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공식 블로그

서울여행 필수코스인 '경복궁'의 문을 통해 알아보는 우리의 역사 본문

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서울여행 필수코스인 '경복궁'의 문을 통해 알아보는 우리의 역사

대한민국 교육부 2015. 8. 27. 13:58

서울여행 필수코스인

'경복궁'의 문을 통해 

알아보는 우리의 역사



현재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은 과거 조선시대(한양) 때부터 도읍지였던 곳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다양한 문화유산을 서울 한 복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인데요. 이를 통해 과거 조선시대에 임금들과 신하들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국가를 다스렸으며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문화유산을 꼽으라면 바로 경복궁이 아닐까 싶은데요. 서울여행을 오는 많은 국내외 관광객, 나들이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경복궁입니다.


조선시대 왕이 살던 곳인 경복궁, 경복궁에 들어설 때 보이는 문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광화문, 영추문 등 문의 이름 하나 하나에서 조선시대의 다양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답니다. 이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경복궁의 문에는 어떠한 가치관과 역사적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경복궁의 남문,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현재 서울시내 중심에 있는 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광화문은 한자로 빛 광(光)과 될 화(化)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미를 풀어 보자면 '빛이 되라'는 뜻이죠. 광화문은 조선시대 당시에는 국왕만이 지나 갈 수 있는 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지날 때마다 조선이라는 국가에 빛을 비추어 줄 수 있는 국왕이 되라는 의미로 조선 초기 집현전 학자들이 명칭을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 광화문 전경(출처: 문화재청)


화문의 경우 서문인 영추문, 동문인 건춘문, 북문인 신무문에 비해서 비교적 웅장한 크기를 가지고 있고요. 문 안에는 남쪽의 수호신을 상징하는 주작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 임금이 지나는 문을 지킨다는 뜻에서 좌우로 해치가 배치 되어 있습니다.


광화문의 경우 역사적으로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문인데요. 1910년 조선을 합병한 일본은 조선왕조를 부정하고 식민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임금이 지나가는 광화문을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총독부 청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해방이 된 이후 6.25 전쟁 당시 폭격에 의해서 불에 타 광화문은 소실됩니다.


그리고 1968년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광화문이 재건되는데요. 하지만 1990년 문화재청에서는 당시 지은 광화문에 대해 1) 경복궁을 축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건물을 축으로 하여 지은 것, 2) 조선시대의 축조 방식이 아닌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증축한 것이라는 두 가지 이유로 광화문을 재건축하게 됩니다.


광화문은 지난 2010년 8월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됩니다. 현재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동상, 세종대왕 동상과 함께 서울의 중심부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면서 다양한 관람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 경복궁의 동문과 서문, 건춘문과 영추문

건춘문과 영추문은 각각 봄과 가을을 상징하는 문입니다. 건춘문은 한자로 세울 건(建) 봄 춘(春)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건춘문은 왕세자와 종친들이 궁궐로 드나들던 문으로 건춘문을 중심으로 종친부와 세자가 거주하는 춘궁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에는 건춘문을 중심으로 국립현대미술관과 고궁박물관 같은 다양한 박물관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 건춘문 전경(출처: 문화재청)



영추문은 문무백관들이 드나드는 문이었다고 합니다. 영추문의 한자를 풀이하자면 맞을 영(迎) 가을 추(秋)로 풀이가 될 수 있는데 '가을을 맞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영추문의 경우 청와대를 축으로 가로수길이 조성돼 있습니다. 골목길을 중심으로 많은 맛집이 있어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가을에 은행잎이 떨어지는 풍경이 아름다워서 많은 관람객들이 경복궁을 보고 나서 영추문의 가로수를 보러 온다고 합니다.


▲ 영추 전경(출처: 문화재청)


 

■ 경복궁의 북문, 신무문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문으로 의미를 풀이해 보자면 귀신 신(神) 굳셀 무(武), 즉 '귀신처럼 굳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 슬픈 역사의 흔적이 있는 문이기도 한데요. 국사 시간에 배운 계유정난을 기억하시나요? 계유정난은 세조가 조카 단종을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군사 정변으로 경복궁에 들어가서 정권을 장악할 당시 북문인 신무문으로 군사를 이끌고 갔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서 단종은 세조에 의해서 왕위를 찬탈 당하게 되고 영월로 유배를 떠납니다.


▲ 신무문 전경(출처: 문화재청)


신무문은 현대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바꾸어 놓는 현장에 있게 됩니다. 1979년 12월 12일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수도권 병력을 모두 끌어들여 신무문을 지나 청와대로 들어가 최규하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했고, 1980년 새로운 정권을 출범시킵니다.


현재 신무문은 청와대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 문으로 신무문을 나가면 바로 청와대의 본관을 정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에는 청와대를 관람하러 온 중국인 관광객들이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경복궁을 관람하러 들어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 신무문은 평상시에는 개방되어 있지만 밤 6시 이후와 아침 9시 이전에는 청와대 경호로 인하여 해당 시간대에는 출입이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경복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인데요. 서울을 여행할 때, 혹은 외국인 관광객 친구들에게 경복궁에 대해 소개할 때 조선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문에 대해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경복궁 나들이 계획이 있는 분들도 경복궁의 문을 보며 우리 역사를 음미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