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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의혹 투성이인 달에 관한 미스테리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여전히 의혹 투성이인 달에 관한 미스테리

대한민국 교육부 2010. 9. 22. 07:00
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 팔월 한가위 하면 쟁반같이 둥근 달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서울 경기지방에 폭우가 내렸고 일기예보에도 비소식이 많아 보름달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바로 그 '달' 이야기를 꺼내본다.

달이 밤하늘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밤하늘의 대표 아이콘인 달. 그달이 있으므로 지구의 바다에는 밀물과 썰물 현상이 생겼고, 달을 기준으로 일 년의 절기를 나눈 달력이 생겼다. 만약 달이 없었다면 지구의 자전시간도 지금처럼 스물네 시간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고, 팔월 한가위라는 명절도 없었을 것이다.
 
 

   달에 대한 의혹들
 

1년 365일 묘하게도 늘 한쪽 얼굴만 지구 쪽에 보여주는 달은 신비로움을 간직한 채 많은 이야기와 신화를 지니고 있다. 우주선이 발사되고 무인·유인 달 탐사선이 달을 다녀온 지금도 달은 여전히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인류는 달에 가보지 못했다?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오로지 닉슨정권 동안에만 있었던 ‘달 탐사’를 두고 그동안 제기돼 왔던 음모론을 다음과 같이 10가지로 정리해 보도했다.

1.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달에 도착한 우주인이 달에 성조기를 꽂는 역사적 장면에서 성조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2. 아폴로 우주인이 찍은 사진에는 별이 없다.

3. 달착륙선이 찍은 달 표면에는 달 분화구가 보이지 않는다.

4. 달착륙선의 무게는 17톤인데도 달 표면에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않았으나,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선명하게 남았다.

5. 달 표면에는 습기도 대기도 없는데도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너무도 선명하다.

6. 달착륙선이 이륙하는 순간 로켓 발사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7. 달 표면에서 움직이는 우주인의 모습은 지구에서 촬영한 모습을 느린 동작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8. 달착륙선의 우주인들은 밴앨런대의 방사능 띠에 노출되었는데도 생존했다.

9. 아폴로 우주선이 가져온 월석은 남극에서 채취한 암석과 동일하다.

10. 6번의 달 착륙은 모두 냉전 시대의 닉슨정권하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후 40년 동안 어느 정권도 달 착륙을 시도하지 않았다.
 
달에 대한 탐사는 1959년 구소련의 인공위성인 루나 2호가 처음 달을 방문하면서 시작되었고, 달의 뒷모습을 인류가 보게 된 때는 1959년 10월 4일 구소련의 루니크 3호가 달을 회전하면서 달 뒷면을 촬영하여 공개하였을 때다. 1994년 클레멘타인 무인 우주선에 의해 달의 모든 부분이 지도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의혹이 없어지기는커녕 달 탐사 자체에까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달의 뒷모습

 
달은 낮의 길이가 약 14일, 밤의 길이가 약 14일이기 때문에 낮에는 온도가 섭씨 100도까지 올라가고 밤은 영하 150도나 된다. 달의 탐험은 이런 온도 변화 때문에 달의 아침에 해당하는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 또 지구를 기준으로 달의 뒷면에는 지구에서 전파를 보낼 수가 없어서 통신할 수 없기 때문에 달의 둘레를 회전하는 통신위성을 띄우지 않고서 달 뒷면의 탐사를 실행하기 곤란하다. 밴앨런대를 포함한 이러한 제약들이 더더욱 의혹을 부채질했다고 보인다.
 
그동안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달을 탐사한 것은 거짓말이었다는 주장과 달이 외계인들의 기지라는 이야기까지 등장했었다. 이런 주장들은 확인할 수 없지만, 달이 지구 쪽으로 뒷면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과 지구의 위성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너무 큰 달이 지구에서 볼 때 우연히도 태양과 겉보기 크기가 일치한다는 것은 신비함을 넘어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하다.
 
