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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세계수준의 과학관, 문제점은?

대한민국 교육부 2010. 12. 17. 07:00


과학관 하면 저는 언제나 과거의 서울과학관이 떠오릅니다. 대전 중앙과학관과 과천과학관이 새로 생겼고 천체투영관 같은 첨단 전시물도 생겼지만, 재개관하기 전 서울과학관의 모습은 저의 학창시절 견학 갔을 때 모습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에 붙어 있던 과학자들의 초상은 묘하게도 학창시절을 추억하게 해주더군요. 과학관이 추억의 장소라니! 퍽 안 어울리는 조합이지요? 서울과학관은 지금 살짝 자리를 옮겨 재개관(2010년 11월 17일)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변했을지 기대가 되네요.
 
 


 과학관의 역사
 

박물관은 기원전 300년 이집트에서 여신 뮤즈에게 제례를 지내던 뮤제이온(Mouseion)이 기원이라고 합니다. 뮤지엄(Museum)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바로 이 뮤제이온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중세 문예부흥 뒤에는 부호나 군주, 수장가가 수집한 각종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캐비닛’과 ‘갤러리’라는 전시가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683년 영국에서 에쉬몰(Elias Ashmole)의 자연사 수집물과 트라데산트(John Tradescant)의 수집품이 옥스퍼드 대학에 기증되어 공공 박물관이 형성됩니다. 이때 이곳의 소장품을 일컫기 위해 뮤지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 박물관이 현재 옥스퍼드 대학 과학사 박물관이 된 것입니다. 이 무렵 주목할 만한 과학사 박물관은 갈릴레오 망원경과 과학기구를 전시한 ‘이탈리아 플로렌스 과학사 박물관’ 그리고 ‘화란의 과학사 박물관’과 ‘벨기에의 과학사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1845년 영국의회는 박물관령을 제정하면서 박물관의 교육기능을 공식적으로 표명합니다. 이때까지 대부분 종합 박물관의 성격이었으나 1800년도를 전후해서 파리의 ‘국립예술 교역품 보관소’나 ‘프랑스 국립 자연사 박물관’ 등 전문박물관이 등장합니다.

1846년 미국에서는 그 유명한 스미소니언 연구소가 설립됩니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2>의 배경무대로 나오는 바로 그 스미소니언박물관이지요.
 

영화<박물관이 살아있다2> 中 스미소니언전투 장면

 
1851년. 런던에서 대 박람회가 열렸고, 대 박람회는 박물관과 과학관의 커다란 전환점이 됩니다. 수정궁 전시(Crystal Palace Exhibition)라고 불리는 제1회 국제 산업전시회는 140일간 6,068,986명이라는 엄청난 관람객이 다녀갔으며 약 18만 6천 파운드의 흑자를 내고 성공적으로 끝이 납니다. 이 자금과 전시품으로 나중에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된 남 켄싱턴 박물관이 건립됩니다. 이어서 전문 과학박물관이 분리되고 이것이 자연사 박물관과는 대별되는 ‘탐구관식 과학관’의 시초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과학관
 

우리나라의 과학관은 1902년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의 '어원(御苑)박물관'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박물관의 시초이면서 과학관의 시초가 바로 이 ‘어원박물관(이왕가 박물관)’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전란만 없었다면 박물관과 과학관이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동·발전하였겠지요.
 

지금은 빈터인 창경궁 자경전터에 있던 어원박물관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의 첫 박물관에 관련된 활동은 1883년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 유길준 등 조선보빙사 일행이 미국 ‘보스턴박람회’에 비공식적으로 참가한 것입니다. 비공식이었지만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몇 점을 박람회에 출품했었습니다.
 
 


 과학관의 발달과 분화
 

역사적 맥락으로 살펴보면 박물관에서 ‘자연사 전시물’과 ‘과학적 산업기기’가 분리 전시된 전문 박물관 형태가 과학관의 효시이며, 과학관이 자연사관과 탐구관으로 나뉜 것은 산업혁명 이후 기기·기계장치가 발전하면서라고(구체적으로는 1851년 ‘대 박람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Crystal Palace Exhibition


이러한 과학관은 과학연구의 산실이 되었고, 과학이라는 학문이 분화하도록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1850년 이후 그 기능이 쇠퇴하고 연구의 기능을 대학이 가져가게 됩니다.
애석하게도 과학사적으로 중요했던 그 시기에 우리나라는 자연사박물관 하나가 없었으며, 현재도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없습니다.
 



