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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공식 블로그
대전시 블로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노미경(당시(주)KoRea A.I이사)는 블로그를 방금 만든 상태였다. 대전시 블로거들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몇 번 만나고 우리는 블로그안에서 친구가 됐다. 그녀가 대전의 성모병원을 리모델링 한 것을 듣고 난 후 시어머니께서 성모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모시고 병원의 여기저기를 다니며 새로 리모델링 한 성모병원의 손잡이까지 유심히 보게 됐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일에 대단함과 놀라움을 느꼈다. 어느날 노미경 대표는 대전 본사로 우리를 초청했다. 더 발전을 하기 위해서 서울 논현동에 새사무실을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본사를 구경하고 가까운 곳에서 송별 뒷풀이를 하였다. 그자리에서 내가 병원리모델링을 하게 된 과정을 물었다. 뜻밖에 그녀는 숙명여대 사학과 출신이..
초등학교 2학년부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한 여고생을 만나서 인터뷰했다. 약 7,8년동안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서 서울시에서 '청소년 선행 봉사 대상'을 수상했다. 풍문여고 1학년 박지희 양을 알게 된 것은 남동생 정호군과 내가 교과부 블로그 기자단 3기를 함께 해서였다. 초등학생 기자들은 어머니들과 함께 참석을 했기 때문에 정호 부모님의 독특한 가정교육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장기적인 봉사활동을 통한 인성교육을 지도한 박지희양 부모님의 가정교육에 감동을 받아서 인터뷰를 하러 풍문여고 앞으로 갔다. 지희양을 저녁 식사 시간을 이용해서 만났다. 봉사소녀 지희양 어머니에게 듣는 이이기 Q1. 지희양의 부모님은 어떻게 만나서 결혼을 하셨나요? 우리는 사내 커플이었습니다. 딸이 많은 제 친정을 위해서 지희 아빠가 일..
'국악계의 보아'라는 해금 연주가 '꽃별'의 어머니를 인터뷰했다. 꽃별(30세,본명,이꽃별)의 어머니 김민화(60세)씨는 나와 대학 동기 동창이다. 그래서 더 심도 깊은 인터뷰를 할 수가 있었다. 꽃별이 뉴에이지 음악가로 이름을 알린 것은 2003년 일본에서부터였다. 2003년 일본에서 첫 앨범을 낸 뒤 국내에서도 잇달아 앨범을 내놨다. 한국 해금연주자가 현지에서 일으킨 붐은 생각보다 컸다. 중국의 얼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해금을 일본 대중에게 알린 주인공이기도 했다. 몽고의 마두금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금은 미처 일본까지는 닿지 않은 악기였다. 얼후는 철현(鐵絃)에 뱀가죽을 울림판으로 쓰지만 해금은 명주실에 나무로 된 울림판을 사용한다. 일본의 유일한 찰현악기 ‘고큐’가 있지만 줄의 개수도, 음..
블로그를 하면서 제일 보람이 있는 일은 다양한 인생을 살아 가는 분들과의 만남이다. 특히 본 받고 싶은 인생을 살아온 분을 볼 때는 나를 돌아 보게되고 그분의 삶을 본받고 싶어지기도 한다. 오늘은 블로그에서 만난 이시대의 교육자 손진규 선생님을 인터뷰한 글을 올리고 싶다. Q1 선생님의 실명과 경력, 현직을 말씀해 주세요. 손진규(孫鎭奎)입니다. 충북 영동 산, 대구교육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으며교직 경력 41.6년, 대구 송일초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퇴임 후지금은 충북 보은군 마로면에 위치한 ‘서당골 청소년 수련원’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Q2 교사가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예능에 많은 끼를 가진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큰누나가 결혼 후 축음기를 구입, 저의 집으로 보내주어서..
오늘 인터뷰한 성진숙(여,33세)약사는 동네에서 친절하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다. 특히 환자들에게 복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서 약은 약사에게 설명을 듣고 먹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고 있다. 나는 고혈압약을 한 달에 한번 조제 하러 가거나 감기약을 지으러 자주 약국을 다녔다. 예쁜 여약사님이 대학재학중에 결혼을 했고 2녀 1남의 엄마라는 개인적인 일까지 알게 됐다. 다음은 성진숙약사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Q1 경북 경주가 고향이지요? 성장 과정을 말씀해주세요. 저는 경북 경주시 보문동(보문단지 가는 길 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 있는 농촌마을) 남촌마을에서 태어났고, 딸 셋 아들 하나 중 둘째입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조부모님으로부터 자연의 정직함을, 시청에 근무하시는 아버지로부터 친절과 어른에 ..
우리 동네에 있는 대전공고에 27년이나 담임반 학생들의 생일파티를 자비로 매달 해주는 선생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대전공업고등학교로 찾아갔다. 박준태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윤병민 선생님(57세, 전자공학박사 산학협력팀장)을 교장실에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내용을 기사로 작성한 것이다. 1. 27년간 제자들의 생일 파티를 매달해 준 담임선생님 윤병민 선생님은 대기업 인사과에 다니다 교사로 전직한 독특한 경우이다, 첫 부임지인 인천 청전 중학교 교사 시절부터 담임을 한 학급의 학생들의 생일파티를 자비로 한 달에 한 번 씩 해주었다. 그달에 생일인 학생들을 위해서 생일케익을 사서 축하해주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햄버거와 음료수를 먹으며 함께 축하해 주었다. 교육의 결과는 17년 전의 제자들이 스승의 날과 선생님..
나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6년까지 한동네의 아파트상가에서 12년간 책대여점을 했다. 상점을 개점할 때 초등학생이었던 학생들이 내가 상점문을 닫을 때엔 대학생이 돼 있었다. 12년동안 참 다양한 학생과 부모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세준(당시초6년) 이었다. 세준이 아버지는 외항선원이어서 일 년에 한번 귀국하면 3개월 있다가 다시 외국으로 나가곤 했다. 1. 매주 두 권의 책을 빌려가던 어머니 상점을 개점 할 때부터 세준이 엄마가 단골손님이라서 세준이 형제가 같이 오곤 했다. 세준이 엄마는 임선영 소설을 주로 빌려갔다. 아들들에게는 두 권의 동화책을 빌려주었다. 나는 다른 대여점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창작동화를 많이 들여 놓았다. 창작 동화의 작가는 주로 현직 초등 학교 교사라서 재미있고 교훈도 얻..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는 말로 만들어진다. 글도 말의 간접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말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말 한 마디에 천냥 빛을 갚는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사례를 소개한다. 막내 아들이 실제 경험한 일이기도 하다. 1. 공채에 합격하고 같은 조건으로 시작하는 신입사원들 막내 아들은 지방 국립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대기업 유통회사에 취업이 됐다. 공채로 취업한 동기들이 약 70명 정도 됐다. 막내는 본인의 희망대로 대전지점에 발령을 받아서 집에서 다녔다. 입사 동기들은 전화로 혹은 휴무날 만나서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친목도 나누고 했다.자연히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고 상사에 대해서 말들을 하게 되곤 했다. 연수가 끝나고 막내 아들이 발령난 지점의 지점장은 성질 나쁘기로 소문이 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