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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대마도에서 만난 우리 문화

대한민국 교육부 2014. 3. 28. 11:00

조선통신사의 영원한 역사적 의의
대마도에서 만난 우리 문화
 49.5km I 73km I 138km I 한국 역사 유적지 I 조선통신사 I 세종 11년(1429년) I 고려문

지난 2월 20~22일, 새 학기 시작을 앞두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우리는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고등학생으로서 학교생활 충실히 하느라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일을 여행 계획에 넣기로 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도 뵈어야 하고, 이모가 낳은 예쁜 아기도 보기 위해서 부산을 포함하고, 부산에서 가까운 대마도(쓰시마)를 체험하기로 했습니다.   

 

새벽 2시에 서울 출발, 7시에 부산 도착, 할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 식사, 9시에 할머니를 모시고 국제여객선 부두에서 대마도행 배를 탔습니다. 대마도(쓰시마)에서는 1박 2일 머물렀는데, 대마도 북쪽의 히타카츠 항에서 일본 문화와 자연 탐사로 첫날을 보내고, 다음 날, 남동쪽의 이즈하라 항으로 이동하여 우리 역사 유적지 중심으로 탐사한 후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할머니 댁에서 쉬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계획은 「대마도에서 만난 우리 역사(문사철, 한림출판사)」 를 읽고, 대마도에 있는 우리 역사 유적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하며 과거의 역사유적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도 우리 문화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대마도에서 본 우리 역사와 문화(삶의 양식) 흔을 소개하겠습니다.

 

대마도는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더 가까운 섬입니다.

대마도우리나라의 부산에서 바닷길로 49.5km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가장 가까운 섬까지도 73km이며 큰 도시인 후쿠오카까지는 138km에 이릅니다. 일기예보를 봤더니 매일 매일의 맑고 흐리고 비 오는 것이 부산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방문했던 2월 20~21일은 따뜻한 봄날 같아 자전거 타고 또는 걸어서 오랜 시간을 다녀도 적당했습니다. 길가에는 매화, 수선화 같은 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대마도에는 한국 역사 유적지가 많습니다.

「대마도에서 만난 우리 역사(문사철, 한림출판사)」에는 대마도에 있는 우리 조상들의 역사 유적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제가 가본 곳은 대마도 남동쪽에 있는 '이즈하라' 항입니다. 일본으로 가는 조선통신사가 여기 이즈하라 항에 들렀다가 일본 정부가 있는 곳으로 갔다고 하는데, 그와 관련된 유적이 많았습니다. '통신사'란 이름으로 대마도를 처음 방문한 것은 조선 세종 11년(1429년)이고, 위의 책에서 '통신사'란 서로 믿음을 주고받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고려문'입니다. 조선통신사가 들어온 문으로, 여기서 대마도 사람들이 조선통신사를 맞이했습니다.

'조선통신사 비'입니다. 그 옆의 검은 돌에 국한문 혼용으로 된 설명이 있는데, "조선 후기의 통신사는 선조 40년(1607)부터 순조 11년(1802) 사이에 12회 파견되었다. 이들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선린우호를 위한 국가외교의 사절이며 아울러 일대 문화 사절이기도 하였다. 때로 정사를 비롯한 500명에 이르는 사행은 그 행렬이 장엄하기 이를 데 없었고,~ 이 통신사의 유형무형의 행적은 지금도 일본 각지에 역력히 남아 있어, ~ 오늘 날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사회 형성에 즈음하여, 조선통신사의 영원한 역사적 의의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 라고 새겨놓고 있습니다. 

곳곳에 다음과 같이 쓰인 돌이 새워져 있었는데, 조선통신사가 도착할 때 대마도 정부 측에서 나가서 맞이하던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길에 덕혜옹주 결혼기념비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조선 시대 마지막 황제인 고종의 딸, 덕혜옹주가 대마도 군주의 아들과 결혼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입니다. 대마도 사람들은 조선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군주 가문과 조선의 황가가 사돈이 된 것이 자랑스러워서 기념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다음은 '세이잔지'라고 하는데, 조선통신사가 대마도에 머무는 동안 지냈던 숙소입니다.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서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인데, 지금도 여전히 여행자의 숙소인 유스호스텔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작은 돌이 깔린 일본식 정원의 중앙에는 조선 통신사 중 한 분인 김성일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고, 시(詩) 한 수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조선통신사, 김성일 시비 앞면조선통신사 김성일 시비 뒷면의 시

이즈하라 도심(시가지)에서 항구의 여객선 부두로 가는 길인데 운치가 있었습니다. 흐르는 물이 아주 맑아서 걷는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각 가정과 가게에서 하수도가 흘러나오는 길일 것 같은데, 물이 아주 맑은 것이 신기했습니다. 뭔가 비결이 있을 것 같아 집에 가면 자료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선통신사가 도착하고 맞이하는 모습을 도로 가에 있는 큰 건물에 벽화로 그려 놓았는데, 그림 속에 2011.8.11이라고 쓰인 것으로 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관광객을 위해 그려 놓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4년 2월, 대마도 문화에는 한국의 흔적이 너무 많습니다.

