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교육부 공식 블로그
거북선의 잔해를 발견할 수 없는 까닭(1) 본문
1905년 5월 27일 오후 2시경, 제정 러시아의 무적함대로 소문난 발틱함대가 7개월 간의 긴 항해 끝에 드디어 쓰시마해협에서 일본의 연합함대와 마주쳤다. 대치하고 있던 양측 함대의 거리가 약 8㎞로 좁혀지자 일본 해군 총사령관인 도고 제독의 오른손이 번쩍 올라갔다.
일본 연합함대는 그의 지휘대로 선두에 있던 전함이 좌현으로 돌기 시작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름 지은 이 쓰시마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38척의 발틱함대 중 무사히 블라디보스토크에 입항한 것은 3척뿐이었으며, 나머지 21척은 수장되고 6척은 일본군에 나포되었으며, 그리고 6척은 중립국으로 도피했다. 또 이 전투로 러시아의 병사 5천명이 전사하고 6천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
▲ 쓰시마해전에서 일본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비해 일본 연합함대의 피해는 경미했다. 어뢰정 3척이 침몰되고, 전사 110여 명에 부상자 580여 명뿐이었다. 일본 해군이 이처럼 완벽한 승리를 거둔 비법은 전투 개시 직전에 올라간 도고 제독의 손짓 속에 숨어 있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일본 함대가 취한 전투 대열을 일명 ‘정(丁)자 전법’이라 부른다.
이로 인해 도고 제독은 군신(軍神)으로까지 추앙받게 되고, 영국의 넬슨 제독 및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도 비교되었다. 그러자 도고 제독은 주변의 칭송에 반박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넬슨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달게 받을 수 있으나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는 견줄 수 없다. 이순신이 장군이라면 나는 하사관에 불과하다.”
도고 제독이 이처럼 겸손한 말을 한 것은 평소 그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이순신의 제자라 칭했는데, 쓰시마해전에서 그가 사용한 丁자진도 사실은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이후 도고 제독의 丁자진은 영국으로 전해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이 독일 해군을 물리치는 데 응용되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해군이 레이테만에서 일본의 태평양함대를 궤멸시킬 때 사용한 T자진도 이순신의 학익진에서 응용된 전법이었다.
세계 해전사에서 독보적인 자취를 남긴 이순신 장군의 승리 비결은 학익진과 같은 뛰어난 전법 이외에 일정 거리를 확보한 함포사격 전법, 조수나 물살의 세기 등 지형적 조건을 이용한 전술 구사, 적장부터 먼저 궤멸시키는 심리전 등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다.
▲ 스스로를 이순신 장군의 수제자라 칭한 일본의 도고 제독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거북선의 위력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1595년(선조 28년) 10월 27일자의 선조실록에는 비변사에서 왜적이 머뭇거리고 떠나지 아니하므로 거북선을 더 만들자고 아뢰는 내용이 나온다. 왜적이 가장 꺼리는 바가 바로 거북선이기 때문이었다.
또 병자호란의 굴욕을 당한 이후 청나라와의 관계를 끊는 것에 대해 논의하던 1639년(인조 17년) 7월 14일자의 기록에서도 영의정 최명길이 거북선부터 먼저 만들자고 건의하고 있다. 거북선의 위력에 대한 이 같은 소문은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점점 커진 것 같다. 1808년(순조 8년) 1월 10일의 기록을 보면 순조가 전 통제사 이당에게 거북선에 대해 묻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자 이당은 통영의 거북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모양이 거북같이 생겼는데 1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 없이 바다에 떠다니는 것이 마치 거북이 떠 있는 것 같으며, 입과 코에서 연기가 나오므로 지금도 표류해온 왜인이 이를 보면 서로 놀라서 말하기를 ‘이것은 사람을 사로잡는 기계이다’라고 한다 합니다.”
그런데 거북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중에는 잘못된 게 꽤 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잘못된 게 아니라 아직까지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사항들이라고 해야겠다.
먼저 거북선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이다. 흔히 알려진 바로는 거북선은 임진왜란 직전 이순신 장군의 지휘 하에 군관 나대용이 건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70여 년 전인 태종 때부터 이미 등장하고 있다.
1413년(태종 13년) 2월 5일 태종은 통제원 남교에서 임진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전투 훈련을 참관했다고 되어 있다. 또 2년 후인 1415년(태종 15년) 7월 16일 좌대언 탁신은 군사에 관한 여러 가지 준비사항을 보고하면서 마지막으로 거북선을 거론했다.
