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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교육부 이야기/신기한 과학세계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의 과학적 얼음 냉장고

대한민국 교육부 2010. 12. 7. 07:00


냉장고가 흔치 않던 시절, 얼음을 판매하는 곳이 동네마다 있어 일반 가정집에서도 얼음을 사 먹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빨간 글씨로 ‘어름’이라고 쓰인 창고에서 아저씨가 톱으로 쓱쓱 얼음을 썰어 새끼줄로 묶어주시면 심부름하는 아이는 얼음이 녹기 전에 고무신짝이 벗겨져라 냅다 뛰던 모습. 이젠 추억 속에서나 가끔 끄집어낼 수 있는 장면입니다.
 

한강(1954) / 작가: 임인식 <서울, 타입캡슐을 열다展. 2008>


옛날 알렉산더 왕의 신하는 여름에 찬 음식을 위해 높은 산의 눈을 싸들고 뛰었다던데, 우리의 조상은 얼음을 어떤 방법으로 이용했을까요? 




 경주의 석빙고
 

지난 10월. 오래간만에 경주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도 분명 봤었던 석빙고인데 처음 본 것처럼 낯설더군요. 어린 시절 그저 줄 맞춰 따라다니며 관심 없이 보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만, 경주 월성 북쪽에 있는 경주 석빙고는 신라 유적지 안에 위치하기 때문에 신라 시대의 유적이라고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신라의 유적이 아니더군요.
 

경주 석빙고 전경 ⓒ이인옥


신라 노례왕 때부터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는 기록과 조선 시대에는 신라 월성에 딱히 석빙고를 지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신라 시대 축조한 석빙고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개축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얼음 채취가 용이한 남천 옆에 자리 잡은 것은 당연하고 현재 남아 있는 조선 시대의 석빙고들과 구조와 설계가 같은 것으로 보아 경주 석빙고는 조선 시대 신축했다는 가설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석빙고 앞 비문에는 1738(영조 14)년 당시 경주 부윤 조명겸이 목빙고를 석빙고로 다시 축조하였다고 쓰여있습니다. 이 비문으로 석빙고를 사용하기 전 얼음 저장에는 목빙고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목빙고는 썩어 없어지는 나무의 성질 때문에 남아 있지 않고, 충남 홍성에서 발굴된 목빙고 터 유적이 유일합니다.
 
석빙고는 경주의 석빙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빙고는 북한에 1곳, 남한에 6곳이 있으며, 조선 시대의 사설 빙고도 서울 마포구에서 발견되었답니다.
 
 현존하는 빙고 관련 유적 

경주석빙고 : 보물 66호 조선 영조 14년 축조, 영조 17년 개축
안동석빙고 : 보물 305호 조선 영조 13년 축조
창녕석빙고 : 보물 310호 조선 영조 18년 축조
청도석빙고 : 보물 323호 조선 숙종 39년 축조
현풍석빙고 : 보물 673호 조선 영조   6년 축조
영산석빙고 : 사적 169호 조선 중기 축조
해주석빙고 : 북한 국보 문화유물 69호 - 고려 초기 축조. 1735년(영조 11) 개축
대구 석빙고 비 : 비문만 현존. 숙종 39년~숙종 42년. 초개빙고(초가집 빙고)를 석빙고로 개축하였다 기록.
충남 홍성 목빙고 유적 : 석빙고보다 1세기 앞선 것으로 추정

 


 빙고의 역사
 

『삼국유사』의 신라 3대 노례왕이 얼음저장고를 만들었다는 기록과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지증왕 시절 얼음을 저장하였으며 '빙고전'이라는 관청에서 관리하였다는 기록으로 적어도 삼국시대부터는 얼음을 저장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수도 개성과 평양에 내빙고와 외빙고가 설치되었고, 고려 문종 3년에는 ‘반빙제도(얼음을 꺼내 나누는 제도)’가 정해졌습니다. 공이 많은 퇴직관료에게는 사흘에 두 번 얼음을 나눠주고, 고급관리에게는 칠일마다 한 번씩 얼음을 나눠주며, 얼음을 나눠주는 시기는 음력 6월부터 입추까지였습니다.

조선은 태조 5년(1396)에 동빙고와 서빙고를 설치하였습니다. 동빙고에는 국가 제사에 쓸 얼음을 주로 저장하였고, 서빙고에는 궁궐의 식품 냉장을 위한 얼음과 문무백관에게 나누어줄 얼음을 저장하였습니다. 동빙고는 빙실이 1개, 서빙고는 빙실이 8개였고, 서빙고 규모가 동빙고의 12배였다고 합니다. 

또, 창덕궁 안에는 내빙고가 있었습니다. 서빙고는 지금의 용산구 서빙고동에, 동빙고는 지금의 옥수동에 있었는데, 현재의 용산구 동빙고동은 서빙고동의 동쪽에 있다고 붙여진 지명이고 빙고는 없었다고 하네요.
 
『용재총화』의 기록으로 조선의 동빙고와 서빙고는 처음엔 목빙고였고 갈대와 솔가지, 짚 등을 이용하여 얼음을 보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빙고는 얼음이 석빙고보다 빨리 녹았고, 자주 수리를 하고 다시 만들어야 했으며, 매년 보수하는 비용은 백성이 부담해야 했으므로 세종 2년 동·서빙고가 석빙고로 개조되었다고 합니다. 
 
