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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서민문화 ■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조선 사회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신분제가 흔들리고, 서민들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양반들의 것으로만 생각되던 문화를 서민들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조선 후기 서민문화가 발달하게 된 이유와 서민이 사랑했던 즐길 거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까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부 세력의 침입을 겪으며 조선 조정의 살림은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땅은 황폐해지고, 세금이 잘 걷히지 않으면서 나라를 제대로 운영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정은 나라의 재정을 든든히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돈을 받고 관리직을 팔거나, 천민이 양민이 될 수 있는 면천첩을 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분제도를 통해 양반 중심 사회를 굳건히 했던 조선의 조정은 스스..
임금의 밥상으로 본 백성의 생활 ■ 공납과 진상세금은 나라의 운영을 위해 그 나라의 국민이 내는 돈입니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도로를 개설하기도 하고, 복지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한 나라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세금인데요.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도 세금이 있었을까요? 있었다면 세금은 어떻게 냈을까요? 조선시대의 세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자신이 가진 땅의 넓이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 성을 짓는 일 등을 하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각 지방의 특산물을 내는 것인데요. 조선시대는 백성 중 가장 많은 수가 농민이었고, 산업 중에서도 농업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땅에 대한 세금을 정하는 것을 두고 임금과 신하들이 많이 고민하는 등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 ■ 서얼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양반인 아버지를 두었음에도 아버지라고조차 부르지 못했던 사람들이 바로 서얼입니다. 서얼은 서자와 얼자가 합해진 말입니다. 적자가 정식으로 결혼한 양반의 아버지와 양반인 첫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가리키는 것에 반해 서자는 양반의 아버지와 양인 이상의 첩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며 얼자는 양반의 아버지와 천민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뜻합니다. ▲홍길동전(출처: 에듀넷) 여기 적자와 서얼간의 차별이 생긴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성계는 한씨와 강씨라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한씨는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으로 이성계와의 사이에 많은 자녀를 두고 이성계가 권력을 잡기까지 많..
상민들의 의식주 ■ 조선 시대의 평민조선 시대 상민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계층이었습니다. 신분과 경제적인 제약 때문에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소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럼 조선 시대 상민의 의식주 생활 문화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생활모습을 엿보도록 하지요. 평민이란 왕족이나 귀족의 지배를 받던 일반 계층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배를 받는 계층이지만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경제권 등을 가지고 있어 천민과는 구별됩니다. ▲조선시대 상민의 삶(출처: 에듀넷) 조선시대의 신분은 크게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양인이 양반, 중인, 상민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평민은 양인 중에서 상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평민과 상민이란 말을 구별 없이 쓰기도 하는데 조선 시대의 경우에는 두 말이 서로..
조선을 개혁하려한 실학 ■ 사농공상의 나라, 조선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중국, 일본,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어왔던 백성들의 신분과 직업을 나눈 것입니다. 사는 선비, 즉 학자이며 농은 농사를 짓는 사람, 공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 상은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원래 중국에서 시작된 이 말은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농공상 모두 같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사농공상은 서로 다른 신분으로 변하여 사용되었는데, 조선의 신분제도에 따르면 사농공상 모두 양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선비인 양반이 사농공상의 제일 위였고, 그 뒤를 농과 공이 따랐습니다. 상을 뜻하는 상인은 실제로 농사를 짓거나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돈을 가지고 이익을 얻는 사람이라 하여 많은 무시를 당했습니다. ▲..
대학생 시절 농촌봉사 활동을 가면 꼭 먹는 새참의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새참 먹을 때 작은 상을 놓고 먹었는데 어찌나 그 상이 귀엽고 요긴하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요즘 식탁을 놓고 밥을 먹었던 때가 오래전 이야기는 아닌듯싶은데, 과연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떤 상을 놓고 밥을 먹었을까요?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특별전으로 '조선의 소반'을 소개하고 있다고 해서 제가 직접 다녀왔습니다. 국립전주박물관에서는 조선 시대 소반의 다양한 모습과 우리 전통문화 속에서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특별전을 마련하였습니다. 입장하면서 별 기대를 하고 가지는 않았는데, 특별전을 관람해 보니 '조선 시대에 이렇게 많은 소반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반'은 운반의 기능과 식탁의 기능을 가진 조선 시대 ..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지금의 위치에 우뚝 서게 된 기반은 바로 '교육의 힘'이라고 합니다. 요즘이야 책이 흔하고 교육 수단도 다양해졌지만, 옛날에는 교과서가 거의 유일한 학습 자료였고 '교육'을 이끌었던 것이 '교과서'인 만큼 교과서의 역사에서 우리 교육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선조가 서당에서 배우던 서적에서부터 개화기부터 일제 강점기, 광복을 거쳐 현재의 교과서까지 전시되어있는 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는데요, 다른 나라 교과서와 북한의 교과서까지 이곳에 다 모여있었답니다. 교과서와 함께하는 역사 여행, 함께 떠나볼까요? * 교과서의 변천사로 살펴보는 교육의 역사 *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교과서 어제와 오늘'이라는 주제 아래 개화기 이전부터 7차 교육과정까지의 교과서 변..
* 시골 삼 남매 서울 가다. 조간신문을 보던 아들이 호들갑 떨며 저를 재촉했습니다. 고려대 박물관에서 금세기 마지막으로 동궐도를 전시하니 가자고 말입니다. 고려대와 동아대 박물관에 각기 소장하고 있던 걸 교류전으로 한곳에 모았는데, 훼손의 우려가 있어 금세기에는 마지막이 될 거라고 합니다. 동궐도는 조선의 5대 궁궐 -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 중 정궁(正宮)인 경복궁 오른쪽에 있는 창경궁과 창덕궁을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왕조의 흥망성쇠와 근대사의 질곡 속에 궁궐도 본래의 위용을 상당 부분 잃고 말았는데, 동궐도엔 원래의 모습과 배치가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답니다. 작년에 40년 된 시골 할머니 댁이 누전으로 전소하고, 아빠의 설계로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