 과학관 현황
 

역사적으로는 튼튼한 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의 과천 과학관은 세계적 규모의 과학관입니다. 그러면 만족해야 할까요? 저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과학관에 가면 왜 2%보다는 더 많은 부족함을 느끼는 걸까요? 세계적 규모의 과학관까지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나라는 현재 72개의 과학관이 운영 중이며 그 중 국립이 8곳, 공립이 43곳, 사립이 21곳입니다. 또, 2012년까지 지방 ‘테마 과학관’을 120개소 건립·운영할 계획이며, 국립대구과학관과 국립광주과학관이 2011년 10월 개관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대구 과학관에 이어 부산과학관도 추진될 예정입니다.
외국의 과학관 현황과 비교해보겠습니다.
 
 
확연하게 우리나라의 과학관 수는 모자랍니다. 하지만, 제가 주목하는 것은 숫자가 아닙니다. 국민소득이나 국민의 의식, 정서를 무시하고 외국과 숫자만 비교해서 마구 건물만 짓는 것은 반갑지 않습니다. 궁금한 것은 ‘왜 우리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세계 최고 규모의 과학관에 가서 첨단의 전시물을 보아도 뭔가 빠진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학관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2006년과 2009년 과학관에 관련된 정책연구를 주관하신 박승재 박사님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어렵게 약속을 잡아 박사님의 연구실을 찾은 날은 날씨가 어찌나 춥던지, 일산에서 평촌의 박사님 연구실까지 거리가 멀고도 멀게 느껴졌습니다.

과학관에 대하여 말문을 열자 박사님은 열정적으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제가 질문을 채 여쭙기도 전에 과학관과 과학교육에 대하여 오랜 세월 경험으로 체득하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쉼 없이 이어졌습니다.
  

박승재(PAK, Sung Jae) 서울대 물리교육학과 명예교수

 
박사님께서는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보내주신 질문을 보며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과 정책연구를 하면서 바라보는 관점이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것이 이미 제안 된 것이지만 ‘이상론’이 있어도 사회에 이상이 바로 실현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관도 점점 변화하고 있습니다. 실현이 될 때엔 기대치가 더 높아져서 만족할 수 없더라도 실현이 되긴 합니다. 그러한 과정 중에 제안의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 정책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어느 한 부분만 떼어서 반영되면 오히려 비정상이 되는 과정도 거치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못마땅해도 한 발짝씩 가는 것입니다.라는 의미 있는 말씀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Q1 
박사님. 우리나라에는 국립의 자연사 박물관이 없는데 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립 자연사 박물관 건립 희망"
자연사박물관은 생물, 지질, 지구과학 학계의 숙원사업입니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은 꼭 만들어져야만 하고, 아마도 곧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립과학관이 대전, 과천, 광주, 달성, 기장에 들어서면 이론적으로 강원도에도 국립과학관이 들어서야 할 텐데 인구밀도로 볼 때 강원도의 국립과학관 설립 타당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니 개인적인 생각으로 강원도의 DMZ에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세우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태보존이 좋은 DMZ를 활용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국립자연사 박물관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각 지역에 있는 국립과학관이 그 지역의 지질, 기후, 생태, 자연에 대한 자연사 박물관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각 국립과학관은 특색과 주제를 달리해서 각기 국제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립과천과학관 자연사관의 에드몬토사우르스 골격 ⓒ이인옥



