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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이야기
■ 독일의 분단과 통일
간혹 텔레비전에서 남한과 북한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장면이 방송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985년 역사적인 첫 만남이 성사된 후 지금까지 30년간 진행된 이산가족 상봉 뒤에는 늘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아쉬움이 더 큰 이유는 살아생전에 다시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하는 초고령화된 이산가족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분단으로 인하여 우리 민족은 여러 가지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이러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통일 사례를 통해 통일의 필요성과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네 개의 점령지역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는 연합국이 독일의 결합을 막아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여러 나라가 두 개의 진영을 형성하여 갈등, 긴장, 경쟁 상태로 대립한 냉전 체제가 계속되면서 프랑스·영국·미국의 점령 지역은 독일 연방 공화국이 되었고, 소비에트 연방의 점령 지역은 공산 국가인 독일 민주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외세에 의해 분단되어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 독일은 서로가 독일 연방의 적법한 계승자라 주장하며 경쟁했습니다.
그 이후 1961년 동독이 쌓기 시작한 베를린 장벽이 만들어지고 콘크리트로 축조된 장벽을 따라 곳곳에 감시탑이 설치되었습니다. 동독 정부는 이 장벽을 ‘반파시즘 방어벽’이라 불렀고, 서독 정부는 ‘수치의 벽’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벽이 세워진 뒤 동독의 주민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장벽을 뛰어넘었으며 탈출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경비병에게 발각되어 죽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 1961년 동독 장교 콘라트 슈만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장면(출처: 에듀넷)
분단 이후 동독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더 이상 발전이 없었으나, 서독은 이른바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서방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소련 및 동구 여러 나라들과 화해 외교를 펼쳤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동독과 서독은 함께 국제 연합에 가입하는 등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직접적인 교류로 인해 동유럽에서 불어온 개혁과 자유화 바람이 동독에 전해졌으며 결국 독일의 통일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동독 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모른 척 하였고, 이에 견딜 수 없었던 동독의 2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독으로 탈출하였으며, 동독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한 달이 넘도록 계속 되었습니다. 이 결과 독재정권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고, 동독 정부는 자유 총선거를 통해 서독과 통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 통일 당시 베를린의 모습(출처: 에듀넷)
▲ 11월 9일 베를린 시민들이 부란덴부르크문에 모여 베를린 장벽 붕괴를 자축함(출처: 에듀넷)
▲ 베를린 장벽을 부수는 모습(출처: 에듀넷)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을 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저마다 망치와 삽을 들고 나와 장벽을 허물어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벽이 무너지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울고 웃으며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다음해인 1990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마침내 동독과 서독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분단된 지 41년만의 일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얼마 안 되어 부시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몰타 섬에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냉전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그 즈음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불만을 가진 공산당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러시아 연방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옐친이 모스크바에서 쿠데다 세력과 맞서 싸우면서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결국 1991년 러시아 공화국을 비롯한 11개의 공화국이 소비에트 연방을 탈퇴하여 따로 ‘독립국가연합’을 결성하면서 마침내 소련은 해체되었습니다. 1922년 탄생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 독일 통일 사례를 통해 본 통일의 필요성
독일은 짧은 기간 안에 통일을 이루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서독 기업들이 동독 지역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해도 새로운 기술 지식이 부족한 동독 사람들을 채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기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동독 출신 노동자를 채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교육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화폐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많은 동독회사들은 문을 닫게 되는 등 경제생활이 어려워지자 동독인들은 고향을 떠나 서독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이것은 서독지역의 인력 시장에 공급 초과를 가져오게 되어 실업률을 상승시키게 되었습니다.
독일 통일에 들어간 경제적 비용은 약 1조유로(약 1490조원) 규모로 추산됩니다. 분야별로 분석한 결과 초기 13년 간 동독 지역 주민에 대한 연금과 임금 등 노동시장 보조금과 육아 보조금 등 사회보장 지출액이 총 6300억 유로(통일 비용의 49.2%)에 달했고, 나머지는 주로 경제·인프라 개발에 쓰였습니다. 또한 독일 정부는 통일기금과 각 주에 대한 재정 지원금으로 전체의 23%인 2950억 유로를 지출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체제로 살아온 두 지역이 합쳐지기까지 많은 노력과 경제력이 필요했습니다.
▲ 통일 후 동독 지역에 새로 건설되는 고층빌딩(출처: 에듀넷)
지난 2014년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 통일에 따른 편익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고 합니다. 내수 및 동유럽 시장이 확대 되었고 기업의 생산이 증가하였으며, 연합군 주둔 비용 등 안보 비용이 감소하고, 세수와 정부의 자산이 증가되는 등 분단되었을 때와 비교하여 비용이 감소되었습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한독정상회담에서 "독일 통일은 정말 행운이자 대박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동서독은 분단 시절부터 이미 많은 것을 공유해왔습니다. 동서독 주민간의 서신교환이나 전화통화도 허용되고 있었으며, 동독 주민들은 서독TV를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동독 언론의 특파원이 서독에 상주했고, 서독 특파원도 동독에 머물렀습니다. 1950년부터 통일 전까지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간 인구가 490만 명에 달했고 반대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한 사람도 47만 명 이었습니다. 이처럼 체제는 달랐지만 주민들 간의 큰 이질감은 없었던 것입니다.
분단국가인 우리 역시 통일을 하게 되면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 민족이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살 수 있으며 엄청난 국방비의 낭비를 막아 국가를 더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분명 남북한 경제의 통합은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통일을 위해 사람들은 다양한 노력을 해왔습니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전쟁의 기억을 되새기는 대신 서로 화해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도 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분단의 역사와 우리를 둘러싼 주변 나라의 사정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북한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북한에 대한 소식을 관심을 갖고 들으면서 북한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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