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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근친혼, 노비안검법, 과거제도

대한민국 교육부 2015. 7. 9. 11:41


고려의 근친혼, 

노비안검법, 과거제도



■ 흔들리는 왕권

역사를 보면 고려의 왕들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 왕권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왕권을 지키려한 배경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방법으로 왕권을 강화했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먼저 왕건의 왕권을 위협했던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고려는 후삼국으로 나누어진 민족을 통합하면서 통일을 이뤄냈습니다. 왕건은 후삼국 시대 각 지방의 호족들이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 할 때 그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펴 호족들의 지지를 얻었고, 이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데 있어 큰 힘이 되었어요. 왕건이 폈던 호족 포용 정책 중에는 호족들과의 결혼이 있었는데, 이는 호족의 지지가 필요했던 왕건이 각 지방 호족의 자손과 결혼하여 그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자 한 것입니다. 


▲왕건의 부인들(출처: 에듀넷)


그러나 왕건이 폈던 결혼 정책은 오히려 고려 초기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어요. 그 이유는 왕건의 뒤를 누가 잇느냐에 대하여 호족 간의 권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왕건과 결혼했던 부인들의 자손은 어머니 쪽의 호족을 대표하면서 왕위를 얻어 권력을 잡기 위하여 서로 죽고 죽이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라가 건국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꾀할 시기에 왕위 다툼으로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고려만이 겪었던 문제는 아니었어요. 고려 이전과 이후의 나라도 왕권은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하였고, 왕권이 약해질 때마다 왕실은 다양한 방법으로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 왕권 강화를 위한 노력 - 왕족 사이의 결혼

호족의 딸들과 결혼한 왕건은 29명의 부인들로부터 25남 9녀를 얻었는데, 왕건의 딸들 중 신라 경순왕에게 시집간 2명의 공주를 제외하면 모두 오누이간에 결혼을 했습니다. 이러한 근친혼은 8대왕 현종 때까지 이어졌는데요, 고려의 왕 34명 가운데 19명이 같은 왕족 출신과 결혼을 했습니다.


▲왕족 사이의 결혼(출처: 에듀넷)


그 예로 왕건의 넷째 아들인 광종과 결혼한 왕건의 딸 대목왕후 황보씨, 왕건의 일곱째 아들 대종과 결혼한 왕건의 딸 선의왕후 등을 들 수 있어요. 또 다른 예로 신성왕후는 신라 경순왕의 큰아버지인 김억겸의 딸인데, 왕건과 왕후 사이의 두 딸을 경순왕에게 시집을 보내니 왕건은 경순왕의 조카사위이면서 장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왕실 내에서 이러한 근친혼이 성행한 이유는 왕실 세력의 분열을 막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왕권 강화를 위한 노력 - 노비안검법

고려의 태조 왕건과 왕실은 호족들에 맞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족끼리의 결혼하여 권력이 나뉘는 것을 막고자 하였지만 그것으로만 왕권을 강화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왕건의 아들로 고려의 네 번째 임금이 된 광종은 제도를 개혁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였습니다.


광종은 호족의 경제적, 군사적 기반이었던 노비를 없애 그들의 힘을 약하게 만들려 했어요. 호족들은 후삼국 통일의 과정 중 싸움에서 진 무리를 노비로 삼았고 그들에게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게 한 후 세금을 걷었습니다. 그 세금은 호족들이 권력을 누리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광종은 호족의 노비를 양민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호족의 경제적 기반을 빼앗고자 하였습니다.


자신이 원래 노비가 아니라 양민이었다는 것을 밝힐 수 있다면 양민이 되게 하였고, 그러한 정책에 반대하는 호족에게는 벌을 주는 등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하였어요. 이것이 바로 노비안검법입니다. 노비안검법을 통해 호족이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노비는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 양민이 되었고, 자신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노비를 빼앗긴 호족은 그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 왕권 강화를 위한 노력 - 과거제도

광종이 노비안검법과 더불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했던 정책에는 과거제도도 있었습니다. 과거제도는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그들의 집안이나 배경과는 상관없이 시험을 통해 관리를 뽑는 제도였습니다.

 

고려의 건국에 앞장섰던 호족들은 자신들의 관직을 자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어 권력을 지키고자 하였지요. 아버지를 이어 관직에 오른 자손들은 고려 왕실보다는 자신들의 가문을 위해 일했고 이는 자연스레 왕권의 약화를 불러왔습니다. 광종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을 과거제도라 생각했습니다.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를 통해 호족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광종의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었어요. 하지만 권력을 쉽게 놓을 수 없던 호족은 이러한 왕권강화 정책을 끊임없이 방해하였습니다. 왕권을 강화하는 것은 어느 왕이나 원하는 것이었지만 쉽게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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