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교육부 공식 블로그

영상통화의 몰락, 애플 아이폰4가 살려낼까?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영상통화의 몰락, 애플 아이폰4가 살려낼까?

대한민국 교육부 2010. 9. 8. 09:45
도입과 실패 반복한 영상전화 수난사, 기술아닌 '감성'에 주목

▲ 아이폰 4G 발표회에서 영상전화 서비스를 선보인 애플사 CEO 스티브 잡스. ⓒ위키피디아

애플사의 ‘아이폰’에게 쏟아지는 열광적인 지지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과열양상까지 보이는 대중들의 관심은 많은 부분 CEO 스티브 잡스가 내세우는 독특한 기술철학과 관련이 있다. 잡스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직접 발표회를 주관하며 자신의 제품이 첨단기술의 복합체일 뿐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보듬는 아름다운 인공물임을 부각했다. 다른 경쟁사가 첨단기술에 집착할 때, 그는 공공연히 기술과 문화의 결합을 표방하며 유려한 디자인을 위해 때로는 일부 기술마저 포기하는 파격적인 행보까지 보였다.


잡스는 지난 6월에 있었던 아이폰 4 발표회에서 여러 신기술을 선보였는데 무선 인터넷 와이파이(Wi-Fi)를 이용한 영상전화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발표회 도중 아이폰 디자인 총책임자인 조니 이브와 영상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아이폰 4의 영상전화 기술이 멀리 떨어진 가족들을 생생하게 연결하고, 청각장애인에게 수화로 통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음성전화가 전달하지 못했던 더욱 친밀한 ‘인간관계’를 선사한다는 것이다.



   AT&T의 영상전화 수난기
 

잡스는 마치 영상전화를 새로운 기술인 것처럼 소개했지만, 이미 많이 보급돼 있는 일반 3G급 휴대전화도 영상통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다수 이용자의 영상통화 이용률은 예상보다 높지 않은데, 영상전화가 이처럼 대중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현상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복된 바 있다.

영상전화 서비스는 이미 1960년대에도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등장해 도입과 실패를 반복했던 기술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영상전화를 미래의 첨단기술로 여긴다는 것이다. 공상과학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영상전화는 으레 미래 풍경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지 않았던가.

영상통화라는 개념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1876년 전화를 발명할 때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깊다. 당시 벨은 전기신호를 이용하면, 음성뿐 아니라 영상도 전달이 가능하다는 기술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상전화는 그후 오랫동안 영상을 구현할만한 매체를 찾지 못한 채 사람들의 상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1920년대에 TV가 등장하자, 엔지니어들은 TV의 영상전송 기술을 응용해 영상전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디어 기술이 라디오에서 TV로 진화했듯, 통신 기술 또한 음성통화에서 결국 영상통화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상은 엔지니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영상통화를 위한 시도는 1930년대 말 독일에서 최초로 진행됐다. 베를린올림픽(1936년)을 나치 선전의 장으로 활용했던 독일은 올림픽 최초의 TV 중계와 함께 베를린과 뮌헨, 라이프치히를 연결하는 영상전화 서비스를 자랑스럽게 선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곧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의 영상전화 기술은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한 채 멈추고 말았다.

영상전화 실현을 위한 노력은 종전 후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미국 전화사업의 선구자인 AT&T사는 음성전화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영상전화 서비스를 통해 전화사업의 일대 도약을 꾀했다. 그리고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AT&T가 개발한 영상전화 ‘픽처폰 몰(Mol)Ⅰ’이 마침내 세상에 등장했다. AT&T는 박람회장과 워싱턴 DC의 한 사무실을 연결하며 ‘새로운 통신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했다. AT&T의 영상전화는 이처럼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수익성 면에서 크게 실패했다.

