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한 게임회사가 2011년 투박한 게임 하나를 내놓습니다. 스타크래프트처럼 치밀한 전략 싸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월드오브워크래프트처럼 다양한 퀘스트(임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출시 5년 만에 1억 개가 팔렸습니다. 1억 개면 테트리스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게임입니다. 게임을 좋아한다면 어떤 게임인지 단번에 알아차리셨을 텐데요, 바로 ‘마인크래프트’입니다.
마인크래프트는 이름 그대로 도구를 이용해 광석을 캐내고(Mine), 캐낸 광석으로 물건을 만들어 생활하는 게임입니다. 광석의 종류는 금, 은, 석탄, 나무, 흙 등 다양합니다. 단, 광석은 모두 정육면체 네모난 블록으로 구현돼 있습니다. 네모난 블록을 캐내 집을 짓고 몬스터들을 피해 생활하는 것이 전부인 단순한 게임입니다. 화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 선명도가 떨어짐에도 이용자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마인크래프트가 이렇게 큰 인기를 끈 데에는 게임의 ‘확장성’이 크게 작용을 했습니다.
마인크래프트는 레고처럼 블록을 쌓기만 하면 쉽게 물건들을 만들 수 있지만 레고와 달리 크기 제한이 없습니다. 에펠탑도 만들 수 있고, 경복궁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협력도 가능하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 만리장성까지도 쌓을 수 있는 것이죠. 게다가 ‘레드스톤’ 아이템을 이용하면 전자제품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전자제품을 만들 때는 회로도 개념이 필요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며 코딩을 배우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런 확장성 덕분에 전 세계에 ‘마인크래프트’ 열풍이 불었고,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이 스웨덴의 작은 게임회사를 25억 달러(2조 8000억 원)에 인수하기에 이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회사를 인수한 뒤 마인크래프트를 교육용 버전으로 재출시 했는데요, 바로 2016년 말에 나온 ‘마인크래프트 에듀케이션 에디션’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 컴퓨터게임이 교실에 교육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이 질문 역시 마인크래프트의 자유롭고 제한이 없는 ‘확장성’과 긴밀한 연관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해 드렸던 수원 화성을 예로 들어볼까요? 교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을 합니다. “화성성역의궤의 내용을 참고해 수원 화성을 직접 건설하되, 정약용이 개발한 거중기를 반드시 활용하세요.” 이 과제를 마인크래프트 게임으로 해결하려면 학생들은 먼저 수원 화성과 화성성역의궤의 내용을 조사해야 합니다. 또 정약용의 거중기를 직접 만들기 위해 다양한 조사도 선행돼야겠죠. 역사와 건축, 과학과 기술,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야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지식을 바탕에 깔고 실전으로 직접 수원 화성을 만들어 볼 수 있으니 재미가 상당하겠지요. 그리고 모둠별로 과제가 진행될 경우 모둠마다 다양한 수원 화성이 만들어지니까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겁니다.