Q2 
요즘 과학관의 전시물, 특히 멀티미디어 관련 전시물은 3D를 넘어서 5D를 지향하며 최첨단을 달립니다. 그런데 실상 과학관에 가서 전시물을 보면 뭔가 허전하고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 듭니다. 콘텐츠 때문이 아닌가 짐작합니다. 전시 설치 업체에 일괄적으로 콘텐츠까지 공급하기를 요구하기보다는, 전국적으로 과학관 수도 늘어났으니 과학전시 콘텐츠, 영상물,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과학관 산하기관’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박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전시물은 국립과학관이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
과학관이 발달하려면 외형만 갖추어서는 안 됩니다. 전문 연구기관이 있어야 하고,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고급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과학관은 특성상 두 개의 연구소를 세워야 합니다. 대학이 중심이 되어 과학관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연구기관과, 과학 전시물을 연구하는 전시개발센터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국립과학관이 중심이 되어 전시 콘텐츠를 연구 개발하여 전국 과학관에 보급하는 역할을 해야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 이전 국립과학관은 과학기술부 소속이고 16개 시·도 학생과학관은 교육부 산하로 서로 관련이 없었습니다. 이젠 학생을 관람 대상으로 하는 역할은 구 학생과학관이 하고 국립과학관은 학생 뿐 아니라 국민의 77.6%(KOSIS 2010추계인구)인 청장년층과 노년층까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하며, 국립의 과학관으로서 역할과 면모를 갖추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Q3 
과학관이 체험전시를 조금은 과도하게 지향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관람자들은 키오스크 따위는 체험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기대치도 높아져서 과학관의 체험전시물이 썩 만족스럽지만은 않습니다. 관람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들의 관람 태도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부모 관람자들에게서부터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요. 충분히 만지고 체험하는 것은 개인의 소유물일 때 가능하다고 보이며, 공공기물의 성질과는 상반된다고 생각되는데 ‘Hands-on’ 전시가 꼭 지향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전시물의 과도한 체험지향 문제"
하하하. 사실 체험전시의 문제는 과학교육의 세월과 연관 지어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가 40년가량 과학교육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 현대적인 과학문화가 저변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대과학은 학교에서 배우는 하나의 과목이지 생활 속에 녹아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40년 숙제가 이 ‘과학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학교 바깥에, 생활에 과학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을 교과서와 학교 밖으로 끌고 나와 ‘생활 속에서의 흥미로운 과학 활동’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과학관 활동을 연구하게 되었고, ‘과학 싹 잔치’ 등의 과학행사를 시도했습니다. 과학 체험학습이란 것은 그런 의미와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매력이 있어서 외형과 형식은 퍼졌으나 내면적으로 발전되질 못했습니다. 과학 활동을 하고 동아리를 하면서 문제점을 찾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고, 창의적으로 완성·발전시키는 단계가 되었어야 했는데 아직도 미흡합니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이인옥

 
또,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 과학기술발전과 산업발전이라는 국가적 요청이 생기고, 대학 이공계 기피문제, 초등 과학교육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과학교육 필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과학문화재단이 설립되고, 과학관이 정신없이 서고 있습니다. 갑자기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는 예산이나 인력이 준비가 안 된 단계에서 과학관이 저렇게 많이 설 처지가 아닌데 서고 있습니다. 과학 고등학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볼 때 필요성에 의해서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서 메워야 합니다. 잘못했다는 걸 꼬집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과학관은 사실 초창기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산이나 운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젠 외국의 모습을 베끼는 것에서 벗어나서 내실을 기해야 합니다. 규모만 세계 최고로 해놓고, 학교나 동사무소 과학교실이나 국립 과학관이나 모두 비슷해서 흥미를 잃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시공회사나 과학관이 인식해야만 할 때가 온 겁니다.


Q4 
과학은 현재 ‘기술’과 연결이 되어 있지만, 과학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리스의 철학자까지 닿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과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한 가지 방법이며, 우주의 원리를 깨닫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과학관이 학생들의 과학학습을 위한 공간이 되기보다는 급변하는 과학기술이 요구하는 철학적인 선택을 대중에게 널리 알려 깊게 생각하도록 하는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과학철학의 보편화"
과학의 본질(nature of science), 과학의 방법은 완전한가, 과학은 진리인가 하는 문제는 참 어렵습니다. ‘과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과학과 종교의 문제는 무엇인가?’ 등의 문제는 과학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는 사회와 문화의 문제이지만, 과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 보는 역할은 국립 과학관이 중심이 되어 담당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관을 중심으로 언론이나 학계와 연계하여 토론도 해야 하며, 실체의 전시물과 영상을 보여주고 관람자들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한 가장 근접한 모형으로 파리의 ‘라빌레뜨’가 생각납니다.
 

