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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 누리길을 걸으며 만나는 우리 근대 역사 본문
개항장 누리길을
걸으며 만나는
우리 근대 역사
가을을 맞아 인천하늘고등학교 학생들은 팔미도와 인천 개항장으로 체험학습을 떠났습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7월에 이루어졌어야 했을 체험학습이 궂은 날씨로 인해 미뤄진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요. 2학기 들어 처음으로 공식 행사로 인해 하늘고 밖으로 나간다는 기대감과, 정기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몰려오는 불안감을 모두 안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한 시간 가량 버스를 타서 도착한 인천 차이나타운은 눈을 돌리는 곳마다 붉은색 건물과 간판이 보여 중국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삼국지의 주요 장면들로 꾸민 것이 인상적이었던 인천 화교 소학교 벽면을 지나서 몇 분 정도 걸었을까, 차이나타운에서 조금 멀어졌을 뿐인데도 분위기가 많이 다른 길이 나왔습니다.
인천 중구청 건물을 시작으로 근대에 지어진 여러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동행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중구청 건물을 가리키시며 원래는 이 자리에 1883년 조계지 내 자국의 거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설치한 일본 영사관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지 않아서 최근 새로 축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옛 인천부 청사 - 인천 중구청(등록문화재 제 249호)(출처: 직접촬영)
조금 더 걸어 내려가자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공자상이 보였습니다. 특별한 생각 없이 지나칠 수 도 있을 법한 계단에도 한국 근대 역사에 얽힌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개항기에 이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 즉 차이나타운 쪽은 청나라 조계지, 오른쪽인 중구청 쪽은 일본조계지로 나뉘었다는 것인데요. 청의 조계지였던 곳은 지금은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향하고 있으며, 일본의 조계지였던 남동쪽에는 지금도 일본풍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 곳이 100여 년 전에는 인천으로 밀려들어온 제국주의 열강들이 치외법권을 누리며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해하고, 경제적 수탈과 식민 지배의 발판으로 삼던 곳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 공자상과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출처: 직접촬영)
1883년 개항 이후 제물포를 통해 외국자본과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면서 인천 일대는 급속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인천이 개항도시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인천 개항장 거리에는 개항의 흔적이 서린 건축물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는데요. 이중 대표적인 건물인, 개화기 제물포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 장소였던 제물포 구락부에 갔습니다. 구락부라는 말이 귀에 익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클럽’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었습니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하얀 벽의 이층 건물이 나왔는데요. 사교 모임이 열렸던 장소답게, 내부는 카페 같기도 하고 회의실 같기도 했습니다. 한반도가 열강의 세력다툼의 현장이었던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 곳은 단순한 친목모임 장소라기보다는 한국경제 침탈을 위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장소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제물포 구락부(출처: 직접촬영)
나오는 길에 무지개 모양의 돌문인 홍예문을 보았습니다. 대한제국 시절 일본 조계지의 일본인 거주지가 포화상태가 되자 세력확장 및 물자수탈을 위해 만든 터널이었다고 해요. 만들어지고 난 뒤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의 기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49호인 홍예문(虹霓門)(출처: 직접촬영)
다음으로는 차례로 여러 박물관 및 전시관에서 여러 전시를 관람했는데요. 가장 먼저 본 곳은 인천의 개항과 근대문물에 대하 정보가 있는 인천개항박물관이었습니다. 철도와 우편업무를 소개한 전시실, 당시 사용되었던 화폐와 거리 모습 등이 근대를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간 한국근대문학관은 근대 개항기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공간이었는데요. 근대문화가 최초로 유입된 인천 개항장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광수, 한용운, 김소월, 정지용과 백석 등 작품을 통해 자주 들어 보았던 작가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문학을 통해 식민지의 모습부터 해방까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인천하늘고등학교 1학년 성세현 학생은 “개항장 누리길은 지난 100년 간의 우리 역사를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라며 “오래된 건물들도 헐지 말고 리모델링해 역사가 깃든 이 거리의 의미를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뭐든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라도 그곳의 의미를 모른다면 스쳐 지나가는 풍경 중 하나일 뿐이죠. 무심히 지나쳤지만 돌아보면 주변의 장소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의 현장인데요. 근대사의 거리로 떠났던 이번 체험학습은 가장 가까운 과거이면서도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던 우리 근현대사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남겨진 모습을 통해 과거를 기억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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