이뿐만이 아니겠죠. 마인크래프트에서는 전자기기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교사가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전자계산기를 만들어보라’고 주문하면 학생들은 전자계산기의 원리를 알아내 필요한 광물을 캐면서 계산기를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습니다. 음악 시간에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만들어 보라는 과제도 가능하겠죠. 마인크래프트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만들어 게임 내에서 직접 현실 세계와 소통 및 네트워크도 가능하다니 확장성은 무한대로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현대 사회 필수 지식으로 취급되는 코딩의 원리까지 습득할 수 있으니 이만한 교육 프로그램이 또 어디 있을까요? 실제로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한 교육은 전 세계 수 천개 학교에서 지리, 건축, 생물, 물리, 화학 등 다양한 과목의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교육대학교, EBS 등이 소프트웨어 교육을 위해 협약을 맺고 긴밀히 교류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게임을 교육에 접목한 것을 교육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고 합니다. 교육의 게임화, 즉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의 메커니즘을 접목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교육에 게임의 접목을 시도하는 흐름이 생긴 것은 게임이 재미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떻게 하면 공부도 게임처럼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생긴 흐름으로 볼 수 있겠지요. 게이미피케이션은 기존 콘텐츠(학습)에 게임적 요소를 가미하는 방식과 기존 콘텐츠(학습) 자체를 게임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후자를 기능성 게임(serious gam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능성 게임 중에서도 교육 목적에 특화된 게임을 G러닝(G-Learning)으로 부르고 있기도 하지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나 GBL(Game Based Learning), 에듀케이셔널 게임(educational game) 등도 비슷한 의미로 통용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이 컴퓨터 게임을 활용한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공립 초등학교 교사 존 헌터(John Hunter)는 1978년에 ‘세계평화게임(World Peace Game)’이라는 거창의 제목의 게임을 창안했는데요,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가로, 세로, 높이 4피트(1m22cm) 크기의 4층짜리 아크릴 구조를 지어놓고 학생들끼리 서로 대화하며 진행되는 오프라인 게임입니다. 각 층은 우주, 대기, 지표, 해저를 상징하고, 거기에 경제력과 군사력이 다른 4개의 가상 국가가 존재합니다. 학생들은 각 나라의 수상, 국무장관, 국방장관, 재무장관, 사회장관 등을 맡아 내각을 구성합니다. 내각 외에도 무기상인, 세계은행, UN 등 다양한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게임의 목표는 자신이 속한 가상 국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을 극복해 부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도 하고, 자원을 빼앗기도 하며, 속임수를 쓰기도 합니다. 물론 전쟁을 막고, 가난을 막기 위해 협정을 맺기도 하죠. 선택은 학생들의 몫입니다. 교사는 그저 게임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상황을 정리하고 조언을 하는 역할만 맡습니다. 게임의 주도권은 모두 학생들이 갖고 있으니까요. 학생들의 능동적 참여가 보장되기 때문에 지루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존 헌터 교사는 이 게임 수업의 효능을 인정받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게임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의 활동은 ‘세계 평화와 4학년의 업적(World Peace and Other 4th-grade Achievement)’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헌터 교사는 2012년 타임지가 선정한 교육 운동가 12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게임을 통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 학생들의 선택과 행동이 도출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병사들이 사망했을 때 국방장관이 가상의 장병 부모에게 편지를 쓰고 읽는 시간이 마련됐는데 숙연한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참관 중이던 학부모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죠. 이를 통해 전투에서 병사가 사망하면 전쟁에서 이겨도 기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학생들은 몸소 체득했습니다. 전쟁은 다른 의미에서 모두에게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는 일이라는 사실도요. 헌터 교사는 말합니다.
“똑같은 게임은 하나도 없습니다. 학생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게임을 통해 학생들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저도 배우게 됩니다. 만약 학생들이 이 가상 게임을 통해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방식을 배우고, 세상을 이롭게 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 모두를 구원할지도 모릅니다.”
수업을 게임화하는 방식은 이처럼 온·오프라인 구분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보드게임인 ‘부루마블’ 역시 훌륭한 경제교육 교재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OECD가 내놓은 ‘학습환경을 디자인하는 교사’ 보고서에서는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의 요건으로 △구성원 모두의 직접적인 참여 △놀이를 통한 배움 △상호 연결성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피드백 △지속되는 도전 등을 꼽고 있습니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되면 충분히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온·오프라인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반드시 거창하고 복잡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게이미피케이션은 우리나라에도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바른 게임 이용 문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게임 리터러시’ 성과보고회를 열고 있는데요,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게임 리터러시 교사연구회는 20여 개 팀이 활동했고, 이 가운데 5개 팀은 성과를 인정받아 상까지 받았습니다. 최우수상을 받은 ‘놀공늘공(놀면서 공부하면 늘 공부하게 된다)’ 연구회는 사회과 수업에 게임 요소를 가미해 단순 암기식 수업에서 탈피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하네요. 이런 교사들의 노력이 모여 우리 교육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이겠지요. 앞으로도 교육 현장에 학생들의 흥미를 고취시키는 다양한 수업 모델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