또, 달에 대한 기록은 뜻밖에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세계 여러 곳의 문명기록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말하는 ‘대홍수’를 언급하고 있고, 공통으로 대홍수 이전에는 달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마야인들의 기록에도 대홍수 이전에는 달 이야기가 없었으며 단지 금성을 언급했을 뿐이고, 남아프리카 부시맨족의 신화에도 대홍수 이전에는 달이 보이지 않았다고 쓰여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감독관이었던 아볼로니우스는 기원전 3세기에 “과거에는 지구의 하늘에서 달을 볼 수 없었다.”라고 했으며, 핀란드의 서사시 <칼레왈라>와 남아메리카의 전설은 대홍수의 원인이 달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달은 인류가 지구에 살고 있던 어느 날 하늘에 느닷없이 나타난 것일까?
 
 

   달은 지구의 위성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위성이 위성이기 위한 기준으로 모 행성과의 거리를 꼽으며, 그 거리에는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 한계로 제시되는 것이 로쉬의 한계와 아시모프가 제시한 TOW이다.

로쉬의 한계 : 한 물체가 접근하는 물체의 기조력(tidal force)에 의하여 부서지지 않고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는가 알려주는 값으로 행성과 위성이 같은 밀도를 가질 때 로쉬의 한계는 행성 반지름의 2.446배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1992년 슈메이커-레비9혜성이 목성 로쉬의 한계 이내로 들어간 후 바로 21개의 조각으로 깨져 목성에 연속적으로 충돌한 사건이 있었다.

TOW(Tug of War) : 수학식으로는 (행성의 질량/태양의 질량)÷(태양까지의 거리/행성까지의 거리)2 로 나타내며 위성에 작용하는 모 행성의 중력과 태양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거리를 말한다. 위성이 이 안에 있으면 모 행성의 위성이 될 수 있으나, 이보다 멀어지면 행성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달이 지구의 위성이기 위한 조건은 지구와의 거리가 로쉬의 한계보다는 크며 TOW보다는 작은 값을 갖는 것이다. 지구의 로쉬의 한계는 적도 상공에서 15,600km 정도이고, TOW는 46,400km이다. 하지만, 지구와 달까지의 평균거리는 384,400km로 TOW의 8배 이상에 달한다. 결국, 달은 엄밀히 볼 때 지구의 위성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달의 기원에 대한 가설
 

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1) 분리설
찰스 다윈의 아들 조지 다윈은 1878년 분리설을 주장했다. 조지 다윈은 달이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지구와 달이 한때 같은 용융상태의 점성 있는 자전주기 5시간 반의 구체였으나 태양의 조석작용이 분리를 불러와 달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으며, 이때 떨어져 나간 자리가 태평양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은 1920년 영국 천문학자 헤럴드 제프리스가 반 용융 상태인 지구의 점착성은 운동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분리설을 충족시킬만한 진동은 발생할 수 없음을 밝히면서 무너졌다.
 
2) 동시 기원설
우주먼지들이 모여 행성이 생기는 과정을 거쳐 달과 지구가 동시에 생겼다는 이론이다. 이렇게 응집하여 원시 지구가 생겼고 원시 지구에는 토성과 같은 고리가 있었으며, 이고리는 기체와 작은 운석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고리가 하나의 큰 덩어리로 응집하여 달이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이론은 달의 철 성분이 부족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고, 달이 뭉쳐지기 위한 인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허점이 있다.
 
3) 포획설
태양계 밖에서 형성된 천체가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 위성이 되었다는 가설이다. 지구와 달의 성분이 다른 것과 달의 비중이 지구보다 작은 것을 설명할 수 있지만, 달 만큼 큰 천체가 지구 궤도에 깔끔하게 포획되기란 불가능하고, 설령 포획된다 할지라도 공전궤도가 타원형 궤도를 이루어야 마땅하다고 한다.
 