서울과학관은 재개관을 하고 <동물의신비-플라스티네이션> 특별전을 한다

 
박사님의 말씀에서 과학관을 바라보는 박사님의 관점은 오랜 시간을 내포하고 있으며, 방대한 정책, 또 많은 단체와 조직이 어울리는 범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박사님의 사고 스케일에서 연륜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렇게 먼저 걸어가신 분(先生님)의 경험과 연륜을 존중하는 우리의 미풍양속이 계속 이어져 ‘아름답게 효율적으로 발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박사님께 맛있는 점심까지 대접을 받았다고 하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하하! 오랜 세월 과학교육에 몸담고 계신 박사님의 말씀을 계기로 과학관뿐 아니라 삶과 사회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과학관 개선방향 
 

1800년대처럼 과학관이 연구의 기능으로 과학학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시대는 이미 아닙니다. 또한, 과학관이 학생들 과학학습의 장이 되기에는 너무도 시대가 빨리 변하고, 전시 형태로 학습을 주도하기에도 제약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와 미래의 과학관이 지녀야 할 바람직한 가치와 기능은 무엇일까요?
 
①첨단 과학 연구의 현재를 알림
일선 연구소에서는 현재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일반인에게 알려주는 것은 좋은 전시 아이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과학축전에 다녀왔습니다. 여러 연구소에서 전시 부스를 열고 화려한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시물은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이지 대전 엑스포 과학 공원 내 첨단전시관에 있는 정부출연연구소 전시관과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요즈음 엑스포 과학 공원의 첨단전시관에서 관람객을 구경하기란 지리산 골짜기에서 고래 구경하기만큼 힘든 일입니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호주의 국가 과학 산업 연구처 부설 탐구실(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y Research Organization Discovery)은 유리창을 통해 실제 과학자들의 활동 모습을 일반인에게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연구실 아래는 일반인이 과학자들의 활동 상황을 알 수 있고 연구 결과를 관람하고 탐구할 수 있도록 설명서, 영상, 자료 등을 전시한 조그마한 '탐구실'을 마련해 놓고 관람객을 맞고 있습니다.
 
 

호주 국립 과학산업연구처 ⓒ박승재


첨단 과학 연구의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한 새로운 전시 기법입니다. 이러한 목적과 기능은 우리 과학관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모델로 보입니다.
 
②수장고를 전시실로
호주의 동력박물관(Power House Museum)에서는 박물관의 전시품 외의 소장품은 Castle Hill 보관 창고에 보관하고 일부를 부설 탐구관(Discovery Center)에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벽면을 이용하거나 장이나 서랍식으로 보관된 것을 관람자가 꺼내보도록 한 전시형태입니다. 
 
 

동력박물관 부설 Discovery Center ⓒ박승재


참 좋은 기능 아닌가요? 교육의 기능을 과학관이 가져야 한다면, 커다란 첨단전시물보다는 소장품 모음을 도서관의 책 찾아보듯 찾아볼 정도는 가능해야 학습이 되는 것 아닐까요?

과학관의 수장고에는 오락기 달린 8비트 컴퓨터나 흑백 모니터의 휴대용 오락기도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모아 정리하면 가치가 생깁니다. 자연사관은 말할 것도 없고 탐구관의 수장고도 체계적인 관리와 자동화된 관리시스템을 갖추어 관리되어야 합니다. 최첨단 전시물, ‘3년 주기 전시물 교체’ 운영방식이나 잘못 기획된 전시물에 예산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예산을 전시형 수장고 설치에 쓰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입니다.
 
③학생이 아닌 전 국민의 과학교육을 위해
1845년 영국의회는 박물관령을 제정하면서 박물관의 교육기능을 공식적으로 표명합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박물관이나 과학관은 분명 대중과 접해있으며, 대중에게 교육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과학관의 교육역할이란 것이 학생들의 과학학습이어야 하는 것인가 묻고 싶습니다. 