목빙고의 골조로 사용된 재료는 육송이었다. 그리고 단열성이 좋은 갈대, 솔가지, 짚 등을 촘촘히 엮어 얼음이 쉽게 녹지 않도록 두껍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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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庫員)이 군인을 인솔하여 빙고의 천장을 수리하고 대들보와 서까래가 썩은 것을 바꾸며 담이 허물어진 것을 고쳤다. 또 고원 한사람은 압도(鴨島-지금의 난지도)에 가서 갈대를 베어다가 빙고의 상하 사방을 덮는데, 많이 쌓아 두껍게 덮으면 얼음이 녹지 않는다.                                     『용재총화』

해마다 얼음을 저장할 때면 백성을 시켜 고쳤는데 재목의 값이 비싸서 백성의 고통이 심하니 사람이 사는 집 모양으로 빙실을 지어 지키게 하면 수십 년 이후까지 오래가서 해마다 고쳐 짓는 폐단이 없을 것이다.                 
『세종실록』
 
우리 조상은 한겨울에 음기를 상징하는 얼음을 저장하여 이것을 동장군을 지하에 가둔다는 의미로 생각하였고, 한여름 양기가 성할 때 얼음을 풀어 음양의 조화를 꾀하였다고 합니다.
 



 석빙고의 구조와 과학적 원리
 

빙고에는 어떤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을까요? "얼어라. 얼어라. 뿅!"하면 어는 요술 저장고는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지요. 

우선 석빙고의 위치는 대부분 강 가까이에 있습니다. 겨울에 얼음을 저장할 때 운반이 쉽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석빙고의 자세한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규모도 크고 보존 상태도 좋은 경주 월성의 석빙고를 예로 들어보지요. 

아래 그림처럼 석빙고는 반은 지표면 아래 반은 지표면 위에 위치합니다. 남쪽으로 낸 출입문은 지면보다 낮습니다. ‘석빙고의 돌문이 계림에서 월성으로 오르는 길의 서쪽에 파묻혀 있다.’라는 증언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석빙고의 원래 문은 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석빙고의 구조 (참고자료1 참조 재구성)

 
땅 밑 지하공간은 외부기온의 영향을 적게 받고, 지하 암반의 보냉(保冷)과 축열(蓄熱)효과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쉽습니다. 추운 겨울철에도 지하실은 영상 10℃ 이상의 따뜻한 기온을 유지합니다. 어라? 겨울에도 석빙고가 따듯하다면 얼음을 어떻게 저장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석빙고 전경 사진의 오른쪽(동쪽)으로 보이는 기다란 벽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겨울은 북서 계절풍이 붑니다. 서쪽에서 불어온 찬바람만 기다란 벽에 부딪혀 빙고 안으로 들어가고 더운 바람은 유선형의 지면을 따라 위로 상승하게 하는 장치라는군요. 그래서 경주 석빙고의 겨울철 내부 온도는 영하권을 유지합니다.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바닥은 들어갈수록 북쪽으로 낮아집니다. 바닥이 경사져 얼음 녹은 물은 북쪽으로 모여 즉시 배수구로 흘러나가게 됩니다. 빙고 내부 바닥과 벽은 열전도율이 높은 화강암을 사용하여 찬 온도가 쉽게 전달되도록 하였습니다.
  

석빙고 내부 모습 ⓒ이인옥

 
천장은 기둥이 없어도 되는 아치형으로 쌓아 얼음을 저장하기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진의 천장을 보면 아치와 아치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공간들이 있습니다. 공기의 대류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더운 공기는 위로 모이는데 천정의 빈 공간으로 더운 공기가 모여 위쪽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가게 한 것입니다.
 

석빙고 지붕의 환기구 ⓒ이인옥

 
돌 지붕 위는 진흙과 석회로 방수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 위에 열전도율이 낮아 단열에 효과적인 석회와 진흙, 마사토를 혼합하여 봉토한 후 잔디를 심어 태양 복사열을 차단했습니다.
 
얼음을 저장할 때는 얼음과 벽, 천장 사이에 볏짚, 왕겨, 갈대 등을 넣어 열기를 차단했습니다. 볏짚과 갈대 속은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 지금도 많이 쓰이는 훌륭한 단열재입니다.
 
이렇듯 석빙고에는 곳곳에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었네요.

추운 겨울 강에서 두꺼운 얼음을 채취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여름에 얼음 안 먹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여름에 얼음이 필요한 병자나, 감옥의 죄수에게도 공급했다는 이야길 들으니 '얼음 저장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꼭 필요한 일이었겠구나.' 싶어집니다.

곳곳에 숨어 있는 과학적 원리를 알고 보니 조상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오랜 세월을 이겨낸 홍예(아치) 구조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지진 않는지요?
 

청도 석빙고 사진출처:문화재정보



참고자료
1. 손영식, 석빙고고(石氷庫考), 건축역사연구 제2권 통권 4호, p.18 횡단면도, 1993년12월
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팔공산자락 8 (답사여행의 길잡이), 돌배개출판,1997
3. 이광표, 손 안의 박물관, 효형출판,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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