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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지도의 독도 ■ 팔도총도 ▲팔도총도(1531)(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팔도총도」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의 첫머리에 수록된 조선전도로서 현존하는 우리나라 고지도 중 독도가 그려진 가장 오래된 지도입니다. 「팔도총도」 에는 국가의 기밀을 지키기 위해 누구나 알 수 있는 주요 산과 하천, 섬, 도(道)와 바다의 명칭 등 간단한 정보만을 수록하였습니다. 독도는 우산도(于山島)로 표기하고, 동해 지명은 바다가 아닌 동해신(東海神)을 제사하는 강원도 양양에 ‘동해(東海)’라고 표기하였습니다. 이 지도는 본래 1481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동해 상에 울릉도와 우산도 두 개의 섬이 그려져 있습니다. 비록 위치는 정확하지 않지만 ‘팔도총도’에 두 개의 섬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는 조선 정부가..
일본의 독도 관련 문헌 ■ 은주시청합기 ▲은주시청합기(1667)(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일본의 지방관리가 1667년 오키 섬을 둘러본 뒤 자신이 보고 들은 오키 섬의 역사, 지리 등을 상세히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일본의 북쪽 한계를 오키 섬으로 적고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인들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가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돗토리 번 답변서 ▲도쿠가와 막부에 대한 돗토리 번 답변서(1695)(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1693년 울릉도에서 불법 어업을 하던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에서 마주친 안용복 일행을 일본으로 데리고 옵니다. 이를 계기로 한일 양국 간에 울릉도 영유문제가 대두되었는데 이를 ‘울릉도 쟁계’ 또..
뗀석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먹도끼 이후에 새로운 석기를 사용했습니다. 바로 뗀석기인데요. 만능도끼였던 주먹도끼 대신, 용도에 맞게 돌을 떼어서 만든 것이랍니다. 떼어낸 방식이나 종류도 매우 다양해졌는데요. '도구의 사용'에서 '도구의 활용'으로 넘어간 것이죠. (사진출처: 우리역사넷) 뗀석기는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석기로, 전혀 갈아낸 흔적이 없이 떼기만을 이용해 제작한 석기입니다. 타제석기(打製石器)라고도 하는데요. 구석기인들이 강가나 들에서 적절한 돌을 구한 다음, 돌을 깨서 필요한 용도에 맞게 만든 것이에요. 사냥용 무기와 일상용 도구였습니다. 뗀석기를 만들 때는 돌의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석기의 질이 돌의 질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또 좋은 형태의 석기가 사용 목적에 맞게 잘 만들어..
주먹도끼 구석기 사람들은 어떻게 사냥을 하고, 고기를 손질 했을까요?바로 주먹도끼를 이용했는데요. 날카롭게 만든 면을 이용해 찌르고, 가죽을 벗겨 잘라냈지요. (사진출처: 우리역사넷) 주먹도끼는 끝은 뾰족하지만 손으로 쥐는 부분은 뭉툭해서 손으로 쥐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도끼 형태의 뗀석기입니다. 양면핵석기(兩面核石器)라고도 하는데요. (사진출처: 우리역사넷) 몸돌의 양쪽 겉면을 크게 떼어내고 가장자리 부분을 다듬어 날을 만드는 것이 특징인 석기입니다. 전기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주먹도끼 이전에는 자갈돌의 한쪽 면을 한 방향에서 여러 번 쳐서 만든 초퍼(chopper), 그리고 자갈돌의 양쪽 면을 서로 엇갈린 방향에서 여러 번 타격을 가하여 만든 초핑툴(chopping-tool)과 같은 석..
대한제국칙령 제 41호, 평화선 지도 등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는? ■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대한제국 정부는 1900년(고종 37) 10월 25일자로 전문 6개조의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개칭(改稱)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개정(改正)한 건」 을 결정하였다. 이 내용은 1900년 10월 27일자 대한제국 관보를 통해 공포되었다. 이 칙령 제2조에는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죽도는 울릉도 본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으로서울릉도 주민들은 이 섬을 댓섬(대나무섬)이라고도 부르는데, 죽도(竹島)는 댓섬의 뜻을 취하여 한자로 표기한..
삼국사기부터 울릉도 검찰일기까지, 독도관련 국내외 문헌자료는? ■ 삼국사기 ▲삼국사기(1145)(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삼국사기』권4의 지증왕 13년조에는 하슬라주(何瑟羅州, 지금의 강릉지역)의 군주인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을 복속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동국문헌비고』에서는 여지지(輿地志)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하여 우산국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산국이 신라에 복속한 6세기부터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고려사 ▲고려사(1451)(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우산국은 고려가 세워진 이후에도 고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우산국은 930년(태조 13) 이래 고려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쳤고,..
1953년 7월,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다! ▲변영태 대한민국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조약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출처: 우리역사넷)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체결을 통해 6·25 전쟁은 공식적으로 정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휴전 협정 당시 남한 측의 대표가 참석하지 않고,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 협정서에 서명하지 않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정부는 휴전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에 앞서 안정적인 군사력 증강을 원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미온적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1953년 6월 휴전 회담 최대의 난제였던 포로 교환 문제에 대한 양 측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정전 협정이 가시화되고 있는 데 반해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 문..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국내외 문헌자료로 보다! ■ 독도는? [지리적으로]예로부터 울릉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는 주요 관측 지점(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울릉도 사동 새각단에서 바라본 독도(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독도에서 바라본 울릉도(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역사적으로]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은 『삼국사기』, 『팔도총도』등 다수의 옛 문헌과 지도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만기요람』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의 영토였다"고 기록 되어 있고, 과거 일본 정부도 독도가 우리 한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