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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공식 블로그
지난 3월에 제3기 교과부 블로그기자단 발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광화문 정부청사에 갔었다. 대부분 대학생들이었고 주부, 현직교사, 사업가, 대학강사로 구성이 돼 있었다. 내눈에 유독 띈 사람은 초등학교 6학년 박정호군과 고3인 황래영 학생이었다. 정호군은 어머니와 함께 참석을 했다. 뒷풀이 회식에서 정호 어머니 말을 들으니 누나 박지희양도 '법무부 블로그 기자단'이라고 했다. 집에서 홈스데이를해서 초등학교 6학년인데 우리 나라 말 이외에 3개국어를 한다고 들었다. 교과부에 매달 2편의 글을 송고하는데 정호군의 글을 보며 다방면에 활동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학생의 독특한 사회참여와 기자단 활동을 보며 부모의 차별화된 교육관을 알 수가 있었다. 하여 박정호 군의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서 ..
충남 천안시 OO면에서 오이농장과 한우를 키우며 살고 있는 어머니 이야기 입니다. 처녀 때는 수영강사와 여자 야구 심판을 한 도시 여성이었는데 농촌 총각과 결혼을 하니 동네 사람들에게 과거가 있는 여자라는 오해도 받았습니다. 결혼23년차인 조영숙(47세) 씨가 처음 남편 김진오(50세)씨와 결혼을 했을 때는 농지는 없었고 한우 15마리를 키우는 농가 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간식을 사줄 돈 조차 없어서 큰아이는 6살까지 모유를 먹였답니다. 지금은 오이농사 1800평, 논 농사 6200평 한우 130마리의 부농으로 성장했습니다. 시아버님(78세)와 시어머니(71세) 는 건강하셔서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 왔습니다. 아들 김지수(22세)군은 연암 대학 축산과를 졸업하고 농업 후계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
한 달 전 쯤이었다. 집근처에 있는 대전 공고 앞을 지나가다가 특이한 모습을 봤다. 어머니들이 어깨에 띠를 두르고 양쪽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지도 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과 학생과 지도 교사도 함께 있었다. 나는 교장선생님께 대충 설명을 들었다. 올해 3월에 새로 부임한 박준태 교장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목, 금요일 방과 후 학습을 실시 하고 있었다. 안하던 방과 후 학습을 하기가 싫어서 몰래 도망가는 학생들이 생겼다. 여러 가지 학생지도를 고심하던 교장선생님은 '학부모 자원봉사' 어머니를 양쪽 교문에 서게 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허락을 얻고 디카로 사진을 찍었다. 30년을 실업계 학교에만 근무한 교장선생님의 교육관을 인터뷰하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어쩌다 버스를 타려고 정거장에 갔을 때 공고 ..
6월 16일자 일간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교과부 독서교육 지원시스템이 2학기부터 가동한다고 한다. 결론은 초등학교 때 쓴 독후감을 대학 입학사정관이 본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고 두 아들을 키우며 독서교육을 한 큰아들과 못한 막내아들의 30년후, 현재를 기록하고 싶었다. 1. 말을 잘하는 아이 큰아들은 첫 아이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으로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동화책을 읽어 주고, 글을 알게 됐을 때는 자주 서점에 데리고 가서 직접 책을 고르게 했다. 남편의 성격을 닮은 큰아들은 조용하고 차분해서 늘 책을 끼고 살았다. 사촌 형들이 읽고 난 세계명작과 위인전, 과학 대사전등을 자주 읽었다. 독서가 습관이 되고 부터는 스스로 책을 사서 잘읽었다. 지금도 책을 꾸준히 읽고 있다. 나는 공부도 습..
사교육은 커녕 모두 유치원도 못 보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외라2리, 마을 입구에 있는 수덕초등학교는 지금도 벽지 수당이 나오는 학교이다. 시고모님의 세 자녀는 모두 이 학교 졸업생이다.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이 교직에 있어서 두 분 다 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집에 살 수가 없었다. 옆 마을에 살고 있는 여동생, 홍성고모님에게 부탁을 해서 고모님 가족이 1970년부터 24년을 시골집에서 시할아버지와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고모부님은 농업학교를 나오셨다. ** (지금 홍성에 살고 있어서 홍성고모님이라고 부른다.) 시아버님은 2남 5녀의 장남이신데 위로 누님이 한 분 있다. 큰시고모님은 90세로 시골집 옆 마을인 복당리로 시집을 가셨는데 건강하시다. 홍성고모님부터 마을 입구에 있는 수덕초등학교를 나왔다. 홍..
한준수(가명 당시 16세,중3) 의 가출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준수는 늘 조용하고 공손하고 예의 바르고 웃을 때도 빙그레 소리 나지 않게 웃는 학생이었다. 준수는 내가 하던 책대여점의 단골 학생이었다.부모님이 맞벌이를 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늘 혼자 집에 있었다. 준수는 외동아들(무녀 독남) 이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온순한 아이였다. 한 동네에서 12년을 책대여점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나를 잘 따랐다. 비디오는 취급하지않고 책만 대여해 주었다. 학생손님이 80% 였는데 상점으로 들어 오면서 공손히 인사를 하고 웃으며들어 오고 갈 때도 꼭 "안녕히 계세요" 하며 돌아 갔다. 대부분 학생들이 예의가 바르고 밝고 예뻤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는 학생들과 책이야기, 아이돌 가수이야기, 영화이야기..
대전으로 이사온지 온지 햇수로 2년 째가 된다. 이제 도시의 윤곽이 파악이 되고 동네에 단골도 생겼다. 진잠은 월요일마다 요일장이 서지만 평소에도 늘 길바닥에 채소를 놓고 파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다. 56세의 김순자(가명) 씨를 알게 된 것은 작고 왜소한 몸매가 눈에 들어 와서 관심을 가지면서 부터였다. 우리 동네 사람이 제일 많이 다니는 네거리 길목 약국 앞에서 늘 좌판을 펼쳐 놓고 시멘트위 찬 땅에 앉아 있었다. 태어 날 때부터 손과 발이 다 오그러든 상태로 태어났다고 말해주었다. 시진에 보이는 손으로 야채를 까만 봉지에 늘 넉넉하게 넣어 주었다. 주로 상추 1,000원, 나물 2,000원, 고구마 3,000원... 고추가루, 검은 콩... 그렇게 팔았다. 직접 비닐하우스에 농사를 지은 것이라서 채..
김준혁(가명 32세) 은 국내 유수한 대기업의 신규개발팀에 있다. 지방 국립대학 경영학과를 평점 4.2(4.5만점)로 졸업하고 토익점수 830이었다. 어학연수나 교환 학생 경험이 없다. 준혁이는 IMF 때 가정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사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다. 취업을 위해서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종로에 있는 토익학원에 두 달 다닌게 전부였다. 학원에 가서 '취업동아리'를 만들어서 만나면 영어로만 말하는 공부를 했다. 준혁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는 같은 아파트 아래 위층에 살았다. 준혁이는 우리 큰 아들과 동갑이고 친한 친구였다. 준혁이 동생 준성(가명) 이는 우리 막내 아들과 동갑이라서 늘 네 명이 같이 놀았다. 준혁이와 큰아들의 공통점은 책을 많이 읽고 말을 또박또박 정확하게 잘한다는 것이다..