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을 일삼는 지석이

 

 

  지석이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입니다. 4월 중순이 되도록 학교에 안 나온 날이 더 많았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왜 안 나오느냐고 물으면 “공부가 안돼서요.” “바빠서요.” 하면서 번번이 피하고 맙니다. 부드럽게 타이르면 한 귀로 흘려듣고, 엄하게 말하면 “곧 자퇴할 거예요.”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석이에게 Wee 센터에서 하는 학업중단 숙려제도에 따른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을 때에도 “중학교 때 받아봤는데 별로예요.” 하면서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석이를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담임선생님은 지석이를 상담실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지석진단

  지석이는 외모도 준수하고 말도 유창하게 잘 하는 친구였습니다. 그런 지석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공부가 자기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도 그렇게 다닐 거면 그만두라고 했다며 곧 자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석이는 지난주 엄마와 크게 말다툼을 했습니다. 지석이의 여자친구가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집에서 매를 맞고 집에서 나온 것을 지석이 집에서 3일 동안 재워주었는데 엄마가 그만 집에 보내라고 하는 바람에 “애를 이대로 보내면 많이 맞고 다쳐요.”라고 대꾸한 탓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저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중학교 때 청소년들에게 자동차를 빌려주고 돈을 버는 형들과 일을 했어요. 그때 제가 소개해준 애들이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일으켜 많이 다치고 1명은 죽었어요.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저를 찾아왔어요. 저는 살인자일까요? 잠이 안 와요.”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지석이가 장기 결석을 한 것은 교내 문제 때문이 아니라 학교 밖과 가정문제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석이 어머니를 학교에 모시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에 망해서 10년째 집에 안 오시고 어머니 혼자 힘겹게 아이들을 키우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아들이 밖으로 돌면서 변해가자 신경이 도드라져 계셨습니다. 제가 잠시 급한 전화를 받느라 2분간 상담실 밖에 나오자 상담실 밖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방해가 되면 이만 갈까요?” 할 정도로 날카로우셨습니다. 아들을 교육한다고 하지만 이미 마음에 화가 가득하기 때문에 훈계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끝내는 습관이 생기셨습니다. 이대로 가면 서로 감정싸움을 하다가 엄마가 “그렇게 학교에 다니려면 차라리 그만둬” 하면 지석이가 “안 그래도 그만둘 작정이었어.” 하고 우발적으로 나올 것이 눈앞에 훤했습니다.
      

지석지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부모에게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 보라고 권하는 것이 대체로 맞는 순서이지만, 지석이 어머니의 경우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지석이를 양보시켰습니다. 어머니가 지석이에게 여자 친구를 집에 보내라고 화내고 고함치시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자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가 뭐라고 하실 때 대꾸하지 않겠어요. 그럼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어머니는 “애가 잘못은 해도 대들지는 않네요.”라고 하면서 마음이 좀 편안해지셨습니다. 저는 지석이가 말은 그렇게 해도 엄마를 엄마로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화해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지석이와의 상담 후에, 여자 친구 어머니와 아버지를 설득해 아이를 2주 만에 무사히 귀가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상담을 통해 쌓인 서로에 대한 신뢰로 중학교 때 있었던 자동차 사망사고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했던 방식과 반대로 충분히 들어주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자, 지석이는 “제가 자동차를 소개한 건 잘못이에요. 하지만 사망사고까지는 책임이 없는 것 같아요. 이젠 그런 짓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며 매듭지었습니다.
 
  이 무렵 저는 2학년 2학기부터 시작되는 직업 위탁반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기술을 배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어머니에게 휴가를 드릴 수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고 말이죠. 지석이는 자동차 정비를 배워서 정비업체에 취직하겠다고 했고, 어머니도 동의하셨습니다. 지석이가 직업학교에 들어간 후, 결석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새로 배우는 자동차 엔진에 흠뻑 빠진 탓입니다. 예전에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 어쩐지 대책 없어 보인다며 이젠 자신이 알아서 조절해야겠다는 소식을 전해준 것도 대략 그 무렵이었습니다.

 

글_김 서 규 유신고등학교 진로진학상담부장교사
출처_행복한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