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장 평가로 유급을 결정하는 네덜란드

 

네덜란드 아이들은 만4살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는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유치원교육(Groep 1,2) 2년이 포함되어 있어서 모두 8년 과정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유치원교육이 공교육으로 이루어집니다. 네덜란드 아이들은 왜 학교가기를 그토록 기다릴까요? 초등학교에 가면 재미있다는 것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룹1.2(Groep)과정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 주요 일과입니다. 물론 교사들이 동화책도 읽어주지만 글자를 몰라도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숫자를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는 것은 놀이과정 속에서 친구들과 얼마나 사이좋게 양보하고 노는지, 도와가며 노는지, 잘 참는지,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지 등입니다. 아이들은 글자도 숫자도 배우지 않지만 1년이면 4차례 평가서(Report)가 나오면서 유치원과정에도 엄밀하게 유급이 이루어집니다. 자기밖에 모르며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아이들은 학부모상담을 통해 이해시킨 뒤 유급시킵니다. 유치원을 사회생활의 기초교육으로 보기에 철저하게 기본예절, 양보, 배려 등을 가르치는 것이 주된 교육 목표입니다.

 

<놀이과정 속에서 양보와 배려를 가르치는 유치원 수업모습>

 

책가방이 없는 네덜란드 초등학생들

  한국의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인 그룹3(Groep)에 올라가면 비로소 글자와 숫자 등을 배우는 학업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네덜란드 초등학교 아이들은 책가방이 없습니다. 학교에 갈 때 가져가는 것은 바깥놀이 시간에 먹을 간식과 음료뿐입니다. 학업에 필요한 노트나 필통 등 모든 학용품과 준비물을 학교에서 마련해 주기 때문에 가지고 갈 필요도 없습니다. 책가방이 없으니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를 집에 가져오지도 않습니다. 교과서가 없으니 당연히 예습과 복습은 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를 보고 해야 할 숙제도 없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간간히 과제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제물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감상문을 쓰거나 그룹으로 같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리포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초등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면 대부분 실컷 놉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수영장에 가고 잔디밭에서 뒹굴고 동네 개울가에서 물고기도 잡습니다.  
     
  책을 집에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 교장은 “학교 공부는 학교에서 충분히 하고, 나머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집이나 사회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네덜란드 초등학교 역시 유치원과 마찬가지로 유급이 적용됩니다. 1년에 4차례 성적표가 나오며, 교사는 성적표를 집에 보내기 전 반드시 ‘교사와 학부모 10분 면담’을 통해 자녀의 학업성취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성적표를 공개하고 자녀노트 등을 보여줍니다. 비록 책을 집에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네덜란드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한 이런 결과물을 통해 이 학생이 정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은지 등을 교사가 성적표에 다 꼼꼼하게 기록하고 평가합니다. 왜냐하면 이 기록이 나중에 중·고등학교 진학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모르겐 스테르(mirgenster) 초등학교의 학부모 10분 면담 모습>

 

<네덜란드 캄펜 익두스(Ichthus college) 중 하위 직업학교의 미장이 수업>

 

네덜란드에는 사교육이 없다

  네덜란드는 전 세계 비영어권에서 영어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조기영어 열풍이 전혀 없습니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5학년에 시작됩니다. 초등영어는 그야말로 영어에 기본기를 다지는 정도입니다. 인사말정도 배운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필자는 네덜란드에서 우리 아이에게 영어공부 과외를 시켜보려고 학원을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네덜란드 학부모로부터 중학교 가면 저절로 영어 잘하게 되는데 왜 그러느냐고 의아한 눈초리만 받을 뿐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사교육이 거의 없습니다. 
        
  네덜란드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우리와 다릅니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학생들은 제각기 가는 길이 달라집니다. 네덜란드 중·고등학교는 크게 인문계 중·고등학교(VWO,6년과정), 상위 보통중·고등학교(HAVO,5년), 중하위 직업중·고등학교(Vmbo.4년)로 나뉩니다. 
      
  중·고등학교 진학은 초등학교 6학년(Groep8) 1학기에 중·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국가시험(CITO) 성적과 초등학교 8년 과정의 내신 성적으로 결정됩니다. 국가시험은 그야말로 상식시험입니다. 네덜란드 초등학생 중 인문계 중·고등학교 진학률은 20% 미만이며, 상위 보통중·고등학교는 25~30%, 중하위 직업중·고등학교는 45~60%입니다. 
      
  학교에 따라 배우는 과정과 난이도가 다르며 유급이 초등학교보다 더 강하게 이루어집니다. 인문계 중·고등학교의 경우 언어과목만 해도 중학교 1학년 과정에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히브리어까지 5~6개에 이를 정도로 많습니다. 인문계에 진학했더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유급당해 상위 보통학교나 중하위 직업학교로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원한다면 중하위 직업학교에서 노력해서 인문계학교로 갈 수도 있습니다. 
     
  네덜란드 학생들은 중학교 1학년 13살 나이에 앞으로 미래에 내가 어떤 길을 갈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고 철저하게 준비를 해갑니다. 대학에 가서 공부할 사람들은 공부에 매진하고 공부보다 다른 것에 관심 있는 학생은 원하는 기술을 익혀 자격증을 따는 등 중학교 때부터 미래의 직업전선에 나갈 기술을 연마합니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보다 직업기술을 익히는 학생이 3배가량 많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평생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를 어린나이에 고민하고 준비합니다.

글_ 정 현 숙 『공교육의 천국 네덜란드』 저자
출처_행복한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