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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국민서포터즈

아이, 친구들과 갈만한 곳 '독립기념관'

대한민국 교육부 2015. 6. 9. 11:34

 역사, 우리 과거의 다시보기이자 

내일을 위한 미리보기

-  독립기념관을 다녀와서 - 



하늘문이 열린 고조선시대, 그리고 한반도만의 특별한 문화가 꽃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500년 역사의 조선 시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이 담긴 근대사,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 현대사까지. 지난 5000년 우리 선조들과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인 역사!  


역사는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찬란한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역사의 중요성과 참 의미를 배우고 우리 역사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방문한 독립기념관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이 기념관에서는 겨레의 탑에서부터 시작하여 겨레의 집 뒤로의 6개 전시관에 있는 많은 유물들과 함께 백련못, 태극기마당 등 다양한 자연 경관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중 제1에서 제6관까지의 전시관에서 인상적이었던 유물 몇 가지만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 제 1 전시관- 겨레의 뿌리

우리 겨레는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독자적이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제 1관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과 숱한 외세의 침략을 슬기롭게 극복한 선조들의 역사적인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 고인돌


첫 번째 유물은 고인돌인데요. 고인돌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분포하는 선사시대의 무덤으로서, 지상이나 지하에 만든 무덤방에 굄돌을 놓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얹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지배자가 자신이 지배하는 백성들을 동원하여 만든 것으로 당시 지배자의 힘이 강력하였음을 보여준답니다. 한반도는 전세계 40%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전남 화순, 전북 고창, 이천 강화 지역 등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 백제 금동대향로


백제인들의 이상향과 우수한 금속 세공술을 보여주는 백제 금동대향로! 


불당에 향을 피울 때 쓰였다고 전해지는 금동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백제시대 절터에서 출토되었다고 해요. 크게 보면 앞발을 치켜든 용 한 마리가 막 피어날 듯한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형상인데요. 연꽃 봉오리의 중앙이 아래, 위로 분리되어 향로의 몸체와 뚜껑을 이루고 있습니다. 



3) 측우기


측우기는 세종 23년 서운관에서 제작된 것으로 빗물이 고인 깊이를 주척으로 표시해 강우량을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정교하고 전문적인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발명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지만, 이 측우기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인 강우량 측정기라는 사실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하죠. 


실제 유럽에서는 1639년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B. 가스텔리가 처음으로 측우기로 강우량을 관측했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1658년부터, 영국에서는 1677년부터 관측했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1442년 5월부터 측우기로 우량을 측정하였으니 이탈리아보다도 약 200년이 빨리 발명된 것이라는 사실! 정말 놀랍죠?~ 



♣ 제 2 전시관- 겨레의 시련

조선은 개항 이후 과거와는 다른 근대적 면모를 점차 갖추어 나갔습니다. 급격한 서구화와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본래의 모습은 크게 변질되었고,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도 있었어요. 이곳 제 2관에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 국가로 발전하려던 한국을 무력으로 짓밟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상과 고난의 역사에 대해 전시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은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기 위해 군대를 거느리고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와 함께 어전회의를 열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회의에서 ‘을사늑약’을 승인하도록 협박했죠.  


이때 강경하게 반대하던 참정대신 한규설은 일본헌병에 의해 회의실에서 끌려 나갔고, 나머지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 ‘을사5적’은 조약 체결에 찬성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본군이 빼앗아 온 외부대신의 인장을 날인하여 11월 18일 새벽 2시경에 을사늑약을 억지로 체결했습니다.  



♣ 제 3 전시관- 나라 지키기

제 3관은 한말의 국권 회복운동인 의병전쟁과 애국계몽운동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의병전쟁이 일본의 침략에 저항한 적극적인 무장 투쟁이었다면, 애국계몽운동은 실력 양성 운동이었다고 합니다. 


의병봉기는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1895년 명성 황후가 시해 당한 후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항의하며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고, 해산군인들이 의병부대에 가담하면서 의병항쟁은 대일 전면전쟁으로 발전했지요. 


애국 계몽운동은 교육과 실업을 진흥시켜 문화적, 경제적 실력을 양성함으로서 국권 회복을 도모했습니다. 1906년부터 각 지역마다 애국계몽운동 단체들이 설립되어 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일제의 침략으로 국내에서의 구국운동이 불가능해지자 국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했답니다.



♣ 제 4 전시관- 겨레의 함성

제 4관에서는 민족 최대의 항일 독립 운동인 3·1운동을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무단통치를 통해 한국민의 저항을 탄압했는데요, 우리 한민족은 일본의 횡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외에서 독립 운동단체를 조직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는 민족대표 33인이 종로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답니다. 서울에서 시작된 3.1 운동이 국내외로 퍼져나가자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시위자들을 체포하고 학살했지요. 그럼에도 우리 민족의 강인한 독립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 제 5 전시관-나라 되찾기          

제 5관에는 만주를 중심으로 연해주와 미주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군과 관련된 자료, 한국광복군과 의열 투쟁에 관련된 각종 자료와 모형물, 영상 등과 함께 국외에서 활동했던 무장 독립 투쟁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어요.


일제의 만주 침략과 중일전쟁 발발 후 중국 관내에서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항일 투쟁을 위해 조선 의용대와 한국광복군 등 군사조직이 창설되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식 군대로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 광복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대일항전에 참여했어요. 이들이 수행한 항일 무장투쟁의 정신은 그 어떤 시련에서도 굴하지 않는 나라 사랑 정신의 근본 바탕이었답니다. 



중국만주 일대의 독립군들이 일본군과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장면을 연출한 모형이예요. 국내의 대표적인 무장단체로는 먼저 평북의 동암산을 거점으로 한 보합단, 평북 천마산을 근거지로 한 천마산대, 황해도 구월산의 구월산대 등이 있지요. 


우리나라의 독립군 부대는 만주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독립군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활동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일제의 식민 통치기관을 파괴하고 일본 군경과 싸움을 벌였으며, 친일파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무장 항일 투쟁을 전개했어요.



♣ 제 6 전시관- 새나라 세우기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국내 각계각층의 사회운동, 그리고 독립운동의 중추기관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전시관입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3.1 운동이 거둔 값진 성과였어요.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독립 운동 방략을 다양하게 모색, 추진했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수립된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요인들을 밀랍으로 제작해놓은 모습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수립 직후부터 내무, 군사, 외교, 재정 등각 방면의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했다고 해요. 


또한 한인 2세의 교육을 위해 공립학교를 운영했고 독립운동의 홍보에도 노력을 기울이며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즉, 임시정부는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인 동시에 독립운동의 최고 중추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민족의 대표기구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민족의 5천년 역사 속에서 무수한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강인한 독립의 의지와 자주의 정신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물려주신 선열들의 빛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천안 독립기념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살면서 꼭 한번은 가보아야 할 곳이 아닐까합니다. 


독립기념관은 5000년 동안 걸어온 우리 민족의 발자취를 통해 이루어온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과거의 부끄러운 일들을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 같아요. 


우리 과거의 다시보기이자 내일을 위한 미리보기. 우리의 문화, 영토를 올바르게 알리고 지키기 위한 첫 걸음인 역사를 배우고 제대로 알기 위해 주말을 이용해 천안 독립기념관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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