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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기록 문화
프랑스에 의해 약탈된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2011년 여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특별한 전시가 열려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바로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외규장각은 1782년 정조가 강화도 행궁에 세운 왕실도서관입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에 의해 약탈되었던 의궤 중 영조의 아들 효장세자 책봉식을 기록한 '효장세자 책례도감 의궤', 숙종이 인현왕후를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숙종 인현왕후 가례도감 의궤' 등 많은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에 의해 약탈된 지 14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외규장각 의궤 반환이 이루어진 것은 오랜 시간 의궤의 반환을 위해 애쓴 역사학자 박병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로 유학길에 오를 때 빼앗긴 책을 찾아보라는 스승의 권유를 받았던 박병선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오랜 시간 책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에서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하였습니다. 박병선은 중국서적으로 분류되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의궤의 제목을 정리해 한국기자들에게 알림으로써 의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고 이때부터 오랜 반환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993년 한국과 프랑스의 정상회담에서 미테랑 대통령이 1권을 전달하고 외규장각 의궤를 반환할 의사가 있음을 알렸지만 반환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20여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2010년 G20 정상회의 중 합의가 이루어져 5년마다 대여를 갱신하는 조건으로 2011년 145년 만에 297권의 의궤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박병선 박사는 의궤가 돌아온 2011년 가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의궤
의궤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의궤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볼까요? 의궤란 ‘의식’과 ‘ 궤범’을 합친 말로 조선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 행사와 의식의 전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종합 보고서예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뛰어난 기록 문화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지요. 유교적 전통에 따라 진행된 왕실의 결혼, 세자 책봉, 왕의 즉위, 장례 등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궁궐 건축에 관한 내용도 역시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의궤는 같은 유교 문화를 가진 나라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만 발견이 되는 독특한 기록 문화로서 많은 학자들이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의궤는 조선 초기부터 만들어졌으나 현재에는 임진왜란 이후의 것만 남아있어요. 2007년 조선왕조 의궤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어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된 의궤는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있는 2,940권과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있는 490권, 총 3,430권이에요. 프랑스에 있던 의궤는 등재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유네스코에서는 그 나라에 있는 문화재만 인정하여 등재한다고 하였거든요.
외규장각도
의궤는 후대 사람들이 같은 의식이나 행사를 치를 때 예법에 맞게 잘 치를 수 있게 참고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따라서 왕실에 행사가 생기면 “도감”이라는 기구를 설치하여 의궤를 편찬하도록 했어요. 행사에 맞는 의궤의 이름을 붙인 후 행사에 관한 모든 내용을 자세히 글로 쓰고 도화서에 소속된 화원은 행사의 전 과정을 그림으로 그렸어요.
의궤는 보통 5~9부가 제작이 되었는데 어람용(御覽用)과 분상용(分上用)으로 나누어 제작이 되었지요. 어람용은 임금님이 보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1부를 제작하였습니다. 분상용은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지방의 사고, 춘추관, 관련 업무 관서 등에서 보관되었습니다. 어람용과 분상용을 비교했을 때 어람용이 훨씬 좋은 재료와 높은 수준으로 제작되었어요. 당시의 월등한 도서 편찬 수준을 보여주지요. 이러한 어람용 의궤는 주로 규장각이나 외규장각에 보관이 되었는데요, 2011년에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는 대부분 어람용이이며 국내외에는 없는 유일본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합니다.
헌종경릉산릉도감의궤 어람용과 분상용
많은 학자들이 최고로 뽑는 의궤는 임금와 왕비의 결혼을 기록한 『가례도감의궤』입니다. 총 20여 점 남아있는 가례도감의궤 중에서도 영조와 정순왕후의 결혼식을 기록한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가 대표적이지요.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반차도
이는 66세의 영조와 15세 신부인 정순왕후의 혼인식을 그린 반차도에요. 반차도란 관리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런데 가마 안에 영조가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귀한 왕을 함부로 그릴 수 없기에 방석만 놓여 있는 가마로 영조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거지요. 오른쪽 그림은 왕비 선발 시험을 최종적으로 통과한 정순왕후가 가마 안에 있는 모습입니다. 이외에도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에는 정순왕후가 왕실의 예법을 배우는 장면부터 가마와 의복 수, 참가 인원, 행사에 쓰인 음식 등이 모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처: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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