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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신라시대부터 우리 땅!

대한민국 교육부 2015. 6. 23. 13:47


독도는 신라시대부터 

우리 땅! 



■ 독도라는 이름은 언제부터 불리게 된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독도라는 명칭을 사용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독도는 신라시대(512년)에 울릉도 지역의 우산국이라는 나라에 소속된 섬이었어요.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그 부속 섬인 독도가 ‘우산도’로 처음 불리게 된 것이죠.


신라 이사부 장군의 초상화(출처: 에듀넷)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러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뜻의 ‘삼봉도’로 불리게 되었고, 1794년에 이르러서는 가지라는 뜻의 물개과 동물 강치가 살고 있는 뜻의 ‘가지도’로 명명되기도 했습니다. 1900년에 대한제국이 ‘칙령 41호’로 독도를 돌섬의 한자 표기인 ‘석도’라는 이름으로 부르다가, 1906년에 이르러 ‘독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어요.


▲독도 지명의 변천 과정(출처: 에듀넷)



■ 독도의 일대기

독도가 문헌에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삼국사기입니다. 신라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우산국을 정벌하면서 독도가 우산도라 불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한 눈에 보는 독도의 역사(출처: 에듀넷)


신라에 복속된 우산국은 918년 고려 건국 이후 고려의 지배를 받았어요. 고려 조정에서는 울릉도에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풍랑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이 생기자 중앙 정부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여 섬을 관리하곤 했어요.

조선시대에는 울릉도뿐만 아니라 우산도인 독도에 대해서도 조사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특히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에 울릉도와 우산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출처: 외교부)                     ▲신증동국여지승람(출처: 외교부)


대한제국 시기에 울릉도에는 개척민이 늘어났고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일본인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어요. 이에 대한제국 정부는 조사단을 파견하고 1900년에 독도를 울릉도가 관할하도록 하는 칙령 제41호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1905년 러일 전쟁 중 일본은 러시아측 함대의 동향을 살피기 좋은 울릉도와 독도의 군사적,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망루를 설치했어요. 그 이후 독도를 편입할 기회를 살피고 있다가 ‘독도가 무주지(주인 없는 땅)’이라고 주장하며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명명하여 시마네현에 편입하기에 이르렀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은 대한제국에 어떠한 협의나 사전 통고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후 오늘날까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1906년 독도가 일본에 불법 편입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해서 일본에 항의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하자 독도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함께 반환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의해 침탈되었던 독도와 한반도에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임과 우리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독도는 신라시대 이후 지금까지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독도를 소유해왔으며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중요한 자산입니다.  



■ 독도를 지킨 역사 속 인물들

독도하면 신라의 이사부 장군처럼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조선시대 사람 안용복입니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1693년) 어부로 울릉도에서 고기잡이 하던 중 이 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꾸짖다가 일본으로 잡혀가게 되었어요. 안용복은 일본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일본 관리들 앞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인들의 출어를 금지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고 ‘울릉도는 지리적으로 조선과 더 가깝기 때문에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일본측의 문서를 받고 돌아오게 되죠.


그러나 1696년에도 다시 울릉도와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일본 어부들이 활개를 치자 일본 오키섬으로 쳐들어가 그 곳 섬의 주인으로부터 다시는 울릉도와 독도에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답니다. 안용복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둔 큰 역할을 한 분으로 현재는 그 뜻을 기리고자 안용복 장군으로 추대되고 있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갓 해방된 우리나라는 독도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전하는 일에 신경 쓸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패전국인 일본은 무장순시선 등을 이용해 계속해서 독도를 침범해 왔으며 심지어 독도에 일본 영토 푯말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일본인의 불법 침범에 불안함을 느끼고 어업활동에도 막대한 지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에 1953년 울릉도에 거주하던 홍순칠은 울릉도에 살고 있던 6·25참전 용사 30명과 함께 독도를 수비하는 독도의용수비대를 창설하였습니다. 처음 의용수비대는 자비로 식량과 무기를 구입할 정도로 형편이 열악하였지만 독도를 지키고자하는 투철한 애국심으로 극복해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이 독도를 지키고부터 우리 어민들은 안심하고 어로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독도가 우리의 영토로 될 수 있었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홍순칠 대장(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용맹한 독도의용수비대원들(출처: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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