당시 픽처폰 몰Ⅰ은 1초에 30프레임의 흑백영상을 주고받는 작은 모니터와 음성전화로 구성됐는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개의 꼬인 구리선을 가설해야 했다. 영상 전송을 위해서는 기존보다 좋은 구리선이 필요했으므로 그만큼 많은 비용이 들었다. 이에 따라 일반 고객이 영상전화를 가설하려면 1년에 약 1200달러에 달하는 큰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이는 당시 미국 중산층 가정이 1년 동안 벌어들이는 평균 수입의 약 1/8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후 AT&T는 영상전화 사업을 키우기 위한 방안으로 공중 영상전화 부스를 뉴욕과 시카고, 워싱턴에 설치하고 점차 확대할 계획이었으나 이 전화를 이용한 고객은 1964년 하반기 71명에 불과할 만큼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용률은 갈수록 줄어들어 1970년에는 아무도 공중 영상전화 부스를 사용하지 않았다.



   영상전화의 몰락, 과연 기술결함 때문인가
 

이후에도 AT&T는 영상전화 사업에서 쉽사리 손을 떼지 못했다. 음성뿐 아니라 표정, 손짓으로도 의미를 읽는 일상적인 대화 습성을 고려한다면, 음성전화에서 영상전화로의 전환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영상전화 기술이 더욱 발전해 가격을 낮출 수만 있다면 상품성이 충분히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AT&T에게 영상전화는 놓쳐서는 안 될 황금알을 낳는 미래기술이었다. 이후 픽처폰 몰Ⅰ의 모니터 크기를 키우는 등 몇 가지 기술적 개량을 거쳐 ‘몰II’를 선보였지만, 이 역시 대중의 관심을 끌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AT&T사의 픽처폰 시리즈가 줄줄이 실패하면서, 영상전화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다고 영상전화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수의 엔지니어들은 영상전화의 실패 원인을 기술적 결함으로 보고, 기존 기술을 조금씩 개량한 영상전화를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내놓곤 했다.

지지부진하던 영상전화 기술은 1990년이 돼서야 다시 한 번 도약을 이룬다. AT&T가 새로운 영상전화인 ‘비디오폰(Videophone)’을 출시하면서 또 다시 시장개척에 나선 것이다. 전화선의 정보전달 용량이 커짐에 따라 이전 픽처폰 시리즈가 보여줬던 답답한 영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가격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중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AT&T의 엔지니어들은 크게 당황했다. 가격을 낮추고 화질과 속도를 개선하면 시장에 쉽게 정착하리라 여겼던 예측들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기술결함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최근 기술사학자들은 영상전화의 실패 원인을 사람들의 전화 이용습관에서 찾고 있다.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인 전화는 그 특성상 이용자의 취향을 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다 생생한 전화 통화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프라이버시가 과도하게 침해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시시때때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위해 자신의 사적 공간에서 마음껏 머물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한 채 항상 정갈한 자세로 대기하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좁은 화면을 두고 대화해야 하는 영상통화는 음성통화에 비해 과도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이는 다른 일을 하면서 부담 없이 통화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묘한 저항감을 불러왔다. 결국 이러한 소비자의 심리가 영상전화를 현재진행형이 아닌, 자꾸만 먼 미래의 기술로 밀어냈던 것이다. 기술의 수용은 기술결함을 따지는 기술의 내적논리보다 사회, 문화적인 함의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영상전화인 셈이다.

지금은 무선인터넷이 충분히 영상통화를 실현할 만큼 기술적으로 진보했다. 휴대전화의 이용 패턴도 점차 다양해져 조그마한 액정화면으로 영상을 보는 데 익숙해지면서 좁고 답답한 화면에 대한 저항감도 이전보다 많이 감소했다. 또한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개개인의 프라이버시 개념도 이전과 달라졌다. 잡스는 아이폰의 영상전화를 선보이며 기술적 우위 못지않게 인간의 새로운 교류라는 문화 코드를 강조했다. 잡스의 감성적인 언어로 포장돼 또 다시 현실의 기술로 떠오른 영상전화. 과연 이번에는 대중의 심리적 저항을 물리치고 영상전화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제공 |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기반과 
글 | 오선실(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수료, 한양대 강사) 
 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타임즈 

8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