경제적 영향 - 한국 관광객이 대마도의 소득원

부산의 국제여객선 부두에서 대마도 가는 배를 타며 한국인 승객이 많은 것에 놀랐습니다. 정원이 500명 가까이 되는 배에는 한국인 아닌 사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대마도 북동쪽에 위치한 히타카츠 항까지 1시간 10분 항해 동안 손님들을 위해 TV가 틀어져 있었는데, 그 다음 날 새벽 소치 동계 올림픽에 출전하는 김연아 선수의 연습 장면이 계속 나왔고, 승객들은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부산과 대마도를 운항하는 국제여객선은 매일 오전과 오후에 있고, 두 개의 선박회사가 영업하니 배의 크기가 같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 1,000명 이상이 매일 대마도를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전 9시경에 배를 타고 가서 오후 4시 30분경에 다시 돌아오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 가족처럼 하루를 지내고 옵니다. 대마도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관광입니다. 자전거 하이킹, 자동차 렌트 또는 택시이용, 식사, 온천욕, 쇼핑, 숙박 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는 여행경비가 곧 대마도 사람들의 수입 증가에 큰 영향을 끼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도 대마도는 일본 본토보다 더 가까운 우리나라에 도움 구하는 일이 많았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대마도 사람 중에는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아 우리나라와 일본정부가 교류하게 되면 대마도에서 통역관이 차출되어 본토에 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가 사이가 좋으면 조선통신사도 많이 지나가고 무역량도 많아 수입이 많아지고 우리나라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을 수도 있는 등 유익했기 때문에, 대마도 사람들은 한국과 일본이 사이 좋기를 원했고, 때로는 일본어와 한국어로 된 두 개의 문서를 서로 다르게 작성하여 화해를 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삶의 방식이 적극적으로 변화

한국관광객은 대마도 사람의 생활태도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산지가 대부분이어서 농사할 땅이 부족한 대마도 주민이 수입을 얻기 위해서는 바다로 나가는 일이 대부분일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국 관광객을 맞이하기 시작하면서 산업이 상업 등 서비스업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시가지의 여기저기에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있는데 주택이 아닌 가게였습니다. 택시기사들이 손님(우리)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가는 곳을 따라오며 열심히 설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이색적이었습니다. 

 

문화 - 한국어 배우는 대마도 사람들, 한국어로 안내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니 대마도 사람 중에 돈을 벌려면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상점의 간판이나 식당의 메뉴, 호텔 객실의 안내 등 모두에 한국어 안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어를 하지 않아도 한국어로 많은 부분의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력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답니다.

 

여행의 교육적 효과

한일관계와 대마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여행입니다.

우리 역사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본인 중에는 대마도 사람들이 많습니다. 조선 초기 대마도를 정벌한 이종무 장군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날씨를 알기 위해 일기 예보를 봤을 때 하루하루가 부산 날씨와 같았습니다. 일본 본토보다도 우리나라에 더 가까운 섬입니다. 또 대마도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해 왔다고 하니 더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오늘날과 같이 대마도를 방문하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한국인인 추세가 계속될 때, 앞으로 우리가 대마도 문화에 미칠 영향은 지금보다 더 클 것입니다. 경제적 수입원은 물론이고, 그에 따라 한국어, 한국의 생활양식이 영향을 미쳐 한국문화가 대마도에 심어질 것으로 예측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대마도에 빨리 심어져야 할 것이 출입국관리 사무소의 통과 속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배가 대마도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40분인데, 그때부터 입국하기 위해서 줄을 섰습니다. 추운 곳에서 바람맞으며 바닷가에서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렸습니다. 1시간이 훨씬 넘어서야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곳까지 왔는데, 지문을 찍고 나서야 통과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답답하셨던 엄마가 "관광객 모두 대마도 수입원인데, 입국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주면 지갑을 열 시간이 더 있을 텐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매년 8월 초 대마도에서는 아리랑 축제가 열리는데,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시민 500명 정도가 참여하는 '조선통신사 행렬 제현'이라고 합니다. 한국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기 위해 대마도 측에서 만든 행사입니다. 우리 민족의 자취가 있는 대마도, 여행하는 동안 우리나라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역사 흔적이 보일 때마다 반가웠습니다.

 

경치도 우리나라 바닷가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집들이 늘어선 마을은 소인국에 온 것처럼 다정했는데 우리나라 6~70년대 배경의 드라마 촬영장을 보는 것 같았고, 음식마저도 일본 고유 음식이라기보다는 우리 입맛에 가까웠습니다. 대마도에서 한국 역사는 뺄 수 없는 요소이며,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새 학기 시작 전 쉼과 여유 있는 시간이 주는 효과

여행 시기를 학기 시작 전으로 한 이유는 머리를 식히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겨울 방학이 시작할 때 이런 시간을 가졌다면 나름대로 휴식의 의미는 있겠지만 새 학기의 생동감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학기 시작 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조건 쉬는 시간, 재충전의 시간이었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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