에 대해서 오랜 시간 깊이 있게 사색했다고 합니다. 특히 탄은이 대나무를 바라보고 느꼈을 심정과 감흥을 어떻게 하면 공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심해 <풍죽예찬>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탄은이 만년을 보내며 창작에 몰두했던 충청도 공주 지역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대나무 명소를 실사한 영상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해요.


▲ 탄은 이정의 <풍죽>(왼쪽)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 5만 원 권 지폐 뒷면(오른쪽).

<풍죽>은 5만 원 권 지폐에 삽입되면서 작품이 많이 훼손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많은 한국인들이 한번쯤은 지녀봤을 그림입니다. 탄은 이정의 <풍죽>이라는 작품인데요. 탄은의 묵죽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작품이랍니다. 오만 원 권 지폐의 뒷면에 어몽룡의 <묵매> 뒤에 흐릿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이 바로 탄은의 작품이죠. 탄은이 이 같은 걸작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천부적인 자질과 부단한 수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왕손이자 조선의 선비로서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걸어갔던 올곧은 삶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정이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칼을 맞아 팔이 잘려 나갈 뻔한 시련을 겪었던 사실을 떠올린다면, <풍죽>에서 흐르는 고고함과 강인함은 그저 붓끝의 기교로만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백매>(왼쪽)(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 <백매> 옆에 장식된 벽면(오른쪽)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군자를 담은 병풍 그림의 대가로 유명하고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인 <백매>는 주춤거리는 듯 출렁이는 필선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넘실넘실 춤추는 듯한 느낌을 줘요. 단원 사군자 그림의 특징과 지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고, 선비의 정신과 절개 이전에 시인으로서의 풍류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추사 김정희의<적설만산>(좌), 삭파 이하응의 <목란>(우),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홈페이지)


추사 김정희가 난을 치는 비결을 체득한 후 묵란화 16폭을 엮어 만든 화첩이 『난맹첩』이랍니다. 그 중에 2폭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어요. 추사의 난 옆에는 흥선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석파 이하응의 난이 있답니다. 정치가로서의 면모가 강했던 석파지만, 사군자에 있어서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예술가였다고 해요. 추사로부터 난초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답니다. 추사와 석파는 34살이나 차이나는 스승과 제자 사이지만, 추사는 1000명이 넘는 제자들 중 석파를 제일 아꼈고, 석파 역시 그를 잘 따랐다고 해요.


두 사람 모두 안동 김씨의 정치적 핍박 아래 힘든 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래서 서로를 더 존중하고 존경하며 운명 같은 만남을 이어갔는지도 모릅니다. 추사는 난을 칠 때 똑같이 일자로 재미없게 대칭구도로 그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 해요. 정신을 담아 강약을 조절해 그려야 한다고 했죠. 석파는 이런 추사의 가르침을 따라 그의 화법을 가장 잘 계승한 인물로 꼽혀요. 두 사람의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모두 추사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석파는 성격이 조금 급했던지 난과 난이 겹치는 부분에서 번졌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여러 관람객들이 조용히 도슨트 해설을 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내부에서는 벽면이나 영상 외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함께 관람해야 할 작품이기에 작품의 보존을 위해 지켜야 할 사항이겠지요. 관람 동선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하얀 벽면에 크게 띄워놓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동파 소식 등의 문인들이 사군자에 대해 읊은 시들을 소개하는 영상이에요. 배경음악을 들으며 보고 있으면 옛날 선비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배경음악은 전시장 전체로 잔잔하게 퍼져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차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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