4) 충돌설
45억 년 전 지구에 화성 크기의 외부 천체가 충돌하였고, 충돌 후 충돌체는 지구에 녹아들었으며 일부는 우주공간으로 흩어져 날아갔다가 그 파편들이 모여서 달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충돌 시 지구 핵 바깥 부분인 맨틀 상부가 달의 구성 성분이 되므로 달의 철 결핍이 설명되고, 지구보다 밀도가 작은 것도 설명된다. 가장 유력한 가설이며 최근 산디아 국립연구소의 킵과 애리조나대학교의 멜로스가 충돌을 재현하는 컴퓨터 모의실험 연구를 통하여 충돌설의 타당성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몇 가지 문제들이 있음에도 현재 과학자들에게 수용되고 있는 학설은 충돌설이며, 지구와 충돌한 천체가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충돌 후 지구 바깥부분 일부가 추슬러져서 달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어쨌거나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는 달
 

서양에서 태양은 주로 숭배대상이고 종교가 되기도 했지만, 달은 ‘늑대인간’, ‘마녀’, ‘흡혈귀’ 등의 이야기에 등장하고, lunatic은 ‘미치광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달을 신성하게 생각하고 달님에게 소원을 비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한가위는 신라의 풍습이 계승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신라 안압지의 본래 이름은 ‘월지(月池)’였으며, 경주에 있는 신라 성(城) 이름은 ‘월성(月城)’이었던 것을 보면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신라 유리왕 때부터 여인들이 베를 짜는 행사가 있었고 이 행사의 이름을 가베라고 하였으며 가베가 후일 '가위'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어찌 되었거나 달은 현재 지구의 위성으로 충실히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다. 달의 진동현상인 ‘칭동’으로 달 모습의 59% 정도를 지구 쪽에 보여주고 있고, 보름에는 태양의 반대편에서 밤새도록 지구 밤하늘을 밝혀주며, 그믐에는 태양과 같은 편에서 지구의 낮 하늘을 지나간다. 달이 없었다면 지구에 과연 생명체가 생겼겠으며,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과학자의 연구에 의해 정설로 인정되는 학설을 토대로 이야기하자면 6,500만 년 전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발생한 직경 약 10km의 운석 충돌로 파충류가 지배하던 중생대가 막을 내리고 포유류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것은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도록 우리 인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런 기막힌 우연은 한 번이 아닌 듯하다. 

약 46억 년 전 막 형성된 지구에 천체 충돌로 달이 탄생하여 바닷물은 출렁이기 시작하였다. 출렁이는 바다에서 생명이 발생하였고, 하루의 길이는 인류가 생존능력을 갖추기 적당한 24시간이 되었다.  지축은 23.5도 기울어져 생물이 살 수 있는 기온을 갖춘 지역를 넓혀 주었다. 달은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달그림자의 여러 모습 (시계방향으로 여인, 토끼, 게, 두꺼비)

 
우리가 사는 지구와 지구가 유지하고 있는 환경은 인류에게 참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하는 기적 같은 일들이 마치 요정가루를 뾰롱뾰롱 뿌려 요술 부린 것처럼 고맙게도 우리를 위해 일어났던 것이다. 밤하늘을 보면서 첨단 과학시대인 지금도 우리가 규명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연현상들은 너무도 많고, 우주는 오묘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이번 한가위에는 맛있는 송편을 먹으며  ‘달에는 토끼도 살고, 거울을 보는 여인도 살며, 게도 살고, 두꺼비도 산다.’는 것을 가족들과 확인해보자.  
   
참고자료
김경렬, 태양계 가족의 늦둥이 ‘달’, 과학과 기술, 2007.7월호
[돌아온 떡밥] 달 착륙, 그 진실은?, 딴지일보, 2009.07.20
[설왕설래] 달 탐사선, 세계일보, 2007.10.25
[프리즘] 머지않은 달 정복, etnews, 2006.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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