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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특별한 제자, 편애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대한민국 교육부 2009. 10. 21. 16:53

한승진 익산 황등중학교 교사

내가 재직하는 학교는 전교생이 172명으로, 교직원 수 21명인 농촌의 소규모 학교이다. 나는 그러다 보니 전교생의 이름은 물론이고, 생활환경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이들과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올해 매우 특별한 아이를 만났다. 이 아이와의 만남을 축복으로 생각한다. 이 아이는 1학년 1반 국어부장 임현준이다. 내가 이 아이를 안 것은 작년 초부터다. 지금 3학년에 재학 중인 현준이의 형 현석이를 통해 매우 특별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미리 각오하라’는 뜻과 간곡한 부탁의 뜻을 담아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현준이의 어머니로부터 메일을 통해 아이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전해 들었기에 처음 만남이 낯설지는 않았다. 

현준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는 다리를 저는 정도이지만, 말을 더듬고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였다. 현준이는 어머니의 생각에 따라, 특수학교보다는 형도 다니고 있는 가까운 지역의 일반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는 것이 낫겠다 싶어 우리 학교에 입학하였다. 

솔직히 학교로서는 현준이가 입학하는데 적지 않은 부담을 가져야만 했다. 왜냐하면 우리 학교는 특별한 이 아이를 위한 교육적 배려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또한 현준이로 인해 반 수업이나 행사 등 분위기가 흐트러질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현준이가 입학을 했다. 현준이는 입학 첫 날부터 기대 이상의 특별한 모습으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입학식 시간에 현준이는 가만히 앉아 있지를 않았다. 여기저기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누구를 찾거나, 무언가를 찾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주위산만’의 아이였다. 보다 못한 선생님 한 분이 주의를 주시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나는 입학 첫날 야단을 치기도 뭐한 상황이지만 현준이 옆으로 가서 주의를 주면서, 함께 있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엄숙한 입학식날 교사인 나는 신입생 아이와 잡담을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어느 순간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지난 5년 동안 이런 나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권위적인 모습을 싫어하여, 아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편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혹은 야외학습 시간에는 아이들과 격의 없이 수다를 떤다. 때로는 함께 하는 놀이로 몸을 부딪쳐가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중요한 학교 행사 만큼은 매우 엄하게 아이들을 지도하고 감독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중요한 학교행사 시간에는 나를 조금 무서워한다. 

그런데 내가 신입생 아이의 꾐에 빠져(?) 같이 잡담을 한 것이다. 그 날 나는 나도 모르게 현준이의 말에 빠져들었다. 현준이가 더듬거리며 말하는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들어주고, 그 이야기에 칭찬과 격려로 받아주었다. 이것이 현준이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이 날의 만남은 현준이가 내게 공사를 구별하고, 근엄하게 학교 일에 임하는 교사의 이미지를 벗어달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현준이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 하였다. 입학식 날 따뜻하게 반겨주고 어울려 준 것이 좋았는지 지나가다 만나기만 해도 환하게 웃으면서 달려온다. 그리고는 “나-나는 한-한 승진 선-선생님이 참-참 좋아!”하고 말하면서 꼭 껴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내 두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건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연인들의 포용 장면을 연상케 하였다. 내 볼을 쓰다듬어 주는 것이 꼭 귀여운 어린아이에게 하듯 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놀라워하면서 현준이를 야단쳤다. 

어떤 선생님 한 분은 “야! 너 선생님한테 무슨 짓이냐?”고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습니다. 다 저 좋다는 표현인걸요”하며 넘기곤 하였다. 누가 보면 어이없는 행동일 것이다. 나이 마흔의 선생에게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아이가 귀여운 어린 아이 대하듯 볼을 쓰다듬어주니 말이다. 

나는 언제나 현준이가 선사하는 최고의 멋진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았다. 지난 5년 동안 아무도 나에게 이렇게 강렬하게 진심을 담아 반겨주고 사랑해준 아이는 없었다. 장래 희망이 목사나 신부인 학생도, 품행이 모범적이라 칭찬받는 모범생 학생회장도 나를 이렇게 반겨준 적은 없었다.
 
그런데 현준이는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때마다 이렇게 반겨주었다. 현준이는 나와 만나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창의적 재량활동 수업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는 수업시간에 내가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다 좋아해주는 현준이의 모습에 저절로 흥이 났다. 그러다 보니 현준이가 속한 반에서 펼치는 수업은 매우 특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현준이가 수업 시간에 조용히 수업을 듣는 것은 아니었다. 현준이는 수업 진도나 분위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생각난 것은 바로 질문하고, 행동에 옮겼다. 수업 중, 갑자기 일어서기도 하고 교실을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수업을 진행하기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현준이의 반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여, 현준이에게 교과부장 직을 맡겼다. 현준이는 수업 시간에 자신의 역할이 있어서 그런지 다른 수업 시간보다 더 좋아하고 참여하였다. 나는 수업 중, 행해지는 현준이의 돌출 질문이나 행동이 있으면 야단치지 않고 이를 적절히 수업에 필요한 예화로 연결하여 그 때 그 때 구성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현준이는 수업에 방해꾼이 아니라 가장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의견을 표현하는 모범생이 되었다. 내게 있어, 미리 짜여진 교육 과정이나 수업의 목표가 없이 진행되는 유일한 학급이 바로 현준이네 반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들도 수업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해해주고 협력해주었다. 

나는 현준이를 보면서 예전에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 “그 때, 그 때 달라요”라는 말을 실감하였다. 사실 나는 현준이를 참 좋아한다. 이것을 편애로 비난한다 해도 할 말이 없지만 때로는 내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할 아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오히려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의 모든 아이를 똑같이 사랑하고 모든 수업을 정해진 교육목표와 과정에 따라 진행해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현준이에게는 현준이에게 맞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더디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현준이의 말을 들어주고, 칭찬과 격려로 자존감을 높여주는 진실한 사랑으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며칠 전 현준이를 복도에서 만났다. 역시 현준이 식의 애정표현을 하면서 나를 귀여워(?)해주었다. 나는 현준이를 특별히 더 사랑한다. 나는 앞으로도 현준이와 함께하는 수업을 좋아할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가 되는 것은 내겐 매우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 현준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준이를 통해 나의 교육철학을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현준이는 나의 스승이다. 매우 특별한 체험을 안겨준 현준이를 통해 참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우리교육의 현실은 특수목적고에 진학하거나 명문대에 진학하면 학교 현수막을 걸어, 자랑스러워한다. 선생의 보람도 제자가 잘 되어 이름 난 학교에 진학하고, 잘난 사람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현준이와 함께하면서 이러한 교육이 참 교육인가? 하는 삐딱한 울분을 갖게 되었다.

『맹자』에 나오는 “여민동락(與民同樂)[각주:1]”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조금은 더디지만 기다려주고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 참교육이 아닐까? 나는 이런 교육관으로 살 것을 다짐해본다. 
 교과부 웹진  꿈나래21 


  1.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맹자(孟子)》에서 유래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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