▲ 통영에서 재현된 한산대첩의 학익진 전투 장면
이 내용을 보면 당시의 거북선도 임진왜란 때처럼 적진을 마구 헤집고 다니는 돌격함으로서의 용도에 적합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 외 여러 정황으로 보아 거북선은 거북 모양으로 생긴 전함으로서 고려 때부터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게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따라서 나대용이 만든 게 이전의 거북선을 더 보완한 것인지, 아니면 완전히 모양과 기능을 달리한 새로운 발명품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둘째,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은 그 화려한 명성과 달리 실제 보유대수는 단 3척뿐이었다는 점이다. 전라좌수영에서 건조된 ‘영귀선’과 방답진에서 만들어진 ‘방답귀선’, 순천부의 ‘순천귀선’이라는 이름의 거북선이 그것들이다. 왜냐하면 거북선은 주력 전투함이 아니라 적 함대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진영을 흐트러뜨리는 돌격선의 역할을 하는 보조함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전법은 매우 달랐다. 수군이 따로 없었던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해적 출신들을 수군으로 급조했다. 해적들의 전투 방식은 바이킹이 상선을 노략질할 때와 마찬가지로 배에 접근해서 갈고리를 던져 타고 올라 백병전을 벌이는 등선육박전이었다. 더구나 왜군은 전통적으로 칼싸움에 능했기 때문에 백병전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거북선 모형
이를 간파한 이순신 장군은 육박전이 불가능하게끔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조선이 보유한 우수한 화포로 왜선을 격파하는 함포 사격 전법을 구사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 등의 전투함에 배치되어 왜선에 큰 타격을 입힌 천자총통의 경우 사정거리가 900보(약 1.6㎞)에서 1천200보(2.16㎞)나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대포인 대통은 사정거리가 300m 정도에 불과했다. 또 육상전에서 맹위를 떨친 일본 조총의 유효 사거리도 50m 정도에 불과했으니, 함포전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전투상황에서 거북선은 적진을 무너뜨리고 적장이 탄 배를 공격하는 돌격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자면 육박전도 가능할 만큼 적선과 밀착하여 전투를 해야 했는데, 거북선은 그에 매우 적합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배 위에 판목을 깔아 거북 등처럼 만들고 그 위에는 우리 군사가 겨우 통행할 수 있을 만큼 십자(十字)로 좁은 길을 내고 나머지는 모두 칼·송곳 같은 것을 줄지어 꽂았다. 그리고 앞은 용의 머리를 만들어, 입은 대포 구멍으로 활용하였으며 뒤에는 거북의 꼬리를 만들어 꼬리 밑에 총 구멍을 설치하였다. 좌우에도 총 구멍이 각각 여섯 개가 있었으며, 군사는 모두 그 밑에 숨어 있도록 하였다. 사면으로 포를 쏠 수 있게 하였고 전후좌우로 이동하는 것이 나는 것처럼 빨랐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횡행(橫行)하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바람에 쓸리듯 적선을 격파하였으므로 언제나 승리하였다.”
싸울 때에는 거적이나 풀로 덮어 송곳과 칼날이 드러나지 않게 하였는데, 적이 뛰어오르면 송곳과 칼에 찔리게 되고 덮쳐 포위하면 화총(火銃)을 일제히 쏘았다. 그리하여 적선 속을 횡행(橫行)하는데도 아군은 손상을 입지 않은 채 가는 곳마다 바람에 쓸리듯 적선을 격파하였으므로 언제나 승리하였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5월 1일자
정작 왜선들을 박살내는 건 조선의 주력 전투함인 판옥선에서 내쏘는 대포였으나, 자기 진영을 헤집고 다니는 괴상한 모양의 거북선에 대해 일본 수군들은 훨씬 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다음 글로 계속됩니다.
'~2016년 교육부 이야기 > 신기한 과학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 없는 서울 밤하늘, 다른 곳과 비교해보니 (5) | 2009.12.11 |
---|---|
[이주의 천체사진] 오로라 (1) | 2009.12.10 |
바다가 출렁이는 ‘제2의 지구’를 찾아라 (1) | 2009.12.07 |
블로그 수리영역, 적정노출값을 찾아라! (7) | 2009.12.04 |
스모 선수들 왜 일찍 죽나 했더니 (3) | 2009.12.04 |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