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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선생님과 고귀한 문화유산 본문

교육부 국민서포터즈

간송 선생님과 고귀한 문화유산

대한민국 교육부 2015. 9. 14. 13:15

간송 선생님과

고귀한 문화유산



해외에 유출된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16만여 점에 달한다고 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과 그 외 여러 국가의 골동상과 문화재 수집가들이 한국의 문화재를 대거 수집해 감으로써 문화재 유출이 매우 심각하였습니다. 반면 조국의 문화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 대표적인 분으로 간송 전형필 선생님을 꼽을 수 있습니다.


간송 선생님은 1906년 서울의 한 부잣집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훗날 간송 선생님은 항일 운동가이자 옛 문헌을 연구하는 고증학자이신 위창 오세창 선생님과의 만남을 계기로 일본으로 유출되고 있는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문화유산을 향한 간송 선생님의 열정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간송 선생님은 한국의 문화유산이 경매나 시장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문화유산을 끝내 되찾아 오시는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의 열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에서의 일화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간송 선생님은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에 조선시대 명품 백자가 올랐다는 말을 듣고 백자를 꼭 얻어야겠다는 굳은 의지와 함께 경매장에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경매장에는 간송 선생님과 같은 물건을 노리던 일본의 골동 거상 야마니카가 있었습니다. 백자 경매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야마니카와 간송 선생님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습니다. 백자의 액수는 끝없이 올라갔고, 끈질긴 경매 끝에 결국 백자는 간송 선생님의 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백자의 낙찰 액수가 1만 4,580원입니다. 당시 기와집 한 채를 1천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1만 5,000원에 육박하는 액수는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이었습니다. 이 백자가 바로 아래 사진의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입니다. 이 백자는 현재 국보 제 94호로, 다양한 색깔과 아름다운 조각이 인상적인 명품중의 명품입니다.


▲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출처: 문화재청)


간송 선생님이 지켜내신 또 다른 대표적인 도자기가 ‘청자상감운학문매병’입니다. 이 청자는 국보 68호로, 고려 때 제작된 상감청자입니다. 표면에 그려진 학들의 모습이 매우 섬세하게 표현돼 마치 실제로 날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청자의 매끄러운 곡선 또한 인상적입니다. 고려시대의 청자 제조 기술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입니다. 이 청자는 원래 일본의 골동상인 마에다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간송 선생님께서 2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하고 되찾아오셨습니다.


▲ 청자상감운학문매병(출처: 문화재청)


간송 선생님의 수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상세하게 설명한 책으로 한글의 창제 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 고귀한 문화유산입니다. 훈민정음은 국보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민족말살 정책을 내세우며 한글 사용을 금기시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내고 무사히 구해낸 것은 대한민국의 정신을 지켜낸 대단한 업적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출처: 문화재청)


이렇게 힘든 노력 끝에 얻어낸 고귀한 문화유산들은 ‘빛나는 보배를 모아둔 집’ 이라는 뜻을 가진 보화각에 보관, 전시되었고 이 보화각은 현재 간송미술관으로 이어졌습니다. 보화각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이기도 합니다.

 

“간송의 수집품을 거론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한국 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간송 선생님의 문화재 수집은 현재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간송 선생님의 수집품 중 12점은 국보로, 10점이 보물로 지정된 것을 보면 이를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는 곧 그 나라 국민들의 정신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간송 선생님은 조국을 일본에 빼앗긴 열악한 상황에서도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냄으로써 한국인의 정신을 지켜낸 대단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평생을 문화유산에 바친 간송 선생님의 업적과, 간송 선생님이 남기신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통해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문화에 더 큰 자긍심을 가지고, 문화유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 서적: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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