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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밥상으로 본 백성의 생활 본문
임금의 밥상으로
본 백성의 생활
■ 공납과 진상
세금은 나라의 운영을 위해 그 나라의 국민이 내는 돈입니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도로를 개설하기도 하고, 복지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한 나라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세금인데요.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도 세금이 있었을까요? 있었다면 세금은 어떻게 냈을까요?
조선시대의 세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자신이 가진 땅의 넓이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 성을 짓는 일 등을 하며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각 지방의 특산물을 내는 것인데요.
조선시대는 백성 중 가장 많은 수가 농민이었고, 산업 중에서도 농업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땅에 대한 세금을 정하는 것을 두고 임금과 신하들이 많이 고민하는 등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죠.
세금은 대부분 쌀로 내었는데요. 풍년과 흉년에 따라 각 토지 당 내야하는 쌀의 양을 다르게 매기다가 나중에는 백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풍년, 흉년과 관계없이 일정한 양을 내도록 했습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도 백성에게는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농사철이 아닌 시기에 성 등을 지어 농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였고,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면 면포나 돈 등으로 낼 수 있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지방의 특산물 등을 내는 것도 중요한 세금 중 하나였는데요. 이 세금은 물품으로 직접 내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물품을 공물이라 했습니다. 공물에는 말이나 비단, 도자기나 종이, 돗자리 등의 물건부터 임금의 밥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음식까지 다양했습니다. 특히 계절에 따라 바뀌는 음식의 재료와 그릇 등의 공물은 임금의 밥상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각 지방에서 진상되는 것 또한 임금의 밥상에 있어 중요한 재료였는데, 진상은 공물과 달리 일정한 세금은 아니었습니다. 진상은 각 지방의 관리가 임금과 중앙에 올리는 선물과 같은 것으로 임금께 올리는 밥상의 재료나 나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도 진상한 물품이 쓰였습니다.
임금께 진상하는 음식은 각 지방의 특산품이 가장 맛있는 때에 올려 졌으며, 임금은 밥상을 통해 각 지방의 특산품을 접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음식이나 재료가 올라오지 않을 경우에는 각 지방의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각 지방의 사정에 따라 진상하는 물품의 종류를 바꾸게 하거나 진상을 올리지 못하게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공물과 진상은 임금의 밥상을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
■ 밥상으로 백성의 생활상을 이해하고 나라를 다스렸던 임금들
조선 시대의 임금은 백성이 우러러보는 대상이었고, 백성들은 임금이 곧 나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임금을 섬기는데 있어 많은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나라의 최고 권위자 임금의 밥상을 수라라고 하는데 수라는 단순한 밥상이 아니었고 수라를 올리기까지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였습니다.
▲수랏상(출처: 에듀넷)
임금은 하루에 총 다섯 번 정도의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 다섯 번의 식사 안에는 정식 수라와 간편하게 요기할 수 있는 참 등이 있었습니다.
⊙ 초조반(이른 아침) - 밤사이 허기진 임금의 배를 가볍게 다스리는 죽이나 미음
⊙ 아침수라(10시 쯤) - 정식 수라로 12첩 반상으로 이루어지는 밥상
⊙ 낮것상(점심) - 간편하게 먹는 밥상으로 면 등으로 이루어지기도 함
⊙ 저녁수라(5시 쯤) - 정식 수라로 12첩 반상으로 이루어지는 밥상
⊙ 야참(밤) - 식혜나 과자 등과 같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상
백성들은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의 재료, 음식의 조리 과정, 상차림까지 모든 과정에 임금을 섬기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수랏상에는 각 지방의 특산품이나 품질 좋은 먹거리가 재료로 쓰였고, 그것을 다듬을 때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맛뿐만 아니라 임금의 건강까지 생각한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었으며 그것을 그릇에 담을 때에는 아름다움을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수라는 단순한 밥상이 아닌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임금의 수랏상에 올라오는 음식은 각 지역에서 진상한 식재료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식재료를 보고 지방 상황을 두루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가뭄과 홍수가 들어 백성이 고통 받을 때 임금은 반찬가짓수를 덜거나 하루 다섯 차례인 식사의 횟수를 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이 당파싸움에 빠질 때 숟가락을 들지 않은 왕도 있었다고 하니, 임금은 밥상으로도 정치를 했던 셈입니다. 이처럼 임금의 밥상에는 음식으로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같이 극복하려 했던 정신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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