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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료/사회

유물, 유적의 발굴

대한민국 교육부 2015. 8. 5. 14:08


유물, 유적의 발굴



■ 유물과 유적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많이 듣게 되는 단어로 유물, 유적, 문화재 등이 있습니다. 먼저, 유물은 조상들이 남긴 공예품이나 서적 등으로, 선사시대의 청동거울이나 조선 시대의 도자기와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유적은 유물과 혼동되는 용어 중 하나인데, 이는 조상들이 남긴 건물이나 건축물 등을 가리킵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이나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이 유적에 속한다 할 수 있겠네요. 간단히 정리하자면, 유물은 크기가 작고, 무게가 가벼워 이동이 가능한 것이고, 유적은 크기가 크고, 무게 또한 무겁고 자연과 함께 자리 잡은 경우도 많아 이동이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유물 - 나주 신촌리 금동관(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유적 - 숭례문(출처: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하지만 유적이 전혀 이동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1950년대 이집트는 홍수와 범람이 빈번한 나일강을 개발하고 댐을 건설하여 안정적인 수자원을 갖고자 했는데, 문제는 댐을 만들려고 했던 지역에 고대 이집트의 아름다운 유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집트는 이 유적들을 보존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유적의 가치를 잘 알고 있던 유네스코는 세계 각국에 도움을 구했습니다. 유네스코의 요청에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협동하여 20년에 걸쳐 유적을 안전하게 해체하고 이동시켜 복구하게 되었지요. 이처럼 유적은 기본적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하지만 훼손 등의 위험이 있을 때에는 부득이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이 때는 최대한 원래의 모습을 유지해야 하겠지요.

 

유물, 유적과 더불어 많이 듣는 단어에 문화재가 있습니다. 문화재는 유물과 유적 중에 역사적 가치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판단되어 지정된 것이며, 개인 등이 가진 유물이나 유적은 역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가치가 인정되면 절차에 따라 문화재로 지정되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유물이나 유적을 문화재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문화재에는 유물과 유적만 있는 것은 아니며,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탈춤이나 판소리 등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 문화재로 지정되게 됩니다.


 

▲다양한 문화재(왼쪽: 승무, 오른쪽: 봉은사 대웅전 못 삼세불좌상)(출처: 문화재청)



■ 유물의 발굴

우리는 유물이나 유적을 통해 유물이 속한 시대의 생활모습 등을 살펴보며 역사를 공부합니다. 그렇다면 유물이나 유적은 어떻게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요?

 

뉴스나 신문을 보면 ‘백제시대 유물 발굴’과 같은 기사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물이나 유적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발굴되기도 하고, 원래에 있던 문화재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굴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발굴은 땅 속이나 흙더미, 돌더미 등에 파묻힌 것을 찾아서 파낸다는 뜻이며, 체계적인 과정과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유물 발굴지인 서울의 풍납동 토성은 초기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인데, 1925년 우리나라에 있었던 대홍수로 그 모습을 세상에 처음 알렸습니다. 그러나 초기에는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 1997년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땅을 파면서 그 안에 있던 유적과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건설이 중단되고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발굴은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작업입니다. 조심스럽게 땅을 파헤쳐, 유물이나 유적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호미나 붓 같은 작은 도구들로 섬세히 작업합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추후 연구에 어려움이 없도록 사진과 동영상, 발굴일지에 하나하나 기록하게 되며, 최대한 원래의 모습 그대로 발굴하고, 발굴한 유물은 다시 연구실 등으로 옮겨져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진행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더 연구할 수 있거나 보존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발굴 현장은 최대한 원래 모습이 훼손되지 않게 보호하며, 사정이 있어 현장을 보존할 수 없는 경우는 발굴할 때의 사진과 기록 등을 참고하여 원래 모습에 가깝게 보존하면서 이동시키기도 합니다.


▲유물의 발굴 과정(출처: 에듀넷)


그러나 유적이나 유물의 발굴이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유적이나 유물이 묻힌 곳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었기 때문에 유적이나 유물의 발굴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풍납동 토성의 경우 발굴과정에서 발굴단과 지역 주민 사이에 마찰이 있기도 하였으며, 경주에서는 자신 소유의 땅이어도 마음대로 집을 짓거나 개발하는데 제한이 있어 땅 주인들이 불만을 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유적이나 유물의 발굴은 지역 주민이나 그 지역, 국가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양보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체계적인 문화재 발굴, 보존 원칙이 만들어져야한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자료출처: 에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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