현재 우리에게 과학은 많은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변이 식품, 줄기세포, 나노물질, 방사능, 우주개발 등 수없이 많은 선택을 인류는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현재 그 누구도 어떤 선택이 올바른 것이라고 속 시원하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맞춰 올바른 철학적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과학관은 이러한 것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하는 창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립중앙과학관 수장고에 있는 반달곰 박제 ⓒ이인옥


④과학관 자체의 존재 가치를 높여야
자연사박물관이나 기초과학관은 박물관처럼 존재 자체가 유익한 것입니다. 과학관이 백화점 전시를 모방할 수는 있지만, 본질이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일 수는 없습니다. 재미있는 전시, 첨단전시를 추구하기에는 과학관으로서 한계가 있습니다. 또, 지향하는 뚜렷한 목표도 없이 물리, 생물, 화학, 지구과학, 지질, 생태까지 골고루 구색을 갖추려는 발상에 의해 과학관의 역할과 의의가 오히려 흔들리고 있습니다. 기초과학에서 물리, 전기, 전자, 유체 등의 장치 실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과학관은 기초과학분야에서 거대하거나 고가인 장치실험의 필요요구(진공 장치, 규모가 큰 실험, 실험장치가 비싼 것)를 채워주는 역할을 기본기능으로 내세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식이 되어도 괜찮은 과학관만의 정통과 전통을 만들어야 합니다.
 

의미있는 전시물은 과학관 존재를 의미있게 한다. 자료출처: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과학관의 현실
 

과학관 관람 후 우리에게 아쉬움을 주는 원인들은 과학관이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일 큰 이유는 예산 문제와 얽혀 있습니다. 돈 이야기는 뛰어넘으려 해도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과학관의 현실은 조금 심각합니다. 미국의 뉴욕자연사 박물관의 직원은 약 1,500명, 영국 국립 자연사 박물관이 800명, 일본 미래과학관이 400명입니다. 우리의 국립 과천과학관 직원 수는 80명이 안 됩니다. 이런 형편에 광주와 대구, 부산에 국립과학관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
 
두 번째는 전시물 운용의 문제입니다. 모든 것은 예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겠지만, 예산도 없지, 멋지게 짓기는 해야겠지. 운영도 해야겠지. 알맹이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설치 업자가 책임지고 공급하는 조건에 계약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적으로 알찬 내용을 갖춘 콘텐츠를 만드는 전문 콘텐츠 제공자가 국립과학관 산하에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과학관의 잘못된 전시 목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과학관이 교육의 기능을 가진다 해도 작은 테마 과학관도 아닌 국립과학관의 주요 기능이 학생의 과학교육을 위해 운영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전시물의 이해도 수준을 중학교 2학년을 마친 사람이면 이해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과 관람대상이 중학교 2학년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낙도에도 인터넷이 되는 세상에 무슨 과학관 전시에서 과학교육이란 말인가요?
 
네 번째. Hands-on! 공공시설물로 뭘 얼마만큼 hands-on을 추구하겠다는 걸까요? 그러기 전에 관람예절부터 교육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변의 의견을 물어본 결과 학생과 학부모들은 체험전시물보다는 자세하고 재미있는 해설을 원했습니다
 
 국립중앙과학관과 엑스포과학공원을 운행하는 자기부상열차 ⓒ이인옥

다섯 번째. 우리는 수익을 내는 최고의 기업이 만든 최첨단의 전시물도 3년 이상 관심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엑스포 과학 공원에서 이미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첨단 전시물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과학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학관이 스스로 고민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과학관은
 

국립 과천 과학관은  24만3970㎡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입니다.  이 규모의 과학관 전시를 하루에 다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제는 그 규모 정도면 뛰어다니면서 개수만 세어도 하루에 다 보긴 어려워야 합니다. 지금의 예산에 지금의 인원으로 운영하라고 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야만 당연했습니다.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이 바라는 과학관은 커다란 규모에 번쩍번쩍한 과학관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곳 가까이 있으며, 소규모라 하더라도 과학에 대한 것은 과학관끼리의 네트워크에 의해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과학전문 도서관과 함께 있었으면 합니다.
지역 도서관 찾듯 쉽게 쉽게 찾아가고 과학관 뜰에서 쉴 수도 있고 찻집도 있는 그런 과학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필요한 책을 찾듯, 내가 알고 싶은 자료를 수장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과학관.
국립과학관은 국립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하고,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과학관에 가면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과학기술의 문제를 고민해보게끔 하고, 나아가서 사회 구성원으로 미력하나마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필요한 힌트를 주는 그러한 과학관이면 좋겠습니다.
 
과학관은 단지 학생들의 관람활동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과학을 너머 국민의 여론 형성, 국민의 여가활용, 관광자원으로까지 연결되는 소중한 국가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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