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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배하는 자는 인간이 아닌 개미 본문

~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지구를 지배하는 자는 인간이 아닌 개미

대한민국 교육부 2010. 10. 22. 09:39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누구일까? 유전자만 비교한다면 단연코 침팬지이다.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거의 99%를 공유하는 정말 가까운 사촌이다. 그러나 침팬지도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왕이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도 아니고 도시를 건설하는 것도 아니다.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지도 않는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일에 종사하는 이른바 분업제도를 개발한 것도 아니다. 대규모의 전쟁을 일으키거나 대량학살의 만행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며 전쟁에서 납치한 포로들을 노예로 만들어 부려먹지도 않는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이 모든 일들이 개미사회에서는 다 벌어진다. 이처럼 개미는 외모로 보면 물론 우리와 엄청나게 다른 동물이지만, 사회 구조와 하는 짓으로 보면 우리와 놀랄 만큼 비슷한 동물이다.

개미사회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개발한 고도의 분업제도이다. 개미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창설자 헨리 포드가 고안하여 오늘날 세계 모든 자동차 공장들은 물론 대부분의 제조공장들이 채택하고 있는 컨베이어벨트 방식의 분업을 한다. 
 
개미들이 벌이는 사업은 매우 다양하다. 지금도 몇몇 오지에서 수렵채집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사냥을 하기도 하고 동물들의 시체를 수거하거나 온갖 종류의 식물성 음식을 거둬들이기도 한다. 진딧물 등 온갖 곤충들을 포식동물들로부터 보호해주고 그 대가로 단물을 제공받는 낙농개미들도 있고, 식물을 초식곤충들로부터 보호해주고 식물이 제공하는 영양분을 취하는 이른바 보디가드 산업을 하는 개미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인간이 그랬듯이 농사를 지을 줄 알게 된 개미가 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6천만 년 전부터 거대한 지하 버섯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개미들도 있다. 일명 잎꾼개미들은 인류의 농업 역사가 불과 1만 년 정도인데 비하면 엄청난 전통을 지닌 지구 최초의 농사꾼이다. 
 


   인간의 언어보다 경제적인 개미의 화학언어 
 

분업을 하려면 함께 일하는 개미들 간에 언어가 있어야 한다. 개미는 인간 못지않게 정교한 언어를 개발한 동물이다. 인간이 특별히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동물이라면 개미는 후각으로 거의 모든 일을 해결한다. 먹이를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개미를 발견하면 배를 땅에 깐 채 눈높이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개미의 옆모습을 관찰해 보라. 

개미가 혼자서 운반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먹이를 발견하면 나를 수 있는 최대한의 먹이를 입에 물고 배의 끝부분을 땅에 끌며 이른바 냄새길을 그리며 집으로 간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목에서나 아니면 집에 돌아와서 다른 일개미들에게 우선 자기가 가져온 먹이를 시식하게 하면, 먹이의 맛을 보고 자극을 받은 다른 일개미들이 곧바로 냄새길을 따라 먹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개미가 냄새길을 그릴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일종의 페로몬이다. 개미의 화학언어는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음성언어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다. 예를 들어 잎꾼개미의 냄새길 페로몬은 독침샘에서 분비되는데 얼마나 민감한지 1밀리그램만 있으면 지구를 세 바퀴나 돌 만큼 긴 냄새길을 만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공상과학 소설 『개미』에서는 인간들이 개미들의 언어를 터득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과연 인간과 개미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실제로 올 것인가? 다른 많은 공상과학 소설들이 그렇듯이 『개미』가 그리고 있는 세상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일방적이기는 하나 이미 어느 정도의 대화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냄새길을 그리는데 쓰는 페로몬을 추출하여 우리가 인공적으로 길을 만들면 개미들이 우리가 오라는 곳으로 온다. 이제 개미들이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터득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대꾸만 하면 우리는 서로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베짜기·꿀단지·목수개미의 눈물겨운 희생
 

개미의 성공 뒤에는 분업제도와 언어의 발달 외에도 그들의 남다른 희생정신이 있다. 개미는 몸도 작고 힘도 세지 않지만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서로 협동하여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다. 우리 조상들이 힘을 합쳐 그 큰 매머드를 잡을 수 있었던 것처럼 개미들도 협동하기 때문에 자기보다 훨씬 큰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다. 

개미들이 이처럼 협동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중 누군가가 기꺼이 희생하기 때문이다. 열대지방에 사는 거북이개미 사회에는 종종 이마가 넓적하고 평평한 일개미가 태어난다. 그들이 그렇게 태어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굴문을 막기 위함이다. 그 넓적한 이마로 굴문을 막은 채로 자기 동료가 먹이를 물고 돌아와 더듬이로 약속한 암호를 두드리면 비켜 서 주지만 다른 나라의 일개미가 와서 아무리 두드려도 암호가 맞지 않으면 절대로 비켜서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이 대단한 것은 태어나자마자 뚜벅뚜벅 걸어가 굴문을 막은 채로 평생 그 일만 하다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희생정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절대로 하기 힘든 일이다. 


동남아시아와 호주의 열대우림에는 이파리들을 한데 엮어 방을 만들곤 그 안에서 사는 베짜기개미들이 산다.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힘을 합쳐 이파리를 한 방향으로 끌어당기고 고치를 틀기 위해 실크를 분비하는 애벌레를 데려다 마치 베틀을 이용하여 직물을 짜듯 이파리들을 엮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이 과정에서 작업에 동원되는 애벌레들은 장차 자기 몸을 두르기 위해 필요한 실크를 다른 개미들이 살 집을 만드는 데 제공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아동 착취라고 볼 수 있는 이 같은 행동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가장 고귀한 모습이다. 베짜기개미 외에도 평생토록 살아 있는 꿀단지가 되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사는 꿀단지개미, 위험한 적이 나타나면 자신의 몸을 터뜨려 악취를 풍기며 동료들로 하여금 도망갈 시간을 갖게 하는 목수개미 등 개미 사회의 눈물겨운 희생 이야기는 끝도 없이 많다. 

바로 이런 희생 덕택에 개미는 이 세상에서 인간 못지않게 성공한 동물이 되었다. 현대 기계문명 사회의 주인은 말할 나위도 없이 우리 인간이다. 하지만 문명의 세계를 떠나 자연생태계로 들어서면 그곳의 지배자는 작은 곤충들,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 바로 개미이다.

1970년대 중반 독일의 생태학자들이 남미의 아마존 지역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모든 동물들을 거대한 저울에 올려 그 무게를 잰다고 가정하고 표본 추출 방법을 통해 그들의 생물중량을 측정하여 학계에 보고한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개체 수준에서 비교하면 사람의 평균 체중의 1백만 분의 1도 채 안 되는 개미와 흰개미들이 전체 동물중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각각의 개체로 보면 정말 하잘것없는 존재들이지만 워낙 수적으로 성공한 동물들이라 다 모아 놓으면 표범이나 맥 같은 큰 짐승들보다도 훨씬 무겁다는 것이다. 



   전 세계 개미 무게, 인류 전체 무게와 맞먹어
 

현재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곤충은 줄잡아 75만 종 정도이며 그 가운데 개미는 약 1만 종에 달한다. 영국의 어느 곤충학자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 현존하는 총 곤충의 수는 줄잡아 1백경(1018)쯤 된다. 그 중 개미를 전체의 약 1%로만 잡아도 그 수는 무려 1경(1016) 마리나 된다. 일개미 한 마리의 평균 체중을 대략 1~5 밀리그램으로 계산해 보면 전 세계에 분포하는 개미의 무게는 인류집단 전체의 무게와 맞먹는다. 

인류와 맞먹는 생물중량을 가진 그들이지만 워낙 작은 개체들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지구생태계의 구석구석 그들이 파고들지 않은 곳이란 찾기 어렵다. 개미는 비록 사람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몸집을 갖고 있지만 이 지구생태계를 지배하는 데에는 조금도 손색이 없다. 아주 높은 고산지대와 극지방 그리고 물속을 제외하곤 개미가 살고 있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개미는 나무들이 우거진 깊은 숲 속이나 풀 한 포기 보기 힘든 사막에도, 그리고 우리들이 사는 아파트 안이나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다니는 뉴욕과 서울 같은 대도시의 보도 위에도 어김없이 살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만큼이나 성공한 동물도 거의 없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작은 가족단위로 아프리카의 초원을 헤매던 대수롭지 않은 한 종의 영장류였던 인간은 어느덧 온갖 농작물을 기르기 위해 일구어 놓은 크고 작은 농경지,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건물,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거미줄 같은 도로망 등을 건설하여 주변 환경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며 적응해가는 참으로 놀라운 동물이 되었다. 수적으로도 기가 막힐 정도로 번성하여 언제부터인가 번식을 자제해야 하는 동물이 되었다. 

이렇듯 현대 기계문명 사회의 주인은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저 광활한 자연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작고 보잘것없는 곤충들, 그 중에서도 특히 개미들이다.  


